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07.26 05:29최종 업데이트 23.08.11 15: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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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참한 붕괴 사고 현장 지난 5월 2일 오후 인천시 서구 검단신도시 모 아파트 신축 공사장에서 국토교통부 사고조사관이 현장 점검을 하고 있다. 이곳에서는 지난 4월 29일 지하 주차장 1∼2층의 지붕 구조물이 무너지는 사고가 발생했다. ⓒ 연합뉴스

 
"기성금이 적으면 공사도 그냥 막 '빨리 빨리, 싸게 싸게' 가는 거예요." – 철근콘크리트 업체 사장 A씨

"우리도 저 가격에 (입찰)들어가면 죽는다는 거 알아요. 근데 안 넣고 배겨요? 당장 직원들 월급이라도 줘야 할 거 아니에요." – 전직 철근콘크리트 업체 사장 B씨



철근 누락으로 붕괴한 GS건설 인천 검단 아파트 지하주차장 사고에 대해 묻자 다수의 철근콘크리트 전문건설업체 대표들은 대답을 꺼렸다. 이들은 GS건설 같은 대형 건설사로부터 철근 공사를 도급 받아 사업을 하는 입장이기 때문이다. 한 전문건설업체 전무는 "원도급사에 잘못 보였다가 부도 나고 패가망신하는 건 시간 문제"라고 했다.

어렵게 취재에 응한 전문건설업체 관계자들은 부실 시공의 근본 원인은 저가입찰 방식에 있다고 입을 모았다. 원도급사가 입찰 단계부터 단가를 후려치면 하도급사들이 최저가 출혈 경쟁에 내몰리게 되고, 어렵게 수주를 따내더라도 가격을 맞추려면 어떻게든 인력을 줄이는 쪽으로 움직일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현장에선 품질이나 안전을 신경 쓸 수 있는 분위기가 안 된다고 했다.

"'빨리 빨리, 싸게 싸게' 가다 보면..."
  

한 전문건설업체 대표가 <오마이뉴스>를 만나 최근 GS건설의 '순살 아파트' 파문에 대해 말하고 있다. ⓒ 김성욱

 
30년 경력으로 직원 15명 규모의 철근콘크리트 업체를 운영하는 A(64)씨는 "원청에서 나온 현장관리자, 전문건설업체 소속 현장관리자, 감리원까지 적어도 세 단계가 콘크리트 타설 전 철근이 제대로 배근 됐는지를 점검한다"라며 "어느 한 단계라도 정상적으로 작동했다면 GS건설 사고처럼 전단보강근(철근)이 빠져 무너지는 황당한 일이 발생하지 않는다"고 했다.

A씨는 "결국 모든 당사자들이 그저 '빨리 싸게' 건물 올리고 후닥닥 돈만 타가던 곳이었다는 얘기"라며 "그런 분위기가 조성되는 건 원청 책임"이라고 했다. A씨는 "아파트 현장의 경우 대형 건설사들이 10개 정도의 전문건설업체들을 모아놓고 경쟁을 시킨다"면서 "하도급 계약은 '철근 1톤당 도급비 45만 원' 식으로 이뤄지는데, 저가입찰로 낙찰률이 50% 아래로 떨어지는 건 부지기수"라고 주장했다. 그는 "전문건설업체 입장에선 그래도 일단 울며 겨자 먹기로 수주를 받아놓은 다음, 나중에 노무 인력을 줄이는 것 외엔 방법이 없다"고 했다.

45년 동안 업계에 종사한 전직 철근콘크리트 업체 대표 B(71)씨 역시 "원청에서부터 '원가 줄이고 업자 죽이려' 달려드는 현장에서 안전관리를 기대하는 건 현실과 한참 괴리가 있다"라고 잘라 말했다.

B씨는 "철근 자재는 전부 원도급사가 지급하기 때문에 철근콘크리트 전문건설업체는 철근을 아낄 필요성 자체가 없다"라며 "GS건설 같은 큰 기업이 철근 몇푼 아껴서 뭐하겠냐고 하던데, 비단 한곳의 철근 자재뿐 아니라 전국의 수많은 현장에서 노무공량 등 모든 공정 비용을 아끼려 들었다면 결코 적은 돈이 아니다"라고 봤다. 관계자들에 따르면 최근 철근 가격은 톤당 100만 원, 철근공 일당은 25만 원 선이다.

