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08.10 18:22최종 업데이트 23.08.10 18: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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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달노동자가 우천에도 운전하고 있다. ⓒ 길한샘

 
점심시간 배달을 하던 어느 날이었다. 갑작스럽게 폭우가 쏟아졌다. 일기예보에 없었던 비인지라 당황스러웠다. 부랴부랴 우비를 입었다. 소나기인 줄 알았지만 빗줄기는 좀처럼 줄어들지 않았다.

1시간이 지나서야 비가 그쳤다. 하늘은 아무 일도 없는 것처럼 맑았다. 그리고 햇볕이 강하게 내리쬐기 시작했다. 당장의 배달이 급해서 우비를 벗을 수 없었다. 우비를 입고서 1시간가량 일을 지속했다. 숨이 턱턱 막혔다.


"많은 비가 예상됩니다. 가급적 야외활동을 자제해주시기 바랍니다.", "폭염경보, 야외활동 자제, 충분한 물 마시기 등 건강에 유의 바랍니다." 휴대폰에는 안전안내문자가 여러 건 왔지만 일을 멈추는 배달노동자는 찾아보기 힘들었다.

더위를 피할 곳이 없다

최근 들어 평일 오후 중 1시간가량 배달노동자에게 얼음물을 나눠주는 일을 한다. 노조에서 진행하는 지역 배달노동자 실태조사와 함께하는 활동이다. 어느 날은 한 배달노동자에게 얼음물을 왜 나눠주는 거 같냐고 물은 적이 있었다. 짧은 답변이었는데, 아직도 기억에 남는다.

"탈수될까 봐 걱정돼서..."

위에서 내리쬐는 햇볕, 밑에서 올라오는 아스팔트 복사열. 도로 위에서 일하는 배달노동자에게 더위를 피할 곳은 없다. 차에 둘러싸이기라도 하면, 차에서 내뿜는 열기에 숨이 콱 막힌다.

여기에 헬멧과 안전장비까지 착용하면, 체감온도는 말로 설명하기 어렵다. 자기 돈을 들여서 식염포도당이나 해열제를 먹는 배달노동자가 있을 정도다. 여기에 잠깐의 더위조차 피할 곳이 없어서 나무 아래 그늘을 찾는 처지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생계를 이유로 대부분의 배달노동자가 어쩔 수 없이 일한다. 건당으로 돈을 버는 탓에 일을 쉰다는 건 '무급'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근로기준법의 적용을 받지 않아서 더위를 피하는 데 필요한 음료수와 휴게 공간 등을 알아서 마련해야 한다.

질병관리청에 따르면, 전국에서 5월 20일부터 8월 8일까지 발생한 온열질환 환자가 2085명이라고 한다. 온열질환 예방이 그 어느 때보다 시급하다. 특히 법과 제도 바깥에 놓인 배달노동자에게 대책이 절실하다.
  
태풍 앞에 '잼버리'도 철수했지만...
 

배달노동자가 폭염에도 운전하고 있다. ⓒ 길한샘

   
폭우와 태풍도 배달노동자를 위협하는 '기후'에 해당한다. 폭우가 내리면, 헬멧 쉴드와 사이드미러에 물기가 가득해서 시야를 가린다. 그런데 시야가 가려지는 건 승용차 운전자도 마찬가지다. 그래서 우천 시 교통사고가 평소보다 빈번하게 발생한다.

노면이 미끄러워 운행 중 미끄러지기도 한다. 이때 아파트 지하 주차장은 유독 미끄러운데, 한 발을 바닥에 닿고서 가야 할 정도다. 그리고 폭우가 계속되면 아스팔트에 '포트홀'이 생기는데, 배달노동자가 포트홀을 못 보고 지나가다가 크게 다치기도 한다.

태풍이 오면 강풍으로 인해 주행 중 오토바이가 흔들리는 아찔함을 느낄 수 있다. 이따금 태풍이 동반한 강풍과 폭우는 가로수를 쓰러뜨리기도 한다. 어느 날은 배달을 하는데, 가로수가 쓰러지는 것을 목격했다. 조금의 시간 차이로 피할 수 있었다.

최근에 '잼버리'의 중단 여부가 초미의 관심사였다. 초기 논란 속에선 '중단은 없다'고 발표했지만, 결국 태풍 '카눈' 앞에서 철수를 선택했다. 이와 달리 배달노동자는 재난 앞에 사회적인 휴식을 한 적이 없다. 선택은 언제나 배달노동자 개인의 몫으로 전가됐다.

맥도날드 한 지점의 반대로 무산되긴 했지만, 제주 지역 배달대행사와 상점의 '8월 9일 하루 휴업' 합의는 좋은 선례가 될 수 있었다. 물론 그럼에도 한계는 명확하다. 배달노동자의 안전을 법과 제도가 아니라, 배달대행사와 상점의 선의에 기대야 한다는 점이다.

작업 중지 조치, 그리고 '기후실업급여'가 필요한 이유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라이더유니온 소속 조합원들이 지난 3일 오전 11시 서울 중구 서울고용노동본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폭염대책 혁신'을 주문하고 있다. ⓒ 박수림


일부 배달대행사는 기상이 악화되면 평소 배달료에 '기상할증'을 붙인다. 기상할증으로 인해 폭염이나 폭우일 때 더 많이 일하는 배달노동자가 꽤 있다. 하지만 기상할증은 배달노동자의 안전을 위한 것이 아니다. 오히려 위험을 감수하라는 것이다.

그런데 현재의 극한기후는 기업의 이윤을 위해 노동자가 감수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노동자의 생명을 위협하는 수준에 이르렀다. 그래서 그 어느 때보다 노동자의 건강과 안전을 우선해서 법과 제도를 마련해야 한다.

지금처럼 안전안내문자는 배달노동자에게 대책이 될 수 없다. 정부는 '기후재난 피해 예방 가이드라인'을 마련해야 한다. 그리고 이 가이드라인은 배달노동자처럼 배제되는 사람이 나오지 않도록 모든 시민에게 적용되어야 한다.

배달플랫폼을 통해 일하는 배달노동자의 특성을 살려서 '기후재난 조치 자동시스템'을 마련해야 한다. 이는 기상청 데이터와 배달플랫폼을 연동해서 특정 상황에서 주문 접수를 중단하고 '작업 중지'가 자동으로 이뤄지는 것이다.

배달노동자는 현재 쉴 곳이 마땅히 없다. '이동노동자쉼터'의 설치 여부도 지자체별로 천차만별이다. 모든 지자체에게 이동노동자쉼터 설치를 의무화해야 한다. 그리고 폭염과 혹한의 시기에는 간이쉼터도 확충해야 한다.

기후재난은 공동체 모두의 책임이다. 그 피해는 배달노동자와 같은 취약한 시민에게 향하고 있다. 따라서 상호 호혜와 연대 정신에 따라 사회보험으로 대비해야 한다. 그리고 사회보험 중 하나인 고용보험을 활용하는 방안이 있다.

기상악화 상황에서 발생한 '작업 중지'를 일시적 실업 상태로 간주하고, 이 시간 동안 통상 수입의 70%가량을 실업급여로 제공하는 것이다. 기후재난 속 '기후실업급여'는 배달노동자에게 실질적으로 일을 쉴 수 있는 힘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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