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08.01 07:08최종 업데이트 23.08.11 15: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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붕괴 사고 발생한 인천 아파트 건설 현장 5월 2일 오후 인천시 서구 검단신도시 모 아파트 건설 현장에서 구조물이 파손돼 있다. 이곳에서는 지난 4월 29일 지하 주차장 1∼2층의 지붕 구조물이 무너지는 사고가 발생했다 ⓒ 연합뉴스


지난 4월 붕괴한 GS건설 검단 아파트 지하 주차장처럼 한국토지주택공사(LH)가 발주한 다른 아파트 단지 15곳에서도 철근이 누락돼 있었다는 정부의 추가 발표가 나온 가운데, 문제의 검단 공사 현장에서 9개월간 일했던 한 철근 노동자가 어렵게 인터뷰에 응했다.

20년 이상 경력의 철근공 A(50대·남)씨는 7월 31일 통화에서 "LH 발주 아파트에 유독 무량판(들보·벽 없이 기둥으로만 천장을 떠받치는 방식) 구조가 많다"라며 "검단처럼 절반이나 빠지는 경우는 없지만, 전단 보강근(천장 무게를 지탱하기 위한 철근)은 작업 시간이 오래 걸리기 때문에 대부분 다른 현장에서도 80% 정도만 들어간다"고 말했다.


2022년 1월부터 10월까지 GS건설 검단 아파트 공사 현장에서 일했다는 A씨는 "철근공은 시키는 대로 철근 작업을 할 뿐이지만, 검단 현장은 우리가 보기에도 전단 보강근이 너무 적게 들어는 것 아닌가 싶어 현장 소장에게 '이건 좀 이상하다'는 얘기를 했었다"고 회상했다.

그는 "검단 현장 내에서도 붕괴 사고가 난 지점은 바닥에 암석이 나와 유독 공기가 많이 늦춰진 곳이었다"라며 "공기를 만회하려 빨리 빨리 하다 사고가 난 것 같다"고 했다. A씨는 "당시 철근공 70여 명 중 60여 명이 베트남 출신 이주 노동자였다"고도 했다. 그는 현재 다른 현장에서 일을 하고 있다. 검단 현장에서 일했던 노동자의 공개 증언은 이번이 처음이다.

앞서 지난 5일 국토부 건설사고조사위원회는 4월 29일 발생한 GS건설 검단 아파트(AA13-2블록 1666세대) 지하 주차장 붕괴 원인에 대해 천정을 떠받치던 기둥 32개 중 절반 가량인 15개에서 전단 보강근이 누락됐다고 발표해 '순살 아파트' 파문이 일었다. 국토부와 LH는 전날(30일) 전국의 LH 발주 아파트 단지 91곳의 지하 주차장을 조사한 결과 15곳에서 전단 보강근 누락을 추가 발견했다고 밝혔다.

다음은 A씨와의 일문일답.

"현장에서도 '이상하다' 싶었다"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이 30일 오후 LH서울지역본부에서 열린 공공주택 긴급안전점검 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 연합뉴스


- 검단 아파트 지하 주차장이 붕괴했다는 소식을 듣고 어땠나.

"그 현장에서 나온 지 꽤 지났지만 선명하게 기억이 났다. 20년 넘게 철근 일 하는 동안 이런 적은 처음이다. 당시 현장에 전단 보강근이 한 차로 10톤 넘게 들어왔는데, 안 넣어도 된다고 해서 폐기 처분됐던 것으로 안다. 우리야 시키는 대로 하는 입장이지만, 전단 보강근이 너무 적게 들어가길래 현장 노동자들도 '이래도 되나' 싶었다. 현장 소장에게도 좀 이상하다고 말했지만 설계 구조가 그렇다고 했다. 도면대로 시공하는 입장에서 '왜 철근 안 넣냐'고 더 말할 수는 없다."

- 무량판 구조가 위험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다른 아파트 지하 주차장도 무량판 구조가 많은가.

"검단도 그렇고, LH (발주) 공사에 무량판이 많다."

- 다른 무량판 지하 주차장에서도 전단 보강근이 빠지는 경우가 많은가.

"아니다. 이렇게 절반씩이나 빠지는 경우는 없다. 하지만 그렇다고 모든 기둥에 전단 보강근이 다 들어가는 현장도 없다. 한 80% 정도 들어간다고 보면 될 것 같다."

- 왜 80%만 들어가나.

"전단 보강근은 어려운 공정은 아니지만 품이 많이 들어가고 시간이 오래 걸린다. 공사 현장에서는 공기가 생명이지 않나. 하루하루가 다 돈이니까. 전단 보강근은 두께 13mm, 길이 340mm로 기둥 하나에 적어도 700~800개, 많으면 1000개 들어간다. 손 빠른 철근공 기능공들이 하루 종일해도 기둥 6~7개 채우면 많이 채운 거다. 그러니 100% 다 넣는 경우가 드물다.

