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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트' 민의 성장? '보호자'에 담긴 정우성의 속내

[하작가의 이야기 따라잡기 시즌2] 정우성의 감독 데뷔작 <보호자>

23.08.19 11:32최종업데이트23.08.19 11: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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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보호자> 스틸컷. ⓒ 에이스메이커무비웍스

 
"유엔난민기구 친선대사로서 사회적 이슈와 결부돼 제 이름이 거론되기도 하니까 많은 사람들에게 진지한 이미지로 각인될 수 있다."
 
2014년 5월 15일 배우 정우성이 유엔난민기구 공식 친선대사에 임명됐다. 벌써 내년이면 10년이다. 정우성도, 우리도 안다. 그가 진지하고 생각 많은 사람이란 걸.
 
최근 감독 데뷔작 <보호자> 개봉에 앞서 < SNL 코리아 >에 출연한 것을 두고 "(진지함도 중요하지만) 시답지 못한 이미지도 중요하게 생각한다"는 전제를 깔았지만 그런 다층적이고 복합적인 면모는 어느 누구나 갖추기 마련이다. 재밌고 가벼운 예능에서의 연기가 태생적인 진지함을 가릴 수 없다는 얘기다. 그 이미지의 팔 할은 정우성의 소신이자 선택에서 비롯됐다.
 
정우성은 민족문제연구소와 관련해 "지금 대한민국에는 친일이 어떻게 영향을 미치고 있는지 우리는 알아야 합니다"라고 했고, KBS 노조의 파업 때는 "여러분은 혼자가 아닙니다. KBS가 공영방송으로서 제대로 된 모습을 찾기를 바라는 시청자와 국민들이 여러분들 곁에서 응원할 겁니다"라는 메시지를 전했고, 난민 문제에 대해선 "난민이라는 단어가 굉장히 이질적이고 멀게 느껴지지만 우리와 똑같은 삶을 살았던 분들"이라는 쉬운 언어를 구사할 수 있게 했다.
 
유엔난민기구 친선대사는 발단일 뿐이다. 해가 갈수록 그가 내놓는 사회적 발언들이나 실천들은 범위가 넓어졌고, 수위가 높아졌으며, 이를 통해 그의 진정성을 대중들이 인정하기 시작했다. 그도 고민이 없지 않았을 터. 과거 한 라디오 인터뷰에서 그는 이런 고민을 털어 놨었다.
 
"저 역시도 난민과 유엔난민기구에 대해서 알고는 있었지만 굉장히 겉핥기식으로 알고 있었다. 이 '선택받음'이 제 인생에서 굉장히 중요한 어떤 기점이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어 흔쾌히 응했지만, 활동을 시작할 때는 굉장히 두려웠다."
 
배우들은 '선택'받는 존재다. 스타도, 무명도 예외는 없다. 감독들에게, 이후 대중과 관객들에게 선택받는 배우 정우성은 유엔난민기구 친선대사 역시 '선택'을 받았다고 말했다. 그런 그가 또 다시 대중들의 선택 앞에 놓였다. 지난 15일 개봉한 감독 데뷔작 <보호자>를 통해서다.
 
배우를 겸한 이 작품의 공개를 앞두고 정우성은 유독 '책임감'이란 표현을 즐겨 쓰고 있었다. 그건 진지한 이미지의 자연인 정우성에 더해 작품 전체를 이끄는 감독으로서 가질 수밖에 없는 무게감과 부담감의 다른 표현이라 봐도 무방할 것이다.
 
평범하게 살고 싶은 이 남자의 탈주극 
 

영화 <보호자> 스틸컷. ⓒ 에이스메이커무비웍스

 
"살면서 내가 선택했던 모든 것을 다 후회했어."
 

10년을 복역 후 갓 출소한 수혁(정우성)은 욕망이 거세된 듯 보인다. 하고 싶은 일도, 해야 될 일도 없다. 잘 하던 조폭 일도 관심이 없다. 복역 직전 수혁의 작업으로 몸담았던 조직이 기업으로 성장했지만 수혁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 그가 원하는 건 단 하나다.
 
"이제는 평범하게 살고 싶습니다."
 

그런 수혁의 고백을 '형님' 응국(박성웅)과 그의 수하 성준(김준한)은 철저히 비웃는다. 그래, 전직 조폭이 손을 씻는 것이 어디 그리 쉬운 일인가. 설상가상 존재조차 몰랐던 딸의 얼굴을 보자 거세된 듯 보였던 욕망이 살아 꿈틀거린다. 평범하게 살고 싶다는 남자의 욕망이 딸의 안위로 옮겨갈 즈음, 성준은 킬러 우진에게 전화를 건다. 수혁을 처리하라는 지시를 위해서.
 
