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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의 광기가 갖는 색다른 의미

[리뷰] 영화 <블레이즈>

23.07.14 17:06최종업데이트23.07.14 17: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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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대 소녀, 블레이즈는 한 여성이 당한 폭력 피해의 유일한 목격자로 사건 이후 정신 불안 증세를 겪는다. 그녀만의 도피처인 상상의 세계에서, 그녀는 오랜 친구이자 반짝이게 빛나는 마법의 용과 함께 내면의 분노를 표출하며 평온을 찾는다. 어린 시절의 충격적인 기억은 완전히 잊힐 수 없지만, 블레이즈는 마침내 두려움 없이 미래로 한 발짝씩 나아갈 수 있게 되었다.

진짜 패트로누스를 찾아서
 

영화 <블레이즈> 스틸 이미지. ⓒ 에이케이엔터테인먼트(주)

 
<해리 포터> 시리즈의 3편인 <아즈카반의 죄수>를 보면 '패트로누스 마법'이 핵심 소재로 등장한다. "익스펙토 패트로눔!"이라는 주문으로도 잘 알려진 마법이다. 패트로누스라는 일종의 방패를 소환하는 이 마법은 특히 디멘터라는 마법 생물을 막을 때 유용하다. 디멘터는 우울함과 절망감, 어두운 기억만을 떠올리게 만드는데, 패트로누스는 순수한 행복으로 이루어졌기에 디멘터의 영향으로부터 자유롭기 때문이다. 

중요한 건 패트로누스를 불러내기 위해서는 행복한 단 하나의 장면에 집중할 수 있어야 한다는 점이다. 기억이든 상상이든 상관없다. 따라서 주문의 사용자는 디멘터가 불러 내는 아픈 기억을 이길 정도로 강해야 한다. 과거의 트라우마나 콤플렉스에 잠식된 사람이라면 패트로누스를 불러낼 수도, 디멘터를 극복할 수도 없다. 

갑자기 웬 패트로누스 얘기냐고? 델 캐서린 바튼의 장편 데뷔작 <블레이즈>를 보면 패트로누스 생각을 안 할 수 없다. 데이트 폭력과 강간 후 살해 현장을 의도치 않게 목격한 블레이즈. 사건 이후 그녀는 트라우마에 시달리며 용이 등장하는 상상 속 세계를 도피처로 삼아 위로 받는다. 하지만 평생을 상상 속에서 살 수는 없는 노릇. 이제 블레이즈는 상상이 아닌 현실에서도 트라우마를 막아 줄 수 있는 진짜 패트로누스를 찾아야 한다. 

익숙함을 신선함으로

사실 <블레이즈>의 이야기는 그렇게 새롭지 않다. 그간 많은 여성 영화가 선택한 소재와 주제의 반복이다. 데이트 폭력을 비롯한 성폭력의 심각성을 일깨우고, 그로 인해 목숨을 잃는 여성들의 처지를 전달한다. 여성들이 연대해서 성폭력 가해자를 징벌해야 한다고 외친다. 예를 들면 <프라미싱 영 우먼> 같은 작품과 결이 비슷하다. 징벌의 방식이 법의 테두리 안이냐 밖이냐가 다를 뿐이다. 

자연히 <블레이즈>는 신선함을 담보할 수 없는 영화다. 소재와 주제가 그 중요도나 심각성과는 별개로 이미 익숙한 사안이기 때문이다. 한국 범죄 영화나 드라마에서 버닝썬 사건을 모티브로 삼은 장면이 클리셰처럼 등장하듯이. 

대신 <블레이즈>는 이야기를 풀어내는 화법의 측면에서 예상치 못한 일격을 날린다. 영화는 사건과 관련된 수사와 가해자에 초점을 맞추지 않는다. 사건의 목격자인 주인공이 마주한 내면의 공포와 사춘기를 겪어내는 10대의 여정에 초점을 맞춘다. 특히 그 여정의 핵심 키워드인 '여성의 광기'를 대사와 대화가 아닌 다채로운 이미지로 빚어낸다. 

