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란시스코 고야 <옷 입은 마하>와 <옷 벗은 마하> 프라도 미술관에는 나란히 걸려있다.
유종선
난 우주에 대한 배려가 혹 다른 여행객들의 귀중한 시간을 빼앗을까 진땀이 났다. 하지만 우주는 간결하고 담대하게 책에서 본 내용을 잘 전달했고, 친절한 누나들과 가이드의 박수를 받으며 발표를 마쳤다. 만 7세에겐 만만찮은 모험이었으리라. 우주에게 프라도에 대한 좋은 기억을 남겨준 가이드와 여행객들에게 너무나 고마웠다.
잘 참던 아들, 이내 울음이 터졌다
그 밖에도 프라도는 엘 그레코, 히에로니무스 보스, 뒤러, 라파엘로, 카라바조 등 마음을 설레게 하는 수 많은 화가들의 그림으로 가득 찬 풍요로운 곳이었다. 오히려 내가 신난 어린이 같았고, 우주는 어린이의 기호를 참아주는 아빠 같았다.
프라도 미술관 카페테리아에서 점심을 먹으면서 난 오후에 볼 미술관에 대해 우주에게 홍보했다. 이제 이 다음 시대의 그림들을 보면 우주야, 우와, 수백년간 사람들의 그림에 대한 생각이 달라져 온 과정을 볼 수 있는 거야. 재밌겠지?
티센보르네미사 미술관 투어의 참가자는 나와 우주 둘뿐이었다. 나이가 지긋하신 여성 가이드 분은 우주에게 따뜻한 선생님같은 느낌으로 미술관 기행을 이끌어주시고자 했다. 그러나 우주는 첫 이십여 분을 버티면서 이 미술관에서 더 이상 자기가 얻을 게 없다는 것을 깨달은 듯했다. 그리고 여행 최초로 강력한 항명을 했다.
"너무 미술관만 보는 거 아니에요? 우와아아아앙!"
"우주야, 아이구 울지 마... 아빠가 오늘은 미술관의 날이랬..."
"미술관의 날이라니 말도 안 돼!"
여행 앱에서 신청하는 미술관이나 박물관 투어는 세 시간 기준이다. 프리랜서 가이드 분들이 앱으로 연결돼 작품 설명을 해준다. 이분은 이분대로, 어떤 역경이 닥치더라도 세 시간을 채워야 평판에 흠이 가지 않는다. 나와 우주밖에 없는 상황에서 나는 나대로, 가이드의 열정적이고 상세한 그림 설명을 열심히 들으면서 동시에 우주를 달래야 한다.
결국 나는 우주를 업었다. 우주를 달래는 말투와 가이드의 설명에 대한 반응 말투와 내용이 뒤섞이며, 나는 상당히 과장된 반응을 보이는 '애 업은 관람객'이 되었다.
전시실 모퉁이를 도는데, 갑자기 마르크 샤갈의 <수탉>이 튀어나왔다. 나와 같이 스트레스를 받고 계시던 가이드분이 갑자기 웃기 시작했다. 아니, 이거 두 분이랑 똑같은 모습인데요? 나도 실실 웃음이 샜다. 우주야 저거 봐라, 완전 우리다. 아이고 허리야...
가이드분은 이 사진을 위해 우리가 여기 와있는 것 같다며, 그림과 우리를 함께 찍어주었다. 우아할 수 없는 아빠와 부루퉁한 아들이 인체 비율에 대한 배려가 전혀 없는 구도 속에 인정사정없이 찍혔다.

▲마르크 샤갈 <수탉> 앞에 선 아이 업은 수컷 예고없이 자화상을 마주친 기분이었다.
유종선
그리고 이 그림을, 전체 여행의 마지막 일정이었던 프랑스 파리에서 다시 되새길 기회가 있었다. 미디어아트 전시를 하는 파리 <빛의 아틀리에>에서 샤갈 전을 하고 있었는데, 에펠탑의 그림과 함께 샤갈의 <수탉>이 벽면 가득 떠오른 것이다. 나는 또 한 번 우주에게 말했다.
"우주야, 저기 봐봐. 마드리드에서 본 거 기억 나? 또 우리야, 그치?"
난 우주를 꼭 끌어안았다. 더 늦기 전에 아들과 이런 시간을 갖고 싶었던 나와 그런 아빠에 열심히 맞춰 다니느라 피곤한 우주. 우리의 여행이 아름다운 음악과 함께 꿈결처럼 떠오르고 있었다. 알퐁스 도데의 <별>의 주인공들처럼, 우리는 그렇게 앉아 같은 곳을 바라보았다.

▲에펠 탑 위의 밤 하늘에 별들과 함께 떠오른 <수탉> 파리 <빛의 아틀리에> 샤갈 전에서 떠오른 이미지
유종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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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연출합니다. 그리고 이것 저것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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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를 업었을 뿐인데 미술관 가이드가 웃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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