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울과학고 자퇴 의사 밝힌 백강현 군
백강현 군 유튜브 = 연합뉴스
물론, 교육 전문가들은 모둠활동이야말로 교육의 본령에 가장 부합하는 수업 방식이라고 입을 모은다. 백지장도 맞들면 낫다는 식의 효율성에 기인한 건 아니다. 그렇다고 평범한 다수의 합의를 통한 결정이 비범한 소수의 그것보다 낫다는 식의 민주주의의 철학 문제도 아니다.
모둠활동은 재능과 적성, 관심과 흥미 등이 각기 다른 아이들이 한데 모여 문제를 해결해나가는 훈련이다. 그 과정에서 인간은 더불어 살아야 한다는 당위를 가슴에 새기고 타인을 배려하는 공동체성을 함양하게 되는 것이다. 학교를 '사회화 기관'이라고 통칭하는 것도 그런 이유다.
고등학교의 교육과정이 대입에 철저히 종속된 현실에서 수업 시간 모둠활동이 취지에 맞게 운영됐으리라 기대하는 건 연목구어다. 특히 아이들 대부분이 수시 전형을 통해 대학에 진학하는 과학고나 영재고 등 특목고라면, 모둠활동 하나에도 사활을 걸 수밖에 없다. 수행평가의 영역으로서, 내신 성적에 반영되기 때문이다.
일반고에서도 교과별 모둠활동은 '뜨거운 감자'다. 교육부에서는 수업 개선이라는 명목으로 적극 권장하고 있지만, 주저하는 교사들이 적지 않다. 성적에 반영하지 않으면 활동이 무의미할 만큼 느슨해지고, 성적에 반영된다면 학습을 위한 활동이라기보다 전쟁을 방불케 해서다.
애초 모둠을 편성하기조차 녹록지 않다. 지그재그 성적순으로 묶으면 서먹한 친구가 같은 모둠이 됐다며 불만을 토로하고, 친한 친구들끼리 알아서 모둠을 꾸리라고 하면 내신 등급별로 짝지어지기 일쑤다. 상위권과 하위권 아이들이 각각 끼리끼리 모이게 되는 게 다반사다.
사이가 좋지 않은 친구들끼리 한 모둠이 되면, 활동 도중 종종 분란이 벌어지기도 한다. 모둠활동 결과 낮은 점수를 받을라치면, 네 탓 공방에 관계가 더욱 험악해진다. 공부 잘하는 아이가 못하는 아이를 향해 대놓고 "너 때문에 모둠 점수가 깎였다"며 화내는 경우도 흔하다.
대번 그들 입에선 '불공정하다'는 말이 튀어나온다. 모둠활동의 기여도와 참여도에 따라 점수를 차등하자는 주장이 당연시된다. 학교마다 별도의 성적 관리 규정을 만들어 보완책을 두고 있지만, 평가 기준이 모호할 수밖에 없어 혼선을 빚고 있다. 기여하고 참여한 정도를 무슨 수로 변별할 수 있을까.
교사가 관찰한 대로 평가하면 주관이 개입됐다고 반발하고, 모둠원끼리 협의를 통해 정하라고 하면 교사가 방임했다고 나무란다. 그나마 친구들끼리 알아서 모둠을 꾸리게 한 뒤 모둠별로 같은 점수를 주는 게 뒷말이 가장 적다. 애초 모둠활동을 하지 않는 게 상책이긴 하다.
문제는 모둠활동조차 일렬로 줄 세워 점수를 매겨야 하는 상대평가 제도에 있다. '100점'은 쓸데없고 오로지 '1등'만이 필요한 상황에서, 모둠활동은 아이들에게 다양한 경험과 배움의 기회라기보다 힘들고 마뜩잖은 수험 과정이었을 뿐이다. '귤이 회수를 건너면 탱자가 되듯' 모둠활동도 그렇게 껍데기만 남았다.
백군에겐 모둠활동이 더더욱 부담스러웠을 것이다. 다섯 살 터울의 형과 누나들과 함께 부대끼며 대화하고 토론하는 게 만만치 않았으리라는 건 불 보듯 환하다. 그에겐 여럿이 하는 모둠활동보다 몇 날 며칠이 걸리든지 홀로 해낼 수 있는 과제였다면 차라리 나았을 것이다.
백군의 아버지는 백군이 모둠 내에서 '투명 인간' 취급을 받았다고 분노했지만, 같은 모둠의 아이들에게만 비난의 화살을 돌리기도 뭣한 이유다. 전원이 기숙사에서 생활하는 아이들이 집에서 등하교하는 백군을 배려하는 데엔 한계가 있었을 것이다. 그들도 고작 열대여섯 살 아이들이다.
'영재 소년'이 '시민'으로 자랄 수 있으려면

▲ 거듭 강조하거니와, 이번 사달의 근본적인 원인은 학교 교육을 유명무실하게 만드는 서열화한 학벌 구조와 대입 제도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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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지않아 백군이 내로라하는 과학자가 되어 꿈을 펼치리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학교를 떠난다고 해서 자타공인 '영재 소년'인 백군의 재능과 역량이 사라질 리 없다. 그동안 학과 공부에 치여 못했다는 다양한 창의적인 활동을 하면서 쌓인 스트레스를 말끔히 해소하면 좋겠다.
그는 자퇴를 결심하며 평소 좋아했던 작곡도 하고, 보드게임도 만들고 싶다고 말했다. 멘사 문제도 만들고, 태권도 학원도 다니면서 수능 준비도 열심히 하겠다는 포부를 밝히기도 했다. 그의 의젓한 바람을 듣노라면, 굳이 월반을 통해 과학고에 입학할 필요가 있었나 싶기도 하다.
거듭 강조하거니와, 이번 사달의 근본적인 원인은 학교 교육을 유명무실하게 만드는 서열화한 학벌 구조와 대입 제도에 있다. 대입에 철저히 종속된 현행 학교 교육 아래에선 백군의 천부적인 재능과 역량을 발휘하기가 쉽지 않다. 우리 사회에서 백군과 같은 '영재'가 얼마 못 가 '범재'가 된 사례는 이미 차고도 넘친다.
굳이 '미시적인' 책임을 묻는다면, 나이 어린 그를 뽑아만 놓고 학교생활과 수업에 아무런 대책을 세우지 않은 학교의 관성을 우선 꼽겠다. IQ로 대표되는 학업적 재능과 정서적 공감 능력이 비례하지 않는다는 걸 간과한 기성세대의 무지에 큰 책임이 있다. 지식 역량을 의사소통 역량이나 공동체 역량 등 다른 그 어떤 역량보다 우위에 두는 사회에선, 미래세대 아이들이 올곧은 시민으로 성장하기도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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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미뤄지고 있지만, 여전히 내 꿈은 두 발로 세계일주를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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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재 소년' 백강현은 왜 자퇴할 수밖에 없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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