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마이스타

본문듣기

박건우 미스터리, 선수의 태업인가 감독의 군기잡기일까

[주장] 두산에 이어, NC에서도 2군행 통보 받은 박건우... 그의 컨디션은 문제 없나

23.07.05 14:12최종업데이트23.07.05 15:10
원고료로 응원

NC 강인권 감독 ⓒ 연합뉴스

 
같은 선수에게 다른 감독이 두 번이나 비슷한 처분을 내리는 사건이 벌어졌다. 하필 두 번 모두 시즌의 중요한 고비에 팀 내 최고 선수가 특별한 부상이나 슬럼프가 아님에도 2군행 조치를 받았다는 점에서 이례적인 사건이었다.

감독들은 이구동성으로 해당 선수에게 책임감과 희생 등을 강조하며 사실상의 '징계성 조치'임을 인정했다. 그런데 정작 선수가 구체적으로 무엇을 그리 잘못했는지는 분명하게 말하지 못하고 있다.
 
지난 이틀간 야구 팬들 사이에서 가장 큰 화제는 박건우(NC 다이노스)의 2군행 미스터리였다. 프로야구 NC 구단은 지난 3일 박건우를 NC는 1군 엔트리에서 전격 말소한다고 발표했다.
 
지난 2022년 FA 자격을 얻어 두산 베어스에서 NC로 이적한 박건우는 통산 타율이 .327에 이르는 리그 최고의 교타자중 한 명이다. NC 이적 첫 시즌에 .336(전체 3위)으로 활약했으며, 올시즌도 .286 7홈런 41타점으로 팀 타선을 이끌고 있다.
 
박건우는 6월 타율도 .293으로 준수했고, 엔트리 말소전 2일 kt전에서 4타수 2안타로 멀티히트를 기록할 만큼 컨디션에서는 문제가 없었다. NC는 올시즌 3위에 올라 LG-SSG-롯데 등과 치열한 순위 싸움을 벌이고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간판 타자의 2군행은 의아함을 자아낼 수밖에 없었다.
 
오래지 않아 그 이유가 밝혀졌다. 강인권 NC 감독은 지난 4일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원팀에서 벗어나는 행동은 하지 않길 바랐는데, 그 부분에서 박건우 선수에게 아쉬움이 컸다, 성숙의 시간을 가졌으면 좋겠다"고 언급했다. 박건우의 2군행이 부상이나 컨디션이 아니라 사실상 문책성이라고 밝힌 것이다.
 
깅인권 감독은 구체적인 언급을 피했지만, 언론들은 그간의 정황과 강 감독의 발언을 종합해볼 때 박건우가 올 시즌 몇 차례의 경기에서 '교체와 휴식 요구를 반복한 데 따른 조치'라는 해석이 유력해졌다.
 
그런데 이 장면은 낯설지가 않다. 약 2년 전인 2021년 6월 25일 두산 베어스에서도 이와 판박이처럼 흡사한 사건이 벌어진 바 있다. 그리고 주인공도 박건우였다.
 
당시 김태형 두산 감독은 박건우에게 2군행을 지시하며 "박건우가 피곤해하고 쉬고 싶어해서 그럴거면 2군에 가서 푹 쉬고 오라고 했다"고 이야기한 바 있다. 지금의 강인권 감독보다 더 직설적으로 박건우의 잘못을 지적한 모습이었다. 덧붙여 김 감독은 "야구는 팀 스포츠이고 한 선수로 분위기가 잘못된다면 결단을 내려야한다. 그게 감독의 역할이다"라고 설명했다. 감독이 팀 내 간판선수를 이 정도로 대놓고 공개적으로 비판한 것은 매우 드문 일이었다.
 
당시 박건우는 도쿄 올림픽 국가대표팀 소집과 시즌 이후 FA 자격을 앞두고 있는 상황이었다. 김태형 감독의 설명에 따르면 박건우가 피곤해서 경기에 나가고 싶지 않다거나 경기 도중 빼달라는 말을 했다는 의미로 풀이된다.

감독 입장에서는 주전 선수가 팀을 위해 최선을 다하지 않고 몸을 사리는 듯한 모습이 팀 분위기를 흐리는 행동이라고 판단했고, 선수단의 기강을 잡는 차원에서 징계를 내릴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이 사건의 여파인지는 몰라도  박건우는 해당 시즌이 끝나고 FA 자격을 얻자 NC로 이적했다.
 