클리셰들이 맞다. 나이 먹은 조폭이 은퇴를 감행하고, 거기에 생면부지 딸을 보호해야 하며, 조직과 킬러가 그의 뒤를 쫓는다. 이 단 두 줄을 통해 소환할 수 있는 국내외 영화들을 줄로 세우면 얼마나 될지 짐작도 가지 않는다. 소위 <보호자>의 '때깔'도 기성품 영화들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중요한 건 감독 정우성의 시선이 어디로 향하고 어디에 꽂혀 있는 가다. <보호자>는 그런 클리셰의 범벅들과 싸우고 경쟁하며 종국엔 클리셰들로부터 탈주하고 픈 영화다. 장르의 관성과 법칙 한복판에 위치하면서도 자꾸 그 안락한 지위에서 미끄러지려고 안간힘을 쓴다. 이 또한 각본에도 참여한 감독 정우성의 선택일 것이다.
 
그러니까 인생 전체를 후회하는 남자는 지금의 자신을 만들어 준 그 세계를 부정하는 중이다. 그런데 그 세계는 심히 뒤틀려 있다. 응국은 수혁에게 큰 관심이 없고, 성준은 반듯한 외모와 달리 나사가 하나 풀어져 있고, 킬러와 그의 동료 역시 사람을 죽이는 일에 그리 큰 열정이 없어 보인다.
 
장르의 법칙에 충실한 수혁이란 캐릭터를 제외하면 어떻게든 클리셰들에서 조금씩은 반발짝 물러나 있는 인물들이다. 여기서 반발짝이란 표현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보호자>는 그리 큰 실험을 하진 않지만 기존 한국 상업영화의 법칙들 위에서 줄타기를 하고 있는 것은 분명하다. 그 줄타기에 또 '위태로운'이란 표현을 더하기엔 조금 민망하다.
 
감독 정우성은 신선하다거나 과해보이는 도전을 감행했다기보다 장르 법칙을 살짝 비트는 데 멈춰 선다. 그게 중급 영화의 전체 예산을 염려해야 하는 감독으로서 책임감의 발로인지는 확실치 않다. 그럼에도 <보호자>의 도전이 캐릭터 구축이나 플롯 전개의 식상함을 상쇄하기엔 역부족으로 보인다. 사실 그보다 더 흥미로운 포인트는 배우 정우성의 연기 인생과 수혁을 결부시킬 때다.
 
<비트>의 민, 감독이 되다 
 
"나에겐 꿈이 없었어."
 
30년 전, 데뷔할 때부터 스타였던 배우 정우성을 진짜 배우로 만들어 준 1997년 <비트>의 명대사다. <보호자>의 수혁은 어릴 적 방황하며 조폭 세계에 발을 담글 뻔 했던 <비트>의 민이 나이를 먹은 것 같은 캐릭터다.
 
꿈이 없어 고뇌하던 청춘의 아이콘이 "이제는 평범하게 살고 싶다"고 외치는 수혁이 됐다. 그 사이 배우 정우성은 액션영화를 비롯해 수많은 상업영화를 거쳤고, 이제는 메가폰까지 쥔 영화계의 중추로 성장했다. 그런 그가 겉으론 '평범'을 외치며 속으론 '비범'하고픈 데뷔작을 내놨다.
 
비록 진중한 이미지로 각인될 만한 대외 활동을 이어갔지만 영화에의 한없는 애정을 품고 사는 정우성. 영화 개봉 전후 그는 <보호자>가 비범하지 않은 한국 상업영화에의 고심과 반성을 담고 있다는 속내를 내비치기도 했다.
 
배우 출신 데뷔 감독이 어김없이 본인 역시 출연해야 했던 어떤 게으르고 고민 적은 상업영화들에 대한 반성적인 텍스트를 완성했다는 것 자체가 어쩌면 <보호자>의 진짜 체크 포인트일지 모를 일이다. 그건 배우 정우성이어서 가능한 도전이었을 터다.
 
그 체크 포인트와 정우성의 진심이 영화 외적인 요소를 더해야만 설득력 있게 관객들에게 가 닿을 가능성이 높다는 사실은 안타까운 일이지만 그 한계 또한 감독 정우성의 책임이라 할 수 있다. 그렇게 <비트>의 민이 <보호자>의 수혁이 됐고, 배우 정우성은 감독이 됐다.
보호자 정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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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작업 의뢰 woodyh@hanmail.net, 전 무비스트, FLIM2.0, Korean Cinema Today, 오마이뉴스 등 취재기자, 영화 대중문화 칼럼니스트, 시나리오 작가, 각본, '4.3과 친구들 영화제' 기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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