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고랑에 몰아주기 작업
최새롬
'빠른 기계'는 사람이 담는 '느린 속도'와 한 번 더 충돌한다. 기계의 도입은 감자를 캐는 시간을 크게 단축했지만 기계가 빠르거나 말거나 그 밖의 작업은 여전히 시간을 많이 요구한다. 고루 맞지 않는 삼박자가 덜컹거리면서 감자밭에서 돌아간다.
이렇듯 밭에 있으면 땅 이외의 일은 신경 쓰기 어렵다. 그러다 불현듯 허리를 펴고 주위를 둘러보니 모자와 장화를 갖추고 작업복을 입은 이가 저쪽에 있었다. 일하는 분이신가 생각하려던 차, 그는 호미를 들고 있었다. 감자를 담는 사람들은 아무도 호미를 쓰지 않는데, 혼자 호미를 들고 감자를 한 번 훑고 간 옆옆 고랑에 앉아 있는 것이다.
호미를 든 낯선 사람의 등장
이 사람은 대체 누구인가. 왜 남의 밭에 들어와 호미를 들고 있는 것일까? 나는 모르지만 혹시 부모님이 아시는 분일 수도 있기 때문에 우선 인사를 하기로 한다. 그러나 그의 정체에 대해 들은 적이 없으므로 나는 그가 누구인지 묻는다. 그렇게 이상한 문장이 완성됐다.
"안녕하세요? 누구세요?"
조용한 감자밭에 목소리가 울렸다. 부모님을 포함해 밭에 있는 사람들이 그제야 밭에서 뒤를 돌아보기 시작하셨지만 아무도 움직이지 않는다.
그는 주저주저하며 뭐라고 했으나 자신에 대해 설명하지 못했다. 나이가 든 할아버지였다. 설명하기를 꺼리는 것 같았고, 왜 자신에 대해서 궁금해하는 것인지 의아해 하는 것 같기도 했다. 동시에 그러면서도 감자 밭에서 나가지 않고 하던 일을 계속했다.
도둑이다. 남의 밭에서 감자를 캐고 있다. 그것도 우리가 수확하는 중에 말이다. 더 화가 나는 건 그가 자신을 도둑이라고 생각하지 않는 점이었다. 그는 도둑 같은데도 도망가거나 숨지 않고, 혹은 몰래 하려고도 하지 않은 채 지금 자신이 하는 일을 마땅히 해야 할 일로 믿고 있으며, 그게 나쁘다고도 생각하지 않는… 제스처를 보였다. 호미질을 멈추지 않았다. 적반하장이다. 이상한 도둑이다. 나는 목소리를 높였다.
"지금 뭐 하시는 건가요?"
그러자 뜸을 들여 그가 대답했다.
"이삭줍기…"
그가 누구인지는 밝혀내지 못했지만 그가 하고 있는 일을 알아냈다. 그는 이삭줍기를 하고 있다. 이삭줍기라니. 프랑스의 사실주의 화가 장 프랑수아 밀레의 대표작인 바로 그것인가? 추수가 끝난 밭에 허리 굽혀 밀이삭을 줍는 여자들. 그림만 봐도 허리가 아파진다. 그들은 하루종일 내내 허리를 펼 새 없이 땅바닥을 본다. 이삭을 하나라도 더 줍기 위해서이다. 힘든 노동과 빈곤, 그럼에도 굳세게 살아가는 사람들을 그린 그림이다.

▲이삭줍기(The Gleaners), 장 프랑수아 밀레 1857년작, 캔버스에 유채, 83.5×110cm, 프랑스 파리 오르세 미술관 소장 중.
밀레, 오르세 미술관
지금 그 이삭줍기를 말하는 것인가. 그러자 나는 더욱 화가 났다. 그는 자신의 처지를 동정하도록 만드는 동시에, 자신을 고된 노동을 하는 사람으로 만들었다. 그러나 이 밭에서 누가 성실한가? 누가 일 년 사철 노동을 해 이 감자를 수확할 수 있도록 만들었는가? 저번에 600평 양파 농사를 10개월 내내 지어 350만 원을 번 일이 떠올랐다. 내게 있어 그는 감자를 가져가는 것도 모자라 노동의 신성함도 훔쳐 가는 중이었다.
일하던 누나가 저쪽에 서서 모르는 사람과 시간이 길어지는 것 같자, 남동생이 뛰어와 앞을 가로막는다. 다년간의 헬스로 다져진 동생의 두꺼운 팔뚝이 앞을 가린다. 땀에 절은 큰 가슴의 들숨 날숨이 선명하게 보였다. 그런 남동생도, 작업복에 챙이 있는 모자까지 쓰고 와서 호미를 들고 있는 상대를 보자 어안이 벙벙해진다.
"지금 수확 중인 밭에서, 이건 너무 하시는 거 아닌가요. 일하고 있는 밭이니 어서 가셔요."
이해할 수 없는 어머니의 말
그러자 그는 어쩔 수 없다는 듯이 자신이 주워담은 감자를 주섬주섬 챙겨서 일어섰다. 마치 자기가 지은 노동의 수확물을 가져가는 것처럼 자연스러웠다. 그리곤 비적비적 자신의 차를 세워둔 곳으로 갔다. 차가 사라질 때까지 지켜보았다. 밭의 상황은 정리되어 가는 것 같았지만, 내 쪽에선 전혀 아니었다.
잃어버린 것은 겨우 감자 십수 개 뿐이다. 크게 잃어버린 것도 아닌데 뭐가 대수인가, 라고 할 수도 있다. 그런데 설명하기 어려운 허탈함이 몰려왔다. 이윽고 참시간이 다 되어 또 한번 이해할 수 없는 말을 들었다. 어머니였다.
"어른들 계신 밭에서 어디 큰 소리냐."
엄니와 아부지가 밭이 털리든 말든 신경을 쓰지 않아서, 밭을 잘 지켜보려고 했던 일로 혼이 났다. 자신을 이삭줍는 사람으로 명명한, 그러나 내가 보기에는 '감자도둑'인 사람을 막아보려고 했던 일인데 말이다. 가슴인지 목인지가 답답해졌다.
그런데 왜 저 노인이 아니라 나를 혼내는 건지 의아하기만 했던 어머니의 말을 나는 나중에야 알게 된다.
* 감자 도둑 이야기는 다음회에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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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자 밭에 나타난 도둑의 변명, 너무 화가 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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