그로부터 2년 후 NC에서 똑같은 일이 재현됐다. 강인권 감독은 "박건우가 지난주 경기를 하면서 여기저기 불편함을 호소한 것은 사실"이라고 인정했다. 이어 강 감독은 "베테랑으로서 실력 뿐만 아니라 또 갖춰야할 덕목이 있다고 생각한다"고 박건우의 태도에 대한 아쉬움을 드러내면서도 한편으로는 "너무 크게 확대 해석을 하지는 말아달라"며 조심스러운 입장도 내비쳤다.
 
팬들의 반응은 극명하게 엇갈리고 있다. 현재 여론은 아무래도 박건우에게 불리한 편이다. 박건우를 비판하는 이들은, 같은 선수가 동일한 사유로 다른 팀과 감독에서 두 번이나 징계를 받았다면 그 선수의 프로의식에 문제가 있는 게 아니냐고 지적한다. 비싼 몸값을 받는 고액 연봉자가 동료들 앞에서 불평 불만을 일삼는다면 이를 달가워할 직장은 어디에도 없을 것이다.
 
그런데 박건우가 정말 컨디션이 좋지 않았다면? 만일 박건우가 충분히 뛸 수 있는 상태인데도 고의적으로 태업을 한 것이라면, 감독들의 징계는 정당할 수 있다. 하지만 김태형과 강인권 감독 모두 공통적으로 인정한 팩트는 '선수가 힘들어 하고 쉬고 싶어한다'는 게 이유의 전부였다.
 

NC 박건우 ⓒ 연합뉴스

 
선수가 컨디션을 이유로 쉬고 싶다고 하는 게 과연 징계까지 받을만한 사유가 될 수 있는지는 또다른 문제다. 여기서 '원팀 정신에 벗어난다', ' 주전으로 책임감이 없다'는 것은 감독의 주관적인 평가이자 해석일 뿐이다. 당사자가 과연 무엇을 잘못했는지에 대한 사실은 아니다. 감독의 눈밖에 난 '괘씸죄'로 선수를 징계할 때도 '팀을 위한 결단'이라는 명분 만큼 그럴듯한 이유는 없다.
 
그런데 만일 박건우가 평소에도 상습적으로 팀 분위기를 흐리고 불성실한 문제아로 악명이 높았을까. 그는 2015시즌부터 큰 기복없이 누구보다 꾸준한 성적을 올리고 있는 리그 정상급 선수다. 또한 두 번의 2군행 외에는 야구 내외적으로 크게 물의를 일으킨 적도 없다.

NC의 징계가 정당하고 불가피했다면, 박건우가 구체적으로 무엇을 잘못했는지 자세한 내용을 밝혀야 한다. 앞으로는 '스타 선수니까 참는 게 팀을 위해 당연하다'는 논리라면, 박건우 입장에서는 억울하게 느껴질 수도 있을 것이다.

두 번에 걸친 2군행 해프닝으로 박건우는 '주전이라고 경기 출장을 당연히 여기는 선수', '팀보다 자기 몸만 생각하는 이기적인 선수'라는 꼬리표를 달게 됐다. 국내 프로스포츠에서 감독의 '권위와 영향력'은 절대적이다. 그런데 선수의 몸 상태는 결국 본인이 가장 잘 아는 것이고, 여기서 선수의 입장과 감독의 입장은 각기 다를 수밖에 없다.

하지만 내부 사정을 알 수 없는 팬들은 그저 감독의 일방적인 평가와 해석으로만 이 사건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반면 이 사건에 대하여 선수 본인이 이에 직접 반박하거나 항변하는 이야기는 나오기 어려운 상황이다. 양측의 입장을 모두 들을 수 없는 상황에서 그저 한쪽의 평가로만 선수에 대한 일방적인 비난과 억측이 쏟아지는 분위기는 다소 안타깝게 느껴진다.

공교롭게도 NC는 최근 4연패 및 10경기에서 1승 9패의 극심한 부진에 빠져있는 상황이다. 선두권과의 격차는 8게임 이상 벌어진 반면, 아래로는 중위권 팀들의 추격을 허용하며 자칫하다간 5강권 밖으로 밀려날 수 있는 위기에 놓였다.

이런 상황에서 팀 핵심 전력을 불확실한 사유로 2군으로 내리는 모험수까지 단행했다. 강인권 감독의 주장대로 '원팀'을 되살리기 위한 불가피한 고육책이었는지, 아니면 팀을 더 큰 수렁으로 몰아넣는 자충수가 될지는 아직 미지수다.

☞ 관점이 있는 스포츠 뉴스, '오마이스포츠' 페이스북 바로가기
박건우 강인권감독 김태형감독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