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08.10 07:12최종 업데이트 23.08.11 15: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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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가 기둥 설치할 자리 지난 1일 오전 경기도 오산시 세교2 A6블록 아파트 주차장에 기둥 추가 설치를 위한 자리가 준비돼 있다. 국토교통부는 전날 파주 운정(A34 임대), 남양주 별내(A25 분양), 아산 탕정(2-A14 임대) 등 지하주차장 철근을 빠뜨린 한국토지주택공사(LH) 아파트 15개 단지를 공개했다. ⓒ 연합뉴스

 
"이번에 GS건설 검단 아파트는 지하층이 붕괴됐지만, 제가 20년 동안 일하면서 보기에는, 주민들이 사는 본건물에 부실 공사가 더 많아요. 아파트가 중간층까지 올라가면 감리는 올라와 보지도 않아요. 엘리베이터 옹벽은 기둥 역할을 하기 때문에 철근이 촘촘하게 들어가야 되거든요. 철근 간격이 10cm 라는 건, 10cm 간격으로 수직근과 수평근들이 다 묶여있어야 된다는 얘기예요. 근데 실제론 많이 해봐야 한 세 번 정도 묶일까? 8m 철근이라고 하면 2m 간격으로 한번씩밖에 안 묶여있다는 거예요. 어디건 다 똑같아요." - 17년차 철근 노동자 한경진씨

"레미콘은 반제품이기 때문에 하절기엔 90분, 동절기엔 120분 안에 타설이 이뤄져야 해요. 근데 실제 현장에선 건설사들 편의를 위해 레미콘 차량들이 미리 와서 2~3시간씩 대기하는 경우가 많죠. 그사이 레미콘이 굳어버리는 거예요. 축구공처럼 동그렇게 뚝뚝 떨어지는 경우도 있는데, 삽으로 깨고 타설하기도 해요. 원래는 다 폐기 처분해야 되는데, 버리기 아깝다고 그냥 물도 섞고 하면서 타설하는 거죠." - 30년차 레미콘 노동자 김봉현씨
 

수십년간 아파트 현장에서 일해온 건설 노동자들은 철근 누락으로 붕괴한 GS건설 검단 아파트 지하주차장 같은 부실 공사가 도처에 만연해있다고 증언했다.


철근과 콘크리트는 아파트의 '뼈'와 '살'로 안전과 직결되는데, 실제 현장에선 여전히 공기 단축과 비용 절감을 위해 철근 결속(수평근과 수직근을 묶는 것)도 제대로 되지 않고, 콘크리트는 불량품을 쓰고 있다는 것이다. 이 두 가지는 지난 4월 29일 GS건설 검단 아파트 지하주차장 붕괴 사고의 원인이기도 했다.

건설 노동자들은 이같은 부실 공사의 근본 원인이 불법 다단계 하도급에 있다고 입을 모았다. 건설노조가 지난 7~8일 철근·형틀목수·타설공 등 건설 노동자 2511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한 결과에 따르면, '잇따른 부실시공의 원인'을 묻는 질문에 73.8%(1854명)가 '불법 도급'을 꼽았다.

"지하주차장뿐 아니라... 아파트 본 건물도 위험합니다"

17년차 철근 노동자인 한경진씨는 9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건설노조와 심상정 정의당 의원실이 주최한 '긴급 아파트 안전진단 토론회'에 참석해 "골조 공정 담당은 70~90%가 단가가 싼 외국인 비숙련 노동자"라며 "문제는 이들 임금이 고정돼 있는 게 아니라 물량당 얼마씩 하는 불법 도급 방식으로 이뤄지기 때문에 철근 결속도 제대로 하지 않은 채 최대한 빨리 작업을 진행한다는 점"이라고 말했다.

