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07.11 13:35최종 업데이트 23.07.11 13: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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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5월 2일 오후 인천시 서구 검단신도시 아파트 신축 공사장에서 국토교통부 사고조사관이 현장 점검을 하고 있다. 이곳에서는 지난달 29일 지하 주차장 1∼2층의 지붕 구조물이 무너지는 사고가 발생했다. ⓒ 연합뉴스


'철근 빠진 순살 자이.'

GS건설의 아파트 브랜드 '자이'가 순살 치킨처럼 뼈대가 부실하다고 해서 오명을 쓰고 있다. 대형 건설사들의 하자 논란은 비단 어제오늘의 얘기는 아니다. 국민이 분노하는 지점은 '평생의 꿈'을 짓밟힌 배신감에서 비롯된다. 대한민국에서 집 한 채를 가지려면 인생 전체를 저당 잡혀야 한다. 그렇게 얻은 꿈이 와르르 무너지고 유예 당한다면 그 꿈을 다시 그려야 하기에 지난하고 고통스러운 것이다.


지난 4월29일 발생한 인천 검단신도시 아파트 지하 주차장 붕괴 사고는 설계·감리·시공 등 사업 진행 과정 전반의 총체적 부실이 원인이었다. 이 사고로 지하 주차장 1·2층의 지붕 층 슬래브가 붕괴됐다. 지하 주차장을 받치는 32개 모든 기둥에 있어야 할 '전단보강철근'이 설계상 15곳에서 빠졌던 것으로 드러났고, 시공 과정에서도 기둥 8곳 중 4곳에서 설계와 다르게 철근이 빠졌다. GS건설 '자이'는 삼성물산의 '래미안'과 함께 아파트 브랜드 1위를 다투던 곳이다.

철근을 덜 넣고도 돈을 버는 사람들, 철근을 빼고도 철면피로 사는 사람들, 그러고도 무너지지 않을 것이라 여겼던 사람들, 그러고도 두 발 뻗고 잤을 사람들, 이런 '잠재된 가해자'를 방기한 관리감독관들. 이들의 사죄는 용서의 대상이 아니다. 용서는 용서받을 사람이 준비가 됐을 때만 가능한 것이다.

무너진 주차장과 아파트 전체 17개동 1600여 가구는 전면 재시공된다. 이로 인한 손실 규모는 GS건설 자체 추산에 따르면 5500억 원이다. 철거공사비, 신축공사비, 입주 예정자 관련 비용을 감안한 금액이다. 

지난 2020년 이후 접수된 GS건설의 하자 건수는 2818건으로 시공능력평가 상위 10개 건설사 평균(795건)의 3.5배 수준에 달했다(국회 국토교통위원회 허종식 의원실). 또한 건설업계 전체를 보면 최근 2년간 부실시공이 적발돼 벌점이 부과된 사례는 698곳에 달했으며, 대형 건설사도 예외는 아니라서 지난해 기준 시공능력평가 상위 10곳 중 7곳이 벌점을 부과 받기도 했다(국토부 건설산업지식정보시스템).

하도급에 재하도급까지... 출혈 경쟁이 불러온 부실
 

인천 검단신도시 아파트 지하주차장 붕괴 사고와 관련해 시공사인 GS 건설이 지난 5일 사고가 난 아파트 단지 전체에 대한 전면 재시공 계획을 밝혔다. 재시공 계획 단지는 총 17개동, 1천666가구에 달한다. 6일 촬영한 GS건설의 검단신도시 아파트 건설현장. 지난 4월 사고가 발생한 구역이 가려져 있다. ⓒ 연합뉴스

 
이 논란의 뼈대를 살피려면 10여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2014년 3월 세종시 1-4 생활권에 들어서는 'OO아파트'가 준공 9개월여를 앞두고 철근이 빠져 부실 시공됐다는 논란에 휩싸였다. 행정중심복합도시건설청 정밀 조사 결과 4개 동 벽면 16개소에서 철근 설계가 잘못된 것으로 드러났다. 수평철근을 12~15㎝ 간격으로 시공해야 하는데 이 간격을 넓혀 철근을 설계보다 9~60% 적게 넣은 것이다. 이에 입주민 723가구 중 200여 가구가 계약을 취소했다.

당시 세종시에 살고 있던 나는 큰 충격을 받았다. 내가 거주하고 있는 아파트는 아니었지만 행정도시를 건설한다면서 '철근 뺀 신도시'를 만들 수 있는 것인지 분노를 금할 수 없었다.

한편 1년 6개월 전인 2022년 1월에는 광주시 서구 화정동의 한 아파트 신축 공사현장에서 콘크리트 타설 후 보양 작업 중이던 201동 건물 39층(PIT층) 바닥이 붕괴했다. 붕괴는 하부 16개 층 외벽과 슬래브로 이어졌다. 업체는 모든 동을 철거한 후 전면 재건축하기로 했다. 이로써 완공도 5년 이후로 늦춰졌다. 2014년엔 대전시 유성구에 짓고 있던 OO아파트 한 개 동이 벽체 콘크리트 강도 부실로 '철거 후 재시공'된 바 있다.

