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07.12 04:49최종 업데이트 23.08.11 15: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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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 검단신도시 아파트 지하주차장 붕괴 사고와 관련해 시공사인 GS 건설이 5일 사고가 난 아파트 단지 전체에 대한 전면 재시공 계획을 밝혔다. 재시공 계획 단지는 총 17개동, 1천666가구에 달한다. 6일 촬영한 GS건설의 검단신도시 아파트 건설현장. 지난 4월 사고가 발생한 구역이 가려져 있다. ⓒ 연합뉴스

 
"작년 현대산업개발 광주 아파트 붕괴는 20층 이상 위쪽에서 났어요. 이번 GS건설 검단 아파트는 지하주차장이 무너졌어요. 뭐가 더 위험해요? 아래가 무너진 게 훨씬 위험해요. 비슷한 하중이 있을 때 다른 지하까지 붕괴되면 아파트 전체가 다 무너질 수 있다는 소리예요. GS건설 입장에선 계산기 다 두들겨봐도 '전면 재시공'밖에 답이 없으니까 선택한 거죠. '파격'이니 뭐니 하면 안 돼요." - 35년차 건설 현장 노동자 A씨

GS건설의 인천 검단신도시 신축아파트 지하주차장이 붕괴한 원인으로 철근이 누락돼 있었다는 정부 조사결과가 나오자 '순살 자이'(아파트 브랜드를 뼈 없는 치킨에 빗댄 것) 비판이 커지는 가운데, 건설 현장 일선에선 "대한민국 건설이 갈 데까지 갔다"는 한숨이 나온다. 그 전에도 돈을 아끼려 일부 철근을 빼돌리는 일은 비일비재했지만, 대형 건설사 신축 아파트의 지하가 무너져 내릴 정도까지 품질이 떨어지는 수준은 아니었다는 것이다.


일선 노동자들은 불법 다단계 하도급으로 저가 경쟁을 벌이던 건설사들이 저숙련 이주 노동자들로 현장 인력을 90% 가까이 채우는 지경까지 치달으면서 사고가 터졌다고 입을 모았다. 

건설 일 중에서도 철근공은 다른 직종에 비해 진입 장벽이 낮은데, 최근 베트남 등에서 유입된 저숙련 이주 노동자들이 일용직 철근공으로 대거 몰렸다. 반면 숙련도 높은 철근공들은 현장에서 찾기 어려워졌다. 오직 비용 절감을 이유로 건설현장 내 숙련공이 실종됐고, 이로 인해 시공 단계에서의 자체적인 감시와 기술 전달이 되지 않으면서 전단보강근(철근) 결속 등 기초조차 지켜지지 않아 신축 주차장이 무너지는 황당한 일이 일어났다는 것이다. 

"현장에 경험 많은 기능공들이 사라졌다" 
 

지난 2일 오후 인천시 서구 검단신도시 모 아파트 신축 공사장에서 국토교통부 사고조사관이 현장 점검을 하고 있다. 이곳에서는 지난달 29일 지하 주차장 1∼2층의 지붕 구조물이 무너지는 사고가 발생했다. ⓒ 연합뉴스

 
인천 지역에서 35년째 건설노동자로 일하는 A(62)씨는 GS건설 사태에 관해 묻자 "터질 게 터진 거지만, '이 지경까지 됐나'하는 생각에 자괴감이 든다"며 혀를 찼다. A씨는 "우리나라 아파트 현장이 아무리 문제가 많다 해도, 기초 지반에 속하는 지하주차장이 무너져 내리는 경우는 노가다 평생 처음 봤다"고 했다.

그는 "현장에 경험 많은 기능공들이 아예 사라졌다"라며 "기능공들은 감으로라도 '이 정도면 나중에 문제가 생긴다'는 걸 안다"고 했다. "20~30년 경험 있는 사람들은 지시를 받더라도 '이건 철근이 너무 적은 것 아니냐'고 따질 수 있지만, 갓 들어온 베트남 노동자들은 시키는 대로 할 뿐"이라는 것이다.

