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잼버리도 망치고, 축구도 망치고... 이 사태 어쩔텐가

[주장] 무책임한 헛발질의 연속... 꼬인 경기 일정, 위약금 물고 휴가도 망친 사람들

23.08.08 14:54최종업데이트23.08.08 14: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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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10월 6일 대구 스타디움 원정석, 인천 유나이티드 팬들 ⓒ 심재철

 
2018년 10월 6일 태풍 콩레이가 우리나라를 지나갈 때 마침 대구 FC와 인천 유나이티드 FC가 만나는 K리그 일정이 있어서 인천 유나이티드 FC 팬들은 이른 아침부터 우비를 입고 원정 버스에 몸을 실었다. 주위 사람들도 당시 태풍 걱정을 많이 하여 정말로 출발할 수 있는지 물었지만 우리들은 내 자신과 부지런하고 친절하신 버스 기사님을 믿고 안전 벨트를 단단히 채웠다.

비바람을 잘 피해 대구에 도착하니 거짓말처럼 아무 문제 없이 축구를 즐길 수 있었다. 하늘이 도운 듯했다. 더 놀랍고 고마운 일은 대구 스타디움 원정석 매점 아저씨의 첫 인사였다. "정말로 인천에서 대구까지 버스로 오신 겁니까? 이 태풍을 뚫고서요?" 하며 우리들을 놀라워하며 활짝 웃던 표정이 지금도 눈에 선하다. 나는 "운이 좋았나 봅니다. 날씨 좋네요. 걱정해 주셔서 고맙습니다"라고 답례하며 음료와 과자를 한아름 안고 관중석으로 돌아왔다.

그로부터 5년쯤 지난 지금 K리그 원정팬 규모는 엄청나게 증가했다. 관중석 티켓을 미리 구매하지 않으면 내가 원하는 자리에 앉을 수조차 없을 정도다. 서너 살 정도의 아이들까지 자신의 팀 유니폼을 챙겨 입혀 데리고 다니는 가족 팬들도 흔할 정도가 되었다. 이제 프로축구, K리그는 가족과 친구들, 직장 동료들 사이의 간단한 놀거리를 뛰어넘는 하나의 문화로 자리잡은 것이다. "겨우 2시간짜리 1게임을 위해 그렇게 먼 곳까지 다녀온다고?"라고 묻는 사람은 이제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잼버리도 망치고 전북도 망치고" 축구팬들의 분노
 

8월 6일 전주월드컵경기장 '전북 vs 인천' 게임 전반전, 인천 유나이티드 무고사가 멋진 가위차기를 날리는 뒤로 "잼버리도 망치고 전북도 망치고!" 펼침막이 보인다. ⓒ 심재철

 
이번에도 나는 아내와 함께 6일 일요일 새벽 집을 나와 웅장하기도 하면서 아름다운 대둔산을 둘러보고 오후 6시쯤 전주성(전주월드컵경기장)에 도착했다. 채상협 주심의 킥 오프 휘슬 소리가 울리기 전부터 엄청난 폭우가 쏟아지는 바람에 뛰는 선수들은 물론 관중석 아래쪽 관중들도 흠뻑 젖었지만 1만 327명 축구팬들은 크게 흔들리지 않았다.
 
그런데 홈 팀 전북 현대의 서포터즈는 "잼버리도 망치고 전북도 망치고!" 등 분노를 담은 대형 손글씨 펼침막을 내걸었다. 9일로 예정된 FA(축구협회)컵 4강 홈 게임과 12일 수원 블루윙즈와의 K리그1 홈 게임 둘 다 자신들의 앞마당 전주성에서 쫓겨난 처사에 대한 항의 표시였다. 이날 관중석에 세계스카우트 잼버리 참가자들도 일부 있었다는 것을 생각하면 축구팬을 떠나 한국인으로서 얼굴이 화끈거릴 수밖에 없었다.

2023 새만금 세계스카우트 잼버리 K팝 공연, 폐영식(8월 11일) 준비와 사후 처리를 위한 일방적인 통보 때문이었다. 협조 요청이 왔다고 하지만 어린이 축구팬들 입장에서 봐도 '협조'가 아닌 것은 뻔하다. 그런데 더 심각한 일처리가 대한축구협회까지 포함하여 줄줄이 이어지고 있다. 흔히 말하는 불똥이 여기저기 튀는 바람에 물로도 끌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예상 진로를 틀어 북상하고 있는 태풍 피해를 우려하여 전주월드컵경기장에서 펼칠 계획이었던 두 행사를 돌연 서울로 바꾼다는 결정이 나왔고, 잼버리 참가자 모두를 새만금 대회장에서 철수시켜 서울 등 수도권 임시 숙소들로 옮기기로 했다. 우리나라의 8월 폭염과 집중 호우, 태풍 등의 자연 현상을 정말 고려하지 못한 것일까? 말로는 '태풍 북상에 따른' 정도의 수식어를 앞에 붙이고 있지만 그것은 세계스카우트 잼버리 조직위, 전라북도, 정부 관료들의 무책임한 회피일 뿐이다.

여기서 대한축구협회는 부랴부랴 월요일 낮에 전북 현대와 인천 유나이티드 FC 두 구단에 공문을 보내 8월 9일(수) 오후 7시 FA컵 준결승 게임을 연기하겠다고 했다. 두 프로축구 팀 선수단 컨디션 조절에 차질을 빚은 것, 적잖은 위약금 지불은 물론 수많은 축구팬들의 휴가 일정 모두가 어그러진 것이다. 

우리나라를 알리는 세계적인 행사로 인해 축구 한두 게임 양보할 수 있는 일이다. 하지만 이를 준비하고 추진하는 과정이 상명하달식 일방 통보였다면 분명히 잘못된 것이다. 애초부터 심각한 환경 문제가 깔려있는 간척지에서 대회를 개최하려고 한 잘못부터 밝혀야 하며, 이런 대회를 아직도 자신들의 치적으로 이용하고 자랑하려 한 꽤 많은 관료들과 정치인들은 그에 맞는 책임을 져야 할 것이다.

잘못을 지적하기만 하면 남탓만 일삼는 정부 관료들과 정치인들 눈에 축구로 삶을 위로받고 있는 사람들은 안 보이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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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스카우트잼버리 축구 K리그 전북 현대 대한축구협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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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 대인고등학교에서 교사로 일합니다. 축구 이야기, 교육 현장의 이야기를 여러분과 나누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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