또다른 전문건설업체 이사 C(70)씨는 "건설 현장은 워낙 복잡해 도면만 수만 장에 달한다"라며 "실제 현장에선 많아야 2~3명 되는 인원이 그 넓은 면적의 안전 점검을 다 하고 있다"고 했다. 그는 "도급비가 빠듯한 곳일수록 제대로 검측도 안 하고 정신 없이 굴러가고, 서로 사정을 아니 잘못이 발견돼도 덮어놓고 가기 때문에 사고가 터지는 것"이라고 했다. 그는 "오죽하면 철콘 전문 업체 수명이 10년을 넘기기가 힘들겠나"라면서 "기성금 못 받아 회사 돈, 개인 돈까지 끌어 노무자들 체불임금 주다가 신용불량자된 사장들도 수두룩하다"고 말했다.

"있는 시스템만 잘 지켜도... 처벌 강화해야"
  

인천 검단신도시 아파트 지하주차장 붕괴 사고와 관련해 시공사인 GS 건설이 5일 사고가 난 아파트 단지 전체에 대한 전면 재시공 계획을 밝혔다. 재시공 계획 단지는 총 17개동, 1천666가구에 달한다. 6일 촬영한 GS건설의 검단신도시 아파트 건설현장. 지난 4월 사고가 발생한 구역이 가려져 있다. ⓒ 연합뉴스

 
철근콘크리트 전문건설업체 관계자들은 시공에 문제가 있을 때 하도급업자도 원청에 문제제기를 하거나 관계기관에 신고할 수 있는 실질적인 제도가 필요하다고 했다. B씨는 "철근을 넣고 빼는 건 오로지 원청 권한"이라며 "전문건설업체들도 현장 전문가지만 지시에 따라 시공을 할 뿐, 원청에 아무 말도 못한다"고 했다. 그는 "한번은 나이도 훨씬 어린 원청 소장에게 '이렇게 배근하면 위험하다'고 했더니 '난 몇 달 있으면 나갈 사람이니 얘기하려거든 건설사에 직접 가서 하라'고 대놓고 면박을 주더라"라며 "말해봤자 눈밖에 날 게 뻔한데 군말 없이 일하는 게 더 편하지 않겠나"라고 했다.

A씨는 처벌 강화가 핵심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철근 공사의 경우 타설 전 검측 사진을 모두 남겨놔야 하는 등 이미 시스템은 잘 갖춰져 있다"라며 "있는 시스템을 잘 지키지 않았을 때 원칙대로 처벌하는 게 더 중요하다"고 말했다. A씨는 "작년에 광주에서도 화정아이파크 붕괴 사고가 나서 한동안 시끄러웠지만 지금 어떻게 됐나"라며 "조용히 유야무야 되더니 현대산업개발은 그대로 영업을 하고 있지 않나"라고 반문했다.
  

현대산업개발 광주 화정아이파크 붕괴 참사 지난 2022년 1월 12일 광주 서구 현대산업개발 화정아이파크 주상복합아파트 구조물 붕괴 사고 모습. 사고 이틀째인 12일 당국은 안전진단을 거쳐 실종자 수색 재개를 결정하기로 했다. 신축 공사 중인 이 아파트의 1개 동 옥상에서 전날 콘크리트 타설 중 28~34층 외벽과 내부 구조물이 붕괴하면서 작업자 6명이 실종됐다. ⓒ 연합뉴스

 
실제 6명의 사망자를 낸 2022년 1월 광주 화정아이파크 붕괴 참사와 관련해 국토교통부는 현대산업개발에 건설업 등록말소 또는 영업정지 1년 처분을 내릴 것을 서울시에 요청했지만, 서울시는 사고 1년 6개월이 지난 현재까지 행정처분을 미루고 있다.

그보다 앞서 9명의 사망자를 낸 2021년 6월 광주 학동 철거건물 붕괴 참사와 관련해선 현대산업개발에게 '부실시공'과 '하수급인 관리 의무 위반'으로 각각 8개월의 영업정지 행정처분이 내려졌지만, 이후 '하수급인 관리 의무 위반' 관련 영업정지는 서울시가 현대산업개발 측의 요청을 받아들여 4억 여원의 과징금 부과로 변경됐고, '부실시공' 관련 영업정지는 법원이 현대산업개발의 집행정지 가처분 신청을 인용하면서 효력이 멈춘 상태로 관련 재판이 진행 중이다.

이번 GS건설 붕괴 사고와 관련해선 국토부가 오는 8월 중 행정처분 요청 결과를 내놓을 예정이다. 지난 5일 국토부 건설사고조사위원회는 4월 29일 발생한 GS건설 검단 아파트(AA13-2블록 1666세대) 지하주차장 붕괴 원인에 대해 천정을 떠받치던 기둥 32개 중 절반 가량인 15개에서 전단보강근(철근)이 누락됐다고 발표해, '순살 아파트' 파문이 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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