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울 시내의 한 부동산 중개업소에 전세 매물 정보가 붙어 있다.
연합뉴스
빚으로 집값 하락을 언제까지 막을 수 있을 것인가? 정부는 집값이 다시 상승 반전할 때까지 빚으로 시간을 벌어보겠다는 투기적 대책을 냈다. 소위 '시장'에 정부가 집값 상승 반전에 베팅하고 있다는 강력한 '신호'를 주고 있다. 대출규제 완화, 세금 인하, 실거주 의무 폐지, 재건축·재개발 등 정비사업 규제 철폐 등 모든 주택정책이 다시 집값 오르기에 좋은 환경 조성에 매진하고 있다.
전세라는 특유한 제도가 있는 우리나라는 대출 규제만으로 다주택 투기를 막을 수 없다. 대출규제는 실수요만 위축시킬 뿐이다. 전세보증금은 이자를 내지 않아도 되며 LTV나 DSR 같은 규제도 없다. 대출규제로 실수요가 위축되면 전세수요가 증가하여 다주택 투기 환경이 좋아진다. 전셋값이 오르면 전세대출과 보증금반환보증으로 수요를 늘려준다. 이런 정책의 대응은 전형적인 포퓰리즘이다.
전세대출과 전세금 반환보증이 전셋값을 올리게 되고, 결국 집값을 올리게 될 줄 몰랐을까? 당장 빚 내서 집 사고, 빚 내서 세 살게 해주는 정책이 인기 있고 정치적으로 이득이 되기 때문에 선택한 것으로 볼 수밖에 없다.
전세 수요는 실수요라고 한다. 전세 수요가 있어야 다주택 투기가 가능하다. 전셋값이 오르면 갭 투기 수요가 증가해 집값도 오른다. 주거 사다리의 중간 단계로 앞으로 집을 살 것을 기대하는 전세 수요가 늘면 오히려 집값이 올라 내 집 마련은 더 어려워진다.
집값이 오르면 다주택자만 이득을 본다. 전셋값이 떨어지면 역전세로 임대인도 고통스럽겠지만 임차인의 고통이 훨씬 크다. 전셋값이 오를 때는 보증금을 마련하느라 고통을 받고, 전셋값이 떨어지면 보증금을 제때 돌려받지 못해 고통 받는다. 집값이 떨어져 깡통 상태가 되면 보증금을 다 돌려받지 못하는 피해를 당한다. 전세의 역설이다.
역전세 문제를 빚으로 해소할 수 있게 지원하겠다는 대책은 최악의 선택이다. 주택 갭 투기는 위험한 선택이 아니라고 정부가 강변하고 있다. 부실 PF 사업장 지원, 미분양 주택 해소, 역전세 문제 해소 등 정부는 모든 주택위기 징후가 있는 곳에는 황금박쥐처럼 나타나 건설업체, 금융기관, 다주택자를 구원해주고 있다. 주택 투기에 실패한 금융기관, 건설회사, 다주택자를 이렇게 열심히 구원해주고 있으니, 부동산 불패 신화는 시장이 아니라 정부가 완성해주고 있는 셈이다.
집값과 전셋값 사이에 여유가 있는 상황의 역전세 문제는 집을 팔거나 대출을 받아서라도 해결할 수 있지만, 깡통전세 문제는 해결하기 어렵다. 깡통전세는 집을 팔아서도 대출을 받아서도 보증금의 완전한 반환이 불가능하다. 깡통전세 문제 중 최악의 사례는 선순위 금융기관 채권이 있고 최우선변제권이 없는 경우 세입자가 보증금을 거의 한 푼도 돌려받지 못하고 강제퇴거에 몰리는 상황이다.
한국자산관리공사가 선순위 부실채권을 시장가격에 할인 매입하여 경매권을 실행하지 않고 시간을 벌어주기만 해도, 당장 해당 주택에서 강제 퇴거되는 최악의 사태는 막을 수 있다. 경매를 진행하더라도 선순위 부실채권 매입가격만 배당을 받게 되면 임차인은 채권 액면가와 매입가의 차액만큼은 돌려받을 수 있다.
인천 미추홀구 전세사기 사례에서 평균 경매 낙찰가는 1억 3천만 원이며, 선순위채권액도 1억 3천만 원 정도이고, 전세보증금은 7천만 원가량이다. 선순위채권액을 30% 할인 매입하면 4천만 원가량의 보증금을 돌려줄 수 있다. 최우선변제금 수준의 보증금을 무이자 대출하겠다는 전세사기 특별법의 지원보다 더 좋은 방안이다. 전세대출이 있으면서 보증금을 온전히 돌려받지 못하는 피해자에게는 은행이 과잉 부실 대출의 책임을 지고 적극적으로 채무조정과 무이자대출로 전환해줘야 한다.
전세 비중 줄여야
대한민국이 전세사기, 깡통전세와 역전세 문제 등 전세 함정에서 벗어나기 위해서 무엇을 해야 할까? 전세의 수명이 다했다는 주장도 있다. 1000조 원이 넘는 전세보증금이 은행에 있는 것이 아닌 이상 전세는 쉽게 없어지기 어렵다. 전셋값이 조금만 떨어져도 역전세 문제가 발생하는 것도 전세보증금이 임대인의 수중에 없는 주택 투기자금이기 때문이다.
전세비중을 줄이면서 공공임대주택을 늘리고 월세 부담을 완화하여 월세가 전세보다 나쁜 주거 대안이 되지 않도록 정책 목표를 정하는 것이 최우선이 되어야 한다. 전월세신고제를 확대하여 임대주택과 임대사업자 등록을 의무화하는 것이 필요하다. 임대주택의 품질을 향상할 수 있고, 건전한 임대사업자도 육성할 수 있다.
임대시장에 대한 정보를 축적해야 시장 동향을 파악하고 시장 변동에 적절하게 대처할 수 있다. 전세임대에 대해서는 금융기관에 대한 지급준비금 규제처럼 보증금의 일정비율에 해당하는 금액을 금융기관에 의무적으로 예탁하도록 하면 역전세 문제에 대처할 수 있을 것이다.
임대인이 전세만으로는 여러 채의 주택임대사업을 하지 못하게 해야 한다. 주택임대사업에서 적정한 현금흐름이 확보돼야 세금이나 건보료 등을 내고, 주택의 정상적인 유지관리도 가능하다. 무엇보다 전세보증금이 갭 투기 재원으로 활용되지 못하게 해야 한다. 집값과 전셋값 사이의 적정한 차이가 있어야 집값이 떨어져도 깡통전세가 되는 것을 막을 수 있다. 전세가율이나 보증비율 상한을 정하는 것이 좋겠다. 집값의 급격한 변동을 막으려면 전세시장의 안정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전세대출에서도 차주의 상환능력을 살펴보고 집값과 임대인의 보증금반환능력도 심사해야 한다. 전세대출은 결국 집값과 전셋값을 담보로 한 대출이기 때문이다. 전세대출이 있는 경우 전세대출 금액은 보증을 하지 않는 것도 은행의 책임성을 강화하는 방안이 될 수 있다.
전세보증금반환보증은 오로지 임차인의 자금만 보호하면 된다. 임차인이 전세대출 이자를 내지 못하는 것은 임차인 책임이지만, 임대인의 보증금 미반환으로 전세대출 원금을 상환하지 못하는 것은 임차인이 아닌 임대인 책임이자 은행이 져야 하는 위험이다. 보증금 미반환을 임차인 책임으로 돌리는 것은 은행의 책임 회피에 불과하다. 이런 방식의 대출 관행은 개선돼야 한다.
[기획 - 위기의 가계부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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