▲<노회찬 평전>을 집필한 이광호 작가가 26일 오전 서울 마포구 노회찬재단에서 <오마이뉴스>와 만나 고 노회찬 의원의 삶과 꿈에 대해 말하고 있다. 2023.6.26
유성호
- 평전에 보면 노회찬 의원의 단점에 관한 얘기가 나온다. 노 의원의 단점으로 가장 많이 거론되는 것이 주변 사람들과의 대화가 잘 안된다는 점이다. 심상정 의원조차도 "깊이 얘기 나눠보고 싶은데 늘 대화가 안 됐어요"라고 얘기했을 정도다. 대중과의 소통에는 능했는데 왜 주변 사람들과의 대화는 잘 안됐을까?
"소통이 안 됐다기보다 이런 점이 있는 것 같다. 노 의원이 중요한 결정을 할 때, 예를 들면, 2016년에 창원에 갈 때 노원에서 선거를 준비하던 사람들은 황당했다. 노 의원이 얘기를 안 하니까 가기 직전까지 노원에 있는 줄 알았기 때문이다. 여영국(전 정의당 의원)이 올라와서 '창원에 와야 한다'고 얘기하고, 종일 같이 있었는데도 노 의원이 말을 안 했다. 굉장히 중요한 결정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수를 많이 읽는, 바둑으로 치면 '장고 바둑'을 두는 것이다. 그러다 결정적으로 중요한 결정을 내릴 때, 귀를 막는 것은 아닌데, 토론을 통해서 결정하는 스타일은 아닌 것 같다.
왜 그럴까? 쉽게 얘기하기 어려운데, 우선 본인의 판단에 대한 책임감과 신뢰가 있을 것이다. 그래서 마지막까지 이런 수 저런 수를 다 두고 결정하는 것 같다. 창원에 내려갈 때 내린 결정이 그렇다. 결국은 여영국이 노원에 가서 '미안합니다, 노 의원은 창원으로 갑니다'라고 할 때까지 노원에서는 몰랐다.
2017년 대선 후보에 안 나간 것도 마찬가지였다. ('노회찬의 영원한 조직실장'이라는) 오재영도 끝까지 몰랐다. 그런 스타일이 있긴 있다. 물론 스타일의 문제로만 얘기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 여튼 굉장히 신중하게 여러 가지 수를 읽기 때문에 장고가 된다. 바둑을 못 두는 사람은 여러 가지 수를 읽을 수가 없다. 수많은 변수들이 얽히고 섞이는데 이런 부분에 대한 전략적이거나 전술적 사고를 가장 잘하는 사람이 노 의원이다. 그런 자기 결정에 대한 신뢰와 책임감이라는 두 가지 문제 때문에 그런 것 같다. 심지어는 결정장애 있는 것 아니냐는 얘기가 나올 정도였다.
동작에서 기동민(현 더불어민주당 의원)과의 단일화를 제안했을 때도 참모들은 아무도 몰랐다. 김종철(전 정의당 대표)이 얘기한 것처럼 심상정 의원은 막 도와주고싶은 마음이 드는데 상대적으로 노 의원은 그런 마음이 덜 들게 하는 사람이다.
노 의원의 단점을 비유하면 이런 것이다. 정치가 공적 가치와 관련된 것이라면 우리는 정치를 '진흙탕에서 연꽃을 피우는 가능성의 예술'이라고 비유한다. 노 의원은 연꽃을 피우려는 강력한 욕망과 실력은 있는데 진흙탕 싸움에는 약했던 것 같다. 권투로 치면 노 의원은 아웃복서다. 세계에서 최고의 아웃복서는 무하마드 알리다. 나비처럼 날아서 벌처럼 쏜다. 경쾌한 풋트워크(foot walk)와 클린 펀치 외에 약간의 쇼맨십으로 인해 권투 역사상 최고의 선수가 됐다. 노 의원이 이런 권투는 잘한다.
그런데 마이크 타이슨은 인파이터다. 어떤 때는 상대방의 귀를 물어뜯기도 한다. 이렇게 잡아서 치는 인파이팅을 노 의원이 싫어해서 못 하는 것인지, 못 해서 싫어하는지 모르겠는데 그쪽에 약하다. 정치가 '연꽃'이라는 멋진 대의명분이 있는가 하면 그 이면에는 수많은 이해관계가 왔다갔다 한다. 이렇게 두 가지가 있는데 정치인의 말에서 나오는 것은 연꽃이지만, 손발이 움직이는 데는 진흙탕일 경우가 많다. 본인이 원하든 원하지 않든 거기는 진흙탕이니까 거기서 인파이팅을 해야 하는데 그게 약한 것이 노 의원의 약점이다."
- 저도 직접 겪어 보니 노회찬 의원은 토론이나 인터뷰 등 공적 대화에는 능한데, 후배나 주변 참모들, 지인들과의 사적 대화는 약한 것 같다.