30년차 레미콘 노동자인 김봉현씨는 "현장에서는 레미콘 값이 아까워 콘크리트에 물을 타는 '가수' 행위를 하는 경우가 많다"고 했다. 김씨는 "레미콘 차량 한대가 콘크리트 타설을 하는데 5분 정도 걸리기 때문에 레미콘 공장에서도 5분 간격으로 건설현장으로 배차를 하는 게 맞지만, 건설사들은 조금이라도 타설이 끊기지 않게 하려고 레미콘 공장으로 하여금 차량 10대든 20대든 30대든 몰아서 현장으로 보내게 만든다"고 했다. 그는 "그러다 보니 레미콘 차량들이 2~3시간 현장에서 대기하고, 이 과정에서 콘크리트가 굳어버리는 경우가 많다"고 했다.

김씨는 "특히 요즘처럼 폭우가 내릴 땐 물이 안 들어가게 조치를 해야 강도를 유지할 수 있는데, 안전 장치 없이 대부분 레미콘 물량을 타설한다"고 했다. 김씨는 "비가 많이 오면 심지어 시멘트와 골재가 분리돼 둥둥 떠다니기도 하고, 타설한 데가 푹푹 파이기도 한다"면서 "그런데도 그냥 공사를 진행하고 나중에 미장을 하고 덧칠을 해 은폐해버린다"고 했다. 그는 "노동자들이 항의하고 사진을 찍으면 건설사들이 회사에 전화해 '한번 더 이러면 한달치 물량을 끊겠다'고 협박한다"고 말했다.

"LH 지목하며 본질 가려... 불법 다단계 하도급 수사·엄벌 해야"
 

‘부실시공 한국토지주택공사(LH) 책임자 처벌, 국토교통부 규탄 민주노총 건설노조 기자회견’이 지난 3일 오전 서울 서대문구 경찰청앞에서 열렸다. ⓒ 권우성

 
노동자들과 전문가들은 고질적인 불법 다단계 하도급을 없애야 부실 시공을 막을 수 있다고 했다. 건축물의 안전과 직결되는 골조 공사에 한해서라도 건설사가 노동자들을 직접 고용하는 직접시공제를 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왔다.

건설안전기술사인 함경식 노동안전연구원 원장은 토론회에서 "'순살 아파트' 사태가 터진 후 'LH가 문제다' '감리가 문제다' 많은 말이 나오고 있지만, 문제의 본질은 불법 다단계 하도급"이라며 "정부나 건설업계는 LH 등의 문제를 휘발성 높게 지적함으로써 이 본질을 감추려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고 지적했다.

함 원장은 이날 토론회 이후 <오마이뉴스>와 통화에서 "철근 공사의 경우 전문건설업체(1차 하도급사) 아래 철근 이사를 등록하는 형식으로 불법 재하도급이 이뤄진다"라며 "이들은 법망을 피하기 위한 편법으로 중간에서 노동자들의 임금을 대신 수령하는 동의서를 받아 한꺼번에 임금을 받아 배분하는 경우도 있고, 각자에게 지급된 일당 중 일정 부분을 반환하라고 요구하는 경우도 있다"고 했다.

현행 건설산업기본법상 재하도급은 불법이다. 법은 한 차례의 하도급까지만 허용하고 있다. 실제 이번에 붕괴 사고가 난 GS건설 검단 아파트의 경우에도, 철근 공사 하도급을 받은 전문건설업체 상하건설이 재하도급을 했다는 증언이 나와 경찰이 수사를 벌이고 있다.

함 원장은 통화에서 "지금까지 불법 다단계 하도급 문제를 엄벌하지 않았기 때문에 각종 안전 문제와 품질 저하 문제가 근절되지 않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함 원장은 "각각 9명, 6명이 사망한 광주 학동(2021년), 광주 화정(2022년) 현대산업개발 사고의 경우 어느 누가 제대로 된 책임을 졌나"라며 "현대산업개발은 여전히 버젓이 수주를 하고 공사를 하고 있다"고 꼬집었다.

함 원장은 "GS건설 검단 아파트 현장의 경우에도 벌써부터 다수 언론들이 '처벌만으로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는 식으로 건설사 입장을 대변하기 시작했다"라며 "또다시 철저한 수사와 엄벌이 처해지지 않는다면 불법 다단계 하도급과 부실 공사가 계속될 수밖에 없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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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살 아파트' 불법 하도급 증언 나와... 국토부 "경찰 수사 의뢰" https://omn.kr/252o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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