통상 철근공 일당 시세는 베트남 노동자 18만~20만원, 조선족(중국 동포) 23만~24만원, 내국인이 26만원 선이다. A씨는 "건설사들은 불법이라는 걸 알면서도 무조건 값싼 인력을 쓰려고 이들에게 하도급에 하도급을 주고 있다"고 했다.

그는 "문제는 고정된 인원이 한 현장에서 지속적으로 일하는 내국인들과 달리, 베트남 노동자들은 소위 '로타리'라고 부르는 일용직 철근공이라는 점"이라 말했다. 그는 "외국인들은 이른바 '물량 떼기' 방식으로 일해 하루 물량을 마치면 떠나고 내일은 또다른 현장으로 가는 사람들"이라며 "그만큼 책임감 있게 품질과 안전에 신경을 쓰지 않는다"고 했다. 현행 건설산업기본법상 이같은 재하도급은 불법이다.

"GS만 무너졌을 뿐, 크게 안 달라... 철근공 90%가 외국인"  

경인 지역에서 30년째 건설노동자로 일하는 B(55)씨 역시 "아파트가 어떻게 지어지든 단가 맞추는 데만 급급한 불법 하도급 구조가 사태의 근본 원인"이라고 했다. 그는 "GS건설이 문제가 많은 현장이었던 건 맞지만, '무너졌냐, 안 무너졌냐'만 다를 뿐 여타 현장도 크게 다르지 않다"고 털어놨다.

B씨는 "철근공의 경우 특히 코로나 이후 베트남 등에서 온 외국인 노동자가 현장의 90% 이상을 차지하고 있다"라며 "GS건설 같은 대형 건설사라도 엄밀히 말하면 '메이드 인 코리아'가 아니다"라고 했다.

인천에서 33년째 건설노동자로 일해온 C(57)씨 얘기도 비슷했다. 그는 "한 현장에 철근공이 70~80명 정도 되는데 이중 내국인은 많아야 6명"이라며 "GS건설 같은 1군(대형) 건설사 현장도 다르지 않다"고 했다. 그는 "내국인·외국인 비율이 50% 대 50% 정도만 돼도 검단 같은 어처구니 없는 사고가 안 날 것"이라며 "지금처럼 90% 대 10%까지 치우치면 사고가 날 수밖에 없다"고 했다.

C씨는 "현장에서 발언권이 있는 내국인들은 '해도 해도 너무 한다' 싶으면 말을 하고, 설령 받아들여지지 않더라도 사진을 찍어두는 등 일종의 감시와 견제가 이뤄진다"라며 "건설사 입장에서는 그런 것들이 싫기 때문에 내국인보다 외국인을 선호하는 것도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최근 정부의 건설노조 탄압에 따른 우려도 나온다. 실제 건설노조 소속 숙련공들이 일을 얻지 못하는 경우가 많아졌고, 현장에서도 위축돼 부실 시공 지적이 더 어려워진다는 것이다. 실제 지난 3월에는 의정부 우미·우영건설 아파트 신축공사현장에서 조합원들이 '내진 철근'이 아닌 '일반 철근'을 썼다며 사측에 문제제기를 했다가 80여 명 노동자가 집단 해고되기도 했다.

수도권에서 30년 넘게 건설노동자로 일했다는 D(59)씨는 "철근을 빼는 건 단종(전문건설업체)도 못하고 그 위에 원청 건설사만 결정할 수 있다"라며 "원청과 상대할 수 있는 힘을 가진 건 노동조합뿐"이라고 했다. 그는 "내국인들도 노조 없이는 지속적으로 안전 문제를 떠들기 쉽지 않다"면서 "까딱하면 임금도 못 받고 쫓겨나는 외국인 불법체류자(미등록 이주 노동자)들이야 오죽하겠나"라고 했다.

전문가들 "전면 재시공은 시장 실패, 정부조사 핵심 빠졌다"
 

지난 2022년 1월 16개 층이 한꺼번에 붕괴한 사고가 발생한 광주 HDC현대산업개발 화정아이파크 모습. ⓒ 연합뉴스

 
전문가들은 향후 정부 대응도 불법 다단계 하도급 근절에 초점을 둬야 한다고 강조했다.