전단 보강근은 다른 철근에 비해 돈도 안 된다. 철근 공사 도급 계약은 철근 무게를 기준으로 하는데, 전단 보강근은 손만 많이 가지 일반 철근들보다 작고 가볍기 때문이다. 요즘 철근 1톤당 도급비가 35만~36만 원 정도 한다."

- 붕괴된 검단 아파트가 다른 곳보다 전단 보강근이 많이 빠진 이유는 뭐라고 보나.

"설계 과정까지 알 수는 없지만, 같은 아파트 현장의 다른 지점들도 그 정도는 아니었는데 유독 붕괴가 난 곳이 심했다. 그 자리가 원래 현장 출입 통로로 쓰였어서 제일 마지막에 공사를 했는데, 바닥에서 암(석)이 나와서 공사가 한 3~4개월 늦어졌다. 흙이면 그냥 파면 되는데, 돌은 계속 발파해가면서 파야 하니 오래 걸린 것이다.

공사하는 입장에서는 거기를 빨리 올려야 다른 데도 마무리를 할 수 있으니 더 서둘렀던 것 같다. 전단 보강근뿐만 아니라 콘크리트 양생도 다른 데는 보름씩 했는데 그곳은 2~3일 정도밖에 안 하고 넘어갔다. 이건 인부들끼리 했던 말인데, 바닥에 돌이 나와서 위에 공사를 좀 덜 신경 쓴 것 아닌가 싶기도 하다. 아래 지반이 튼튼하다고 생각한 것이다."

"나도 불안... 20~30년 전 아파트보다 철근 절반밖에 안 들어간다"
  

인천 검단신도시 아파트 지하주차장 붕괴 사고와 관련해 시공사인 GS 건설이 5일 사고가 난 아파트 단지 전체에 대한 전면 재시공 계획을 밝혔다. 재시공 계획 단지는 총 17개동, 1천666가구에 달한다. 6일 촬영한 GS건설의 검단신도시 아파트 건설현장. 지난 4월 사고가 발생한 구역이 가려져 있다. ⓒ 연합뉴스


- '순살 아파트' 파문으로 불안감이 커지고 있다.

"솔직히 아파트 짓는 나도 불안하다. GS건설에서 사고가 났지만 다른 곳도 다 비슷하다. 요즘 아파트들은 20~30년 전에 지은 아파트들보다 철근을 절반밖에 안 넣는다. 예전에 아파트 10개 동이면 철근이 7천~1만 톤은 들어갔다. 요즘은 철근 강도가 높아졌다면서 굵기도 얇은 걸 쓰고 개수도 덜 넣어서 5000톤도 안 들어간다. 기술적으로 괜찮다고 하는데 이렇게 철근이 많이 빠져도 되는지, 공사하는 사람이 보기에도 불안 불안하다. 우리끼리 '운 나쁘면 무너진다'고 한다.

- 무엇이 문제인가.

"비용 절감이 문제다. 공사 현장 100이면 100 쓰는 방법이 설계 변경이다. 처음에는 두께 22mm 철근 쓰겠다고 허가를 받아놓고 나중에 철근 강도를 높였다는 이유로 19mm나 16mm로 바꿔버리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철근 톤수를 줄이려는 것이다. 철근 시세는 톤당 100만~130만 원 정도다.

또 지금 공사판은 80~90%가 외국인 노동자들이다. 검단 현장은 하루에 일하는 철근공이 70~80명 정도 됐는데, 내국인은 나를 포함해 겨우 11명뿐이었다. 나머지는 전부 베트남 출신이었고, 간혹 중국인이 끼어있는 식이었다. 베트남 노동자 일당은 19만~20만 원, 내국인은 25만~26만 원이다. 단가 차이도 많이 나지만, 베트남 노동자들은 대부분 20대라서 업체들이 선호한다. 반면 내국인 철근공은 대부분 60대다. 일도 힘든데 인간 취급도 안 하니 젊은이들이 안 온다. 이러니 현장에 숙련공 맥이 끊긴다. 숙련공이 없어질수록 부실 시공이 더 늘어날 수밖에 없다. 외국인 노동자들은 입국하자마자 이튿날부터 '깔꾸리(철근결속기)' 들고 나와서 일한다."

- 앞으로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게 하려면 무엇을 해야 하나.

"내려오는 철근 하도급 단가가 20년째 제자리다. 근데 그 사이 인건비는 두 배로 올랐다. 20년 전 철근공 일당은 10만~11만 원이었다. 그러니 비용 절감에 목을 매지 않겠나. 공기 줄이는 수밖에 없는 거다. 철근 적게 넣을 수밖에 없는 거다. 다단계 하도급 중간에 다 빠져나가니 실제 현장만 안 좋아진다. 검단 현장도 내국인들은 저층까지만 하고 단가가 안 맞아 현장에서 다 나갔다. 다른 곳도 똑같다. 언제까지 이럴 거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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