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08.03 10:38최종 업데이트 23.08.11 15: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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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영철 경실련 국책사업감시단장(공학박사·기술사)이 1일 경기도 성남시에서 <오마이뉴스>와 만나 GS건설 검단 아파트에서 촉발된 '순살 아파트' 사태에 대해 인터뷰하고 있다. 경실련은 검단 아파트 공사 현장 설계·감리업체에 LH 전관이 채용됐었다며 특혜 의혹에 대한 감사를 청구했다. ⓒ 김성욱

 
철근 누락으로 지하주차장이 무너져 '순살 아파트' 사태를 빚은 GS건설 검단 아파트의 발주자는 한국토지주택공사(LH)였다. 그런데 검단 아파트 공사의 설계·감리를 맡은 업체들 모두 LH 퇴직 관료들이 재취업했던 곳이었다.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경실련)에 따르면, 검단 현장에서 경쟁입찰이 아닌 수의계약 방식으로 50억원의 설계 용역을 따낸 '유선엔지니어링건축사사무소'에는 LH뿐만 아니라 국토부·서울주택도시공사(SH)·조달청·행정중심복합도시건설청 등의 전관들이 채용됐었다. 종합심사낙찰제를 통해 123억 원의 감리 용역을 따낸 '목양종합건축사사무소'에는 최소 18명 이상의 LH 전관들이 채용됐었다.


비단 GS건설 검단 아파트뿐만이 아니었다. 최근 국토부가 철근 누락을 추가 적발한 LH 발주 아파트 15개 단지 중 13곳의 설계업체, 8곳의 감리업체가 모두 LH 전관이 스카우트된 회사들이었다. 심지어 검단 아파트의 감리를 맡았던 목양종합건축사사무소는 철근이 빠진 상태로 입주를 마친 남양주 별내 아파트의 감리도 맡았던 것으로 드러났다.

경실련은 이러한 LH '전관 특혜'가 부실 공사로 이어졌을 수 있다며 지난 7월 31일 감사원에 공익감사를 청구했다. 신영철 경실련 국책사업감시단장(공학박사·기술사)을 1일 경기도 성남시에서 만났다.

"'윗물' 관료들부터 썩었다... 국토부 장관 책임져야"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왼쪽)과 이한준 LH 사장이 지난 7월 30일 오후 LH서울지역본부에서 고개 숙여 사과하고 있다. ⓒ 연합뉴스

 
- 감사원에 감사를 청구한 이유는.

"건설이 발주·설계·시공·감리로 나눠진다면, 검단 아파트 지하주차장 붕괴사고에서 가장 큰 잘못을 한 행위자가 GS건설(시공사)인 것은 맞다. 하지만 설계사(유선엔지니어링건축사사무소)와 감리사(목양종합건축사사무소) 중 한 군데라도 제대로 작동했다면 이런 황당한 사고는 일어나지 않는다. 그럼 시공사와 설계사, 감리사를 선정하는 건 누군가? 발주자인 LH다. 공공 발주 공사에서는 발주자가 제일 권한이 크고 힘이 센 것이다. 그럼에도 현재 법·제도상 부실 시공 문제가 발생했을 때 발주자는 아무런 책임을 지지 않는다. 이건 문제다. 발주자도 권한에 맞는 책임을 지도록 법 개정이 필요하다.

법 개정은 먼 얘기니 당장 감사라도 해야 한다. 지난 2021년에 경실련이 2015~2020년 사이 6년간의 LH 설계용역 수의계약 536건(9484억 원)을 분석했더니 LH 전관 영입 업체 47곳이 무려 297건(전체의 55.4%), 6582억 원(전체의 69.4%)을 수주해갔더라. 심각한 과점이다. 이번에 GS건설 검단 사고가 터지고 나서 다시 자료를 찾아봤더니, 아니나다를까 그곳 설계·감리 회사가 모두 LH 전관 영입 업체들이었다. 보통 '전관 예우'라고 말하는데 이건 '전관 특혜' 수준이다. LH도 공범이다."

- 전관 특혜가 부실 공사로 이어진다고 볼 수 있나.

"현 단계에서 그 연결고리를 단정할 수는 없다. 하지만 합리적 의심은 가능하다. 설계사나 감리사가 뭐하러 LH 퇴직 관료들을 스카우트할까? LH는 발주만 주는 곳이기 때문에 LH 전관들이 실제 설계·감리 경험이 있는 것도 아니다. 그러니까 설계·감리 업체들은 그들의 실력이 아니라 그들의 인적 네트워크를 사는 것이다. 오로지 수주를 위해서다.

보통 전관으로 취업하면 회사에서 부회장 직함 정도 주고 고액의 연봉과 법인카드, 전속 기사를 지급한다. 출근도 거의 안 한다. 사람들 만나러 다니고 접대하고 골프 치라는 것이다. 요즘은 조그만 자회사를 따로 만들어 거기에 전관을 채용하는 경우도 있다. 찾아내기가 더 어렵다. 입찰할 때 LH가 심사를 하는데 퇴직한 선배들이 즐비한 회사라면 어떻게 될까? 관리감독은 제대로 될까?