인터넷 커뮤니티 '부동산 스터디' 게시판에는 "철근 빼먹고 기준 미달 콘크리트를 쓰는 건설사가 어디 GS건설뿐이겠느냐", "대다수 건설사가 불법 하도급을 주니 시공이 엉터리일 수밖에 없다", "주차장이 무너졌는데 아파트 전체를 허물고 다시 짓는다는 걸 보면 다른 곳에도 문제가 많을 것", "1급 건설사가 이 정도면 그 이하 업체는 볼 것도 없다"는 등 부정적 여론이 대부분이다.

나는 공사현장 막노동을 하면서 건설업계의 고질적인 관행 중 하나인 '하도급·재하도급'에 대한 본질적 문제를 생각한 적이 있다. 부실시공의 원인은 독점적 카르텔일 수도 있는 먹이사슬에서 비롯됨을 인지했다. 가령, 대단지 아파트 신축공사를 수주한 종합건설사(대기업)는 분야별로 일부 전문건설사들에 일감을 나눠주고, 일감을 따낸 전문건설사들은 또다시 더 작은 전문건설사에 일감을 맡기면서 재하도급이 이뤄진다.

이렇게 밑으로, 밑으로 내려가다 보면 말단에서 일감을 받는 영세 업체들은 '일만 하고 돈은 못 버는' 출혈경쟁에 내몰리게 된다. 결국 노동자들에게 임금을 제대로 줄 리 없고 자신들 이익도 뽑아내야 하니 그 과정에서 부실이 발생하는 구조다.

집값이 폭등하든가, 혈압이 폭등하든가
 

홍건호 건설사고조사위원장(호서대 교수)이 지난 5일 정부세종청사에서 인천 검단 아파트 지하 주차장 붕괴 사고 특별점검 및 위원회 조사 결과를 발표하고 있다 ⓒ 연합뉴스


실제 국토부가 지난 5월 말부터 20일에 걸쳐 전국 77개 불법하도급 의심 현장을 점검한 결과, 33개(42.8%) 현장에서 58건의 불법하도급이 적발된 바 있다. 특히 적발된 불법하도급 58건 중 42건(72.4%)은 건설업을 등록하지 않거나 해당 공사 공종 자격을 갖추지도 못한 업체에 공사를 하도급한 무등록·무자격자 하도급이었다. 이 밖에도 공기(工期)에 맞춰 서두르는 '빨리빨리(8282)' 문화도 부실 건설의 원인으로 꼽힌다.

전문가들이 부실시공의 주요 원인 중 하나로 꼽는 건설 현장의 전문성 결여와 허술한 관리체계는 '알고도 안 지키는' 사항이다. 현행법상 모든 건축 설계와 감리는 건축사만 가능하도록 규정하고 있지만, 실제 공사 현장에는 건축사가 상주하지 않기 때문에 감리가 제대로 이뤄지기 힘들다.

도시는 오로지 사람을 위한, 사람에 의한, 사람의 공간으로 만들어져야 한다. 저마다 '아트 아파트'라며 선전하지만 아파트는 아프다. 자고 나면 아파트가 세워진다고 해서 별칭이 붙은 '벌떡 아파트'는 지금도 부(富)의 마천루만 쌓아가고 있다.

'플라멩코의 나라' 스페인을 여행한 적이 있는데 이 나라엔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이 41개나 있다. 알람브라 궁전은 장장 250년에 걸쳐 만들어졌다. 바르셀로나 사그라다 파밀리아 성당(성가족성당)은 140년째 신축 중이고, 가톨릭의 총본산 톨레도 성당은 266년 만에 완성됐다. 수백 년 공들여 짓다 보니 건물의 수명도 수백 년이다.

도시국가 싱가포르에는 똑같은 건물이 없다. 하나하나의 건물이 예술적인 조각품이다. 중국경제의 상징으로 떠오른 상하이의 푸둥지구도 30층 이상의 빌딩들이 1000여 개가량 들어서 있지만 닮은 게 없다. 오랜 기간 공을 들이니 튼튼하고 아름다울 수밖에 없다.

여기에 비하면 우리네 아파트는 어떤가. 어딜 가나 붕어빵이다. 눈높이에 맞추지 않고 '돈 높이'에 맞추다보니 생긴 일이다. 우리나라 주택의 건물수명을 길게 잡아 40년 정도라 치면 매년 다시 지어야 하는 집이 약 40만 채에 이른다. 결국 우리나라는 적어도 매년 70~80만 채의 집을 꾸준히 지어야만 하고, 이게 해결되지 않으면 언제든지 집값이 폭등하거나, 혈압이 폭등하거나 둘 중의 하나다. 그러나 뭐니 뭐니 해도 안전한 아파트, 튼튼한 아파트, 사람다운 아파트를 짓는 게 우선이다.

"사과하실 거면 하지 마세요. 말로 하는 사과는요. 용서가 가능할 때 하는 겁니다. 받을 수 없는 사과를 받으면 억장에 꽂힙니다. 더군다나 상대가 사과받을 생각이 전혀 없는데 일방적으로 하는 사과, 그거 저 숨을 구멍 슬쩍 파놓고 장난치는 거예요." -영화 <우아한 거짓말>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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