광기의 여러 모습
 

영화 <블레이즈> 스틸 이미지. ⓒ 에이케이엔터테인먼트(주)

 
실제로 영화는 블레이즈 내면에 자리 잡은 여러 광기의 이미지를 보여준다. 처음에 광기는 트라우마를 이겨내기 위한 방어 기제로 등장한다. 드래곤이 대표적이다. 항상 블레이즈 방 한편에 자리 잡고 있는 용은 존재만으로도 그녀에게 심리적 안정을 가져다준다. 쌍을 이루는 수많은 인형도 또 하나의 도피처다. 그녀는 인형들과 함께 해변을 거닐면서 즐거운 시간을 보낸다. 

하지만 이내 광기는 점점 공격적인 성격을 드러낸다. 일례로 드래곤의 역할이 달라진다. 방에서 단순히 위로를 해주던 드래곤 대신 불을 내뿜는 다른 드래곤이 등장한다. 법정에서 사건의 피의자는 변호사를 내세워 무죄를 주장한다. 그 광경에 화가 난 블레이즈는 목격잔 진술 중에 피의자를 불태우는 상상을 한다.  

더 많은 이미지가 뒤이어 등장한다. 블레이즈는 집의 뒤뜰 혹은 울창한 숲의 한가운데 같은 곳에서 시끄러운 록 음악에 몸을 맡긴 채 머리를 뒤흔든다. 앞뒤 사정을 모르더라도 이 장면만 보면 '미쳤다'라는 인상을 받기에 충분하다. 눈이 아플 정도로 색이 바뀌는 조명도 한몫한다. 

블레이즈의 괴기한 내면은 하나의 이미지로 응축된다. 바로 달이다. 사다리를 타고 보름달 앞에 올라간 블레이즈. 그녀는 옷을 벗고 달을 껴안고, 그제야 편안함을 느낀다. 왜냐하면 늑대인간도 보름달빛을 받아 변신하듯이 서구권 전통에서 달과 광기는 한 몸이니까. 또 라틴어로 달은 'Luna'이고, 'Lunatic'이라는 영어 단어는 정신이상자를 지칭한다. 갑작스럽게 등장한 이미지이지만 달과 블레이즈의 교감이 의미심장한 이유다. 

광기는 단순히 미친 게 아니다
 

영화 <브레이즈> 스틸 이미지. ⓒ 에이케이엔터테인먼트(주)

 
그러니 아버지 눈에 딸은 점점 미쳐가는 것처럼 보인다. 지나친 공격성과 폭력성으로 인해 블레이즈가 자해하자 아버지는 의사 말마따나 약물 치료를 시도하기도 한다. 하지만 딸이 약을 안 먹는 등 치료에 응하지 않자 합리적인 결정을 한다. 블레이즈를 정신병원에 보낸다. 현실과 상상을 분간하지 못해 자동차 사고까지 내는 판국이니, 최선의 선택처럼 보인다. 

흥미로운 것은 오랜 기간 언제나 광기, 그중에서도 특히 여성의 광기는 항상 이런 식으로 다뤄졌다는 점이다. 문화적, 역사적 맥락 안에서 광기는 비합리였고, 정신질환을 비과학이었다. 광기는 제거될 대상이고, 정신이상자는 사회에서 배척됐다. 특히 여성의 광기는 더 위험하다고 간주됐다. 유럽의 마녀 사냥이 대표적이다. 정통성 있는 권력(가톨릭)의 시점에서 여성들에게 주로 전수된 마법이나 주술 같은 전통은 제거 대상이었다.

이러한 맥락에서 보면 블레이즈의, 곧 여성의 광기는 색다른 의미를 갖는다. 단순한 일탈이 아니다. 저항이다. 어리다는 이유로 보호하고, 나약하다는 이유로 목격자로서의 진술을 막아서는 사회와 어른을 향한. 트라우마를 정면으로 극복하는 대신 정신과 치료를 권유하며 보호하려고만 하는 어른에게. 자기를 미쳤다고 매도하면서 죗값을 치르지 않은 피의자를 감싸는 듯 보이는 시스템에. 블레이즈는 광기로서 저항한다. 
 