"그래서 오재영과 내외한다는 소리도 나온 것이다. 나는 사적으로 노 의원과 만날 경우가 거의 없었는데 당에서 처음으로 노 의원과 술 마실 때가 있었다. 노 의원이 민주노동당 사무총장이 됐을 때 <진보정치>(민주노동당 기관지)팀에 술을 한잔 사준다고 해서 만났다. 나중에 술자리에 있었던 기자 얘기를 들으니까 노 의원이 나하고 몇 시간 동안 소설에 대한 얘기만 했다고 하더라. 나하고 동년배기도 하고 나도 소설을 좋아하는데, 그런 얘기가 아니면 다른 얘기는 잘 안 하는 것 같다."
- 이정미 현 정의당 대표가 저자와의 인터뷰에서 한 말도 곱씹어야 봐야 할 대목이다. "노 대표님은 숱한 난관을 개인기로 뚫고 왔어요. 지지자들을 세력화하지 못했습니다. 지지하는 사람들은 많은데 모래알처럼 있었죠. 그게 정말 안타까웠습니다. 어떤 게 맞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나마 노회찬이니까 개인기가 통한 거죠. 너무 특출났으니까요." 지지자들은 많은데 그 지지자들을 제대로 정치세력화하지 못했다는 지적인데, 정치인으로서 노회찬 의원의 단점을 날카롭게 짚었다.
"세력화가 조직화인데 이런 생각 든다. 리더가 그 부분을 중요하게 생각하면 조직 분야에 그 부분에 능한 사람을 배치해서 그 사업을 진두지휘하거나 일상적으로 보고받고 체크해야 하는데 노 의원은 그것을 안 한다. 오재영이 '노회찬의 영원한 조직실장'이란 얘기를 들었는데, 오히려 노 의원이 아닌 당의 조직실장으로서 역할을 한 것 같다. 오재영은 노 의원의 표를 조직하러 다니지 않고, 정파 간 갈등이 있을 때 조정하러 다녔다. 리더가 그런 쪽(조직화)에 중점을 두지 않으니 참모들도 정책에는 강할지 모르지만 대중조직화에는 약한 측면이 있는 것이다.
결국은 본인이 그런 방식을 잘 못하는 것 같다. 못하니까 열심히 하지도 않고. 노 의원은 당의 리더는 대중적 지지가 높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만큼 대중적 영향력을 중요하게 생각했는데 당이 정파적 중심 사고를 해서 안 한 것인지, 대중적 지지는 노 의원이 제일 많았지만 당내 정파를 침몰시키거나 누를 수 있을 정도는 아니어서 그랬는지는 평가하기 어렵다.
어쨌든 그런 부분에 신경을 안 썼다. 인민노련(인천지역민주노동자연맹)에서 활동했던 사람이 송파구에서 지역구 활동을 열심히 했는데 이런 저런 당내 선거가 있을 때 노 의원은 한 번도 자기한테 전화를 안 했다고 한다. 한편으로는 '노 의원답다'라고 할 수 있겠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이렇게 해서 어떻게 하려고 하나?' 하는 생각도 든다.
2016년에 창원 재·보궐선거 때 피말리는 민주노총 내부 경선을 거쳤다. 노 의원팀이 여기 내려와서 선거 운동을 하는데 사람들이 말을 안 하고, 딱 전화기만 잡고 계속 전화만 돌렸다. 노 의원의 오랜 참모가 그것을 보고 '선거는 이렇게 해야 하는구나 하는 것을 그때 알았다'고 했다. 그때는 2016년이고 노 의원은 2000년부터 선거해 오던 사람인데... 노 의원은 당내 선거도 그렇게 안 했다는 것이다.
조직화한다는 것이 일상적으로 술도 마시면서 거리를 좁히고 공사 간에 챙길 것을 챙겨주면서 전화할 멤버들을 조직화하는 것인데, 노 의원의 조직을 보면 당내 주요선거 때 지역 책임자들은 있는데 그런 식으로 조직하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2016년에서야 선거는 이렇게 하는구나 하는 것을 알았다고 했으니...
2007년 민주노동당 대선 후보 경선에서 심상정 후보가 2등이 된 결정적인 것이 전화통화 등 조직 선거였다. 하지만 노 의원은 그런 것을 안 했다. 삼성엑스파일 사건 때 대법원 판결을 앞두고 의원 탄원서를 받는데 150명이나 해줬다. 그런데 노 의원은 전화 한 통도 안 했다. 보좌관들이 하고, 심상정 의원이 제일 열심히 했다. 그런 것은 긍정적으로 볼 수도 있지만 정치적으로 보면 분명히 약점이다."
- 노무현과 박근혜, 문재인, 이재명처럼 노회찬 의원도 팬덤 정치(지지자들의 정치세력화)를 시도했더라면 어땠을까?
"그렇게 조직화 하는 선수들과 노 의원 주변에 있는 참모들은 색깔이 서로 다른 것 같다. 정책, 기획 등의 사람들은 많이 모여 있었는데 현장에서 부딪치고 조직화하는 사람들은 별로 없었다. 다른 하나는 노 의원이 노조 안에서의 활동(경력)이 없었으니까 한국의 현실에서는 그것이 굉장히 큰 약점이다. 심상정 의원의 경우 2007년, 2015년 당내 경선에서 노 의원을 이긴 것은 정책이 훌륭해서였다고 하지만 조직적으로 (심 의원이 활동했던) 민주노총의 덕을 봤다. 민주노총 조직표가 실제로 심 의원에게 갔다."
노회찬 "분단은 민족사이지만 가족사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