심지어 어떤 업체들은 LH 입찰에 공모하려고 준비하다가도 특정 업체가 입찰에 참여한다는 소식을 들으면 일찌감치 입찰을 포기한다고 한다. LH 사업이면 어차피 전관 영입 업체에 계약을 줄 게 뻔하다는 것이다. 반칙과 특혜, 불공정한 경쟁은 우수한 업체들의 성장을 막을 수 있다."

"민간 발주 아파트, '허수아비' 감리로 공공 발주보다 더 심각할 것"
  

붕괴 사고 발생한 인천 아파트 건설 현장 5월 2일 오후 인천시 서구 검단신도시 모 아파트 건설 현장에서 구조물이 파손돼 있다. 이곳에서는 지난 4월 29일 지하 주차장 1∼2층의 지붕 구조물이 무너지는 사고가 발생했다 ⓒ 연합뉴스

 
- 국토부가 LH 발주 아파트 중 철근이 누락된 단지 15곳을 공개하면서 '순살 아파트' 사태가 일파만파 커지고 있다.

"정부로서는 시민들의 불신과 불안이 임계치를 넘어섰다고 판단했을 수 있다. 지난 2021년 6월 광주 학동 현대산업개발 철거 건물 붕괴사고, 2022년 1월 광주 화정동 현대산업개발 외벽 붕괴사고에 이어 이번 GS건설 검단 아파트 지하주차장 붕괴사고에 이르기까지 대형건설사에서 연달아 사고가 났다. 늦었지만 국토부가 직접 조사에 나선 것 자체는 변명과 해명으로만 일관했던 과거에 비해 상당히 진일보한 것이라고 평가한다.

하지만 한 가지 짚어야 할 게 있다. 지금 국토부는 시공사, 설계사, 감리사에게 최고 수위의 패널티를 주겠다는 식으로 문제를 풀어가려 하는데, 그럼 국토부는? 우리나라 건설산업 전반을 관리하고 정책과 제도를 이끌어가는 것은 국토부 아닌가. (원희룡)국토부 장관도 정치적 책임을 져야 할 중대한 사안이라고 본다."

- '순살 아파트' 같은 일이 벌어지는 근본적인 이유가 뭐라고 보나.

"너무 어이 없고 있을 수 없는 일이라서... 솔직히 뭐라 말하기가 난감하다. 어디서부터 손을 대야 할지 모르겠을 정도로 건설 산업 전체가 병든 것 같다. 다만 LH 전관 특혜에서 보듯이, 건설 관료들 사이에 도덕적 해이가 상당히 오랜 기간 노골적으로 누적된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LH, SH, 도로공사, 철도공사, 수자원공사 등 공공 발주 기관에 낙하산이 꽂히면 어떻게 될까? 그 아래 있는 사람들은 '이번 기회에 나도 해먹자' 하는 분위기가 팽배해진다. 단적인 예가 변창흠 전 국토부 장관이 LH 사장으로 있었던 2019~2020년 사이 벌어진 LH 직원들의 땅투기 사태다.

'윗물'인 관료 사회부터 이렇게 썩었는데, 그 아래 건설산업 현장은 어떻겠나? 그러니까 나는 회의적이다. 지금 당장은 LH에 대한 질타가 쏟아지지만, 안타깝게도 전관 근절 방안이 나오거나 LH 같은 공공 발주자에게도 부실 시공 책임을 묻는 식의 법·제도 정비까지는 안 될 가능성이 높다. 왜? 국토부 등 부처 관료들도 언젠가 은퇴할 거고 LH처럼 전관으로 취업해야 되니까. 책임감 갖고 뭐라도 고쳐보겠다는 사람은 없고 어떻게든 '이너서클' 들어가서 잿밥이라도 먹겠다는 분위기만 만연하니까."

- 관료 집단의 도덕적 해이가 구체적으로 건설 산업에 어떤 영향을 미치나.

"이 정도 사달이 났는데 지금도 업계에서 '죄송하다' 소리 하나 안 나오고 조용하지 않나. 건설 산업이 정상이라면 대형건설사들이 모인 대한건설협회나 설계협회, 감리협회, 대한전문건설협회(1차 하도급 전문건설업체들이 모인 협회)에서 대국민 사과라도 해야 하는 것 아닌가? 우리끼리라도 불량 업체와 일 안하겠다고 선언해야 하는 것 아닌가? LH 노조는 왜 반성한다는 말 한마디 없나? 이런 주류 전문가 집단들이 죄다 입을 싹 닫아버리니까 다른 전문가들도 입을 못 연다. 온갖 다양한 얘기가 나와서 토론하고 신뢰 회복 방안을 찾아야 하는 시점인데 그게 안 되고 있지 않나. 다들 눈치나 보면서 밥줄 끊길 걱정만 하는 거다.