심규범 건설근로자공제회 경영전략본부 조사연구센터 전문위원(경제학 박사)은 통화에서 "작년 광주 화정 현대산업개발 아이파크 아파트 붕괴 사고에 이어 전면 재시공 사례가 재차 반복되는 것은 명백한 비정상이자 시장 실패"라고 했다. "저가 낙찰제 등 단가 경쟁에만 매몰된 건설 시장에만 맡겨놔서는 거듭되는 안전 사고 문제를 결코 해결할 수 없다는 게 다시금 확인됐다"는 것이다.

그는 "지금까지 나온 정부 조사는 철근 누락 등 기술적인 단계에만 머물러 있다"면서 "GS건설 현장에서 다단계 하도급이 몇단계까지 이뤄졌는지, 저임금 외국인 노동자는 얼마나 썼는지, 그래서 실제 단가가 얼마까지 떨어졌는지 등 보다 핵심적인 사항들에 대한 조사와 수사가 이뤄져야 한다"고 지적했다.

심 위원은 또 "실제 현장에서 건물을 짓는 것은 대학 나온 기술자들이 아니라 시공 경험이 많은 기능공들"이라며 "아무래 맨 위 원청이 GS건설 같은 1등급 업체라 한들, 불법 다단계가 많아지면 많아질수록 통제에서 멀어지고 일선에서 일하는 양태는 다 똑같아진다"고 했다.

어광득 민주노총 건설노조 경인건설지부 사무국장은 "GS건설 사고가 재발되지 않으려면 국가 정책 차원에서 어떻게 현장에 고숙련 건설 기술인력을 유지 확보할 것인지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고 짚었다. 그는 "종합건설업체가 철근업체 등 전문건설업체에 하도를 주고, 그 업체들이 또 그 아래 하도를 주고 내려가는 다단계가 부실 시공의 근본 원인이라는 걸 국토부도 뻔히 안다"면서 "그런데도 아무런 대책을 내놓지 않고 있다"고 꼬집었다. 

건설업 등록 말소도 가능한 부실시공... 국토부 선택은?
 

GS건설 검단 사고 단지 전체 재시공, 천문학적 비용 소모될 듯 인천 검단신도시 아파트 지하주차장 붕괴 사고와 관련해 시공사인 GS 건설이 5일 사고가 난 아파트 단지 전체에 대한 전면 재시공 계획을 밝혔다. 재시공 계획 단지는 총 17개동, 1천666가구에 달한다. ⓒ 연합뉴스


앞서 지난 4월 29일 GS건설이 시공을 맡은 인천 서구 원당동 검단신도시 아파트(AA13-2블록 1666세대) 신축현장에서 지하주차장이 붕괴됐다. 입주를 불과 5개월 앞둔 시점이었고, 주차장 위에는 아이들이 쓰는 놀이터가 들어설 예정이었다.

지난 5일 국토교통부 건설사고조사위원회는 지하주차장을 떠받치는 기둥 32개 중 절반 가량인 15개에서 전단보강근(철근)이 누락됐다고 발표했다. GS건설은 단지 전체를 전면 재시공하겠다고 밝혔다. 전면 재시공은 지난 2022년 1월 광주시 현대산업개발 화정아이파크 아파트 붕괴 참사 이후 두 번째다.

이외에도 GS건설은 올해에만 서울 중구 서울역 센트럴자이 아파트에서 외벽 균열, 서울 강남구 개포자이 아파트 지하주차장과 경기도 평택 지제역자이 아파트에서 지하 주차장에 물이 새 '순살 아파트'라는 오명을 얻었다. 

국토부는 오는 8월 중 GS건설의 전국 83개 현장 전수조사 결과를 발표하고, 검단 아파트 부실시공에 대한 행정처분도 내릴 예정이다. 건설산업기본법상 부실 시공은 영업정지, 건설업 등록 말소도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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