그녀가 정신병원 상담사에게 던지는 질문은 이미지의 홍수 사이에 숨은 메시지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그녀의 질문은 근본적인 의문이다. 성폭력범, 살인자는 멀쩡히 살아가는데 왜 목격자와 피해자만 고통스러워야 하는지. 왜 사회는 가해자를 곧바로 단죄하지 않는지. 시스템에 대한 본질적인 의문을 던진다. 그녀가 정신과 약을 숨기고 먹지 않는 것도 같은 맥락에서 볼 수 있다. 이는 단순히 치료를 거부하는 정신병자의 행동이 아니다. 자기의 광기를 치료하기 이전에 올바른 심판을 통해 진짜 문제와 원인을 해결해야 한다는 의사표시다. 

소녀, 드래곤이 되다

질문만 던지는 데서 멈추지 않는다. 영화는 답을 스스로 찾는다. 상상 속에 숨고 도망가는 것은 답이 될 수 없다. 광기를 공개적으로 표출하는 것도 사회와 시스템을 바꾸지는 못한다. 그러니 답은 하나다. 광기를 승화해 내적으로 단단해져야 한다. 분노, 충격, 공포에 휩쓸리지 않은 상태로 법정에서 당당히 진술할 수 있어야 한다. 그래서 블레이즈는 상상 속의 드래곤을 죽인다. 대신 스스로 자기를 보호할 드래곤이 된다. 

<블레이즈>의 이 클라이맥스 역시 광기의 알레고리가 가득하다. 결말부에 블레이즈가 어두운 나무들 사이에서 춤추는 장면 사이로 일전에 블레이즈의 광기를 보여준 수많은 이미지가 스쳐 지나간다. 고막을 때리는 하드 한 록 음악과 정신없는 조명 속에서 컷들은 빠른 속도로 전환된다. 마치 디오니소스의 축제를 보는 듯하다. 고대 그리스 사람들이, 특히 여성들이 디오니소스 축제 때 밤에 노래 부르고 춤추며 열광과 무아지경에 빠졌던 것처럼 블레이즈도 광기에 빠져든다. 그렇게 블레이즈는 광기 안에서 더 단단한 드래곤으로 거듭난다. 

마지막으로 피의 이미지가 블레이즈의 성장과 변화에 담긴 연대의 의미를 강조한다. 정신병원에서 블레이즈는 첫 생리를 한다. 그녀의 상상 속에서는 폭포수처럼 뿜어져 나오는 피에 흠뻑 젖는다. 이 피의 이미지는 그녀가 드래곤을 죽이는 장면을 이어진다. 흰색 침대에 생리혈이 묻었듯이, 순백색 드래곤의 배를 가르고 피를 적신 채 그녀는 드래곤이 된다. 이렇게 영화는 모든 소녀가 여성으로, 드래곤으로 성장해야 한다고 말한다. 여성의 광기를 긍정하고, 저항적인 에너지로 승화시켜 함께 연대해야 한다고 외친다. 

어찌 보면 <블레이즈> 다소 진부할 수 있는 페미니즘의 메시지를 표현함에 있어서 새로운 세련됨을 보여주는 영화라고 할 수도 있다. 자칫 혼란스러울 수 있는 이미지의 연속이 사실은 정교하게 계산된 조합이라는 걸 영화가 끝나갈 때 비로소 깨달을 수 있으니.
덧붙이는 글 개인 블로그(https://blog.naver.com/potter1113)와 브런치(https://brunch.co.kr/@potter1113)에 게재한 글입니다.
영화리뷰 블레이즈 페미니즘 여성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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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를 읽는 하루, KinoDAY의 공간입니다. 서울대학교에서 종교학과 정치경제철학을 공부했고, 지금은 영화와 드라마를 보고, 읽고,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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