오히려 각 협회들은 이런 붕괴사고를 이용해서 자기 잇속만 챙기려 든다. 설계협회는 그동안 설계비가 적었다면서 올려달라고 하고, 감리협회는 감리비 올려달라고 하고, 대한건설협회는 시공비가 부족했다고 할 거다. 전문건설협회는 불공정 하도급 때문이라면서 해결해달라고 할 거다. 아무도 잘못했다 하지 않고 돈만 생각하니 답이 없는 것이다. 정말 답답하다. 사실 나도 본업이 건설 계통이기 때문에 이런 말 하는 게 쉽지만은 않다."

"502명 사망한 삼풍백화점 터에 또 초고층 짓는 '탐욕' 사회... 중대한 시점"
  

신영철 경실련 국책사업감시단장(공학박사·기술사) ⓒ 김성욱

 
- 국토부가 LH 발주 외 민간 발주 아파트들에 대해서도 철근 누락 조사를 확대하겠다고 밝혔다. 민간 발주의 경우 문제가 더 심각할 거라는 예상들이 나온다.

"민간 발주 아파트가 훨씬 심각할 거다. 건설 산업 전체의 70%가 민간 발주, 30%가 공공 발주다. 공공 발주는 그래도 LH 같은 공공기관이 감리를 선정하고 관리하지만, 민간의 경우에는 감리가 시공사의 허수아비다. 왜? 사실상 감리사의 월급을 시공사가 주기 때문이다. 현대산업개발 광주 화정 아이파크가 무너진 것도 마찬가지다. 심한 경우 힘들게 하는 감리가 있으면 시공사가 감리사에 압력을 넣어 잘라버리게 만드는 경우도 있다. 그게 힘들면 교묘하게 왕따 시키고."

- 시민들 입장에서 2023년 대한민국 신축 아파트에 철근이 빠져 지하주차장이 무너진 것은 황당하다. 한국 건설이 뒤로 가고 있는 건가.

"옛날 아파트가 더 튼튼하다는 시쳇말이 틀린 말이 아니다. 건설은 크게 재료, 사람, 장비다. 재료는 값싼 철근 등 중국산을 쓴다. 사람도 중국이나 태국, 베트남 사람을 쓴다. 그저 장비만 우리나라 장비다. 이걸 '메이드 인 코리아'라고 할 수 있나? 이러니 아파트 수명이 20~30년 밖에 안 되고 금방 다 재건축해야 되는 지경인 것이다."

- 이렇게 된 이유가 뭔가.

"이런 말을 별로 좋아하진 않지만, 탐욕 때문이다. 다른 말로는 설명이 불가능하다. 전관도 쓰고, 외국인 더 들어오게 해달라고 로비도 하고. 조금이라도 남기려고 모든 걸 싸게 가고. 그런데 과연 건설사들만의 탐욕이냐는 것이다. 이 사회는? 1995년 6월 29일 삼풍백화점이 무너졌다. 무려 502명이 죽었다. 근데 그 자리에다 뭘 했나. 또 초호화 초고층 아파트(서울시 서초구 서초동 아크로비스타)를 올렸다. 위령비 하나 없이. 위령비는 한참 떨어진 양재시민의 숲 구석에 있다. 이게 제정신인가. 기억하지도 않겠다는데 무슨 문제를 개선하나."

- 무엇을 해야 하나.

"나는 직접시공제를 주장한다. 원청 건설사들이 지금처럼 하도급사에 도면만 던져준 채 알아서 지으라고만 하지 말고, 원청이 직접 근로자들과 근로계약을 맺고 공사를 수행해야 한다. 사람 일이 다 똑같은 게, 다른 사람한테 외주 줘놓고 관리만 하면서 '잘 됐냐?' 하고 사진만 찍고 가는 것보다, 내가 직접 내 이름 걸고 일을 하면 한번이라도 더 점검하게 되는 것이다. 만약 GS건설이 직접 근로자들 데리고 시공했다면 검단 지하주차장이 무너졌을까? 현대산업개발은?

적어도 구조체의 안전과 직결되는 기초나 골조 공정에 한해서라도 직접 시공제를 시작해야 한다. 대기업 임원들과도 만나서 이 얘기를 해보면 맞다고 인정한다. 근데 '이젠 할 능력이 없다'고 한다. 지난 30년 동안 시공 안 하고 하도급 관리만 했더니 이제는 정말 인부들 데리고 직접 공사할 능력을 잃어버린 수준까지 왔다는 것이다. 이게 대한민국 굴지의 건설사들 현실이다. 계속 이렇게 갈 건가.

최근 연속된 붕괴 사고를 보면서 하인리히 법칙(1건의 대형 사고가 터지기 전까지 29번의 작은 사고와 300번의 이상 징후가 선행한다는 법칙)이 떠오른다. 지금이 정말 중요한 시점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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