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도 더 된 이야기다. 아내는 백화점 문화센터에서 요리를 배웠다. 얼마간 열심히 다니더니 시어머니께 맛있는 음식을 해드리고 싶다며 정성껏 만들어 바리바리 싸서 찾아뵈었다. 며느리가 그 정도 성의를 보이면 "참 맛있다. 바쁠 텐데 언제 이런 걸 다 준비했니? 고맙다." 보통은 이렇게 말할 것이다.
그런데 어머니는 전혀 예상치 못한 말씀을 하셨다. 며느리의 수고를 칭찬하기는커녕 "얘, 너는 네 신랑 옷을 왜 저렇게 입혔니?" 깔끔하고 멋 부리기 좋아하시는 어머니를 뵈러 가며 너무 편한 옷을 입은 게 실수였다. 그렇더라도 옷을 내가 입지 누가 입혀주는 것이 아닌데 어머니는 괜히 며느리 탓을 했다. 집에 돌아오는 길에 차 안에서 내가 어떻게 시달렸는지 상상에 맡기겠다. 그 이후 오랫동안 며느리 반찬은 없었다.
말은 얼마나 힘이 있을까? 따뜻한 말은 사람을 따뜻하게 하고, 따뜻한 마음은 세상까지 따뜻하게 한다는데 사실일까? '가는 말이 고와야 오는 말이 곱다', '말 한마디에 천 냥 빚도 갚는다', '말이 씨가 된다' 등과 같은 속담은 모두 말이 지닌 힘을 나타낸다.
정일근 시인은 <신문지 밥상>에서 '따뜻한 말은 사람을 따뜻하게' 한다고 했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초등학교도 못 나온 어른의 말씀 철학이 이렇다는 것이다.
더러 신문지 깔고 밥 먹을 때가 있는데요
어머니, 우리 어머니 꼭 밥상 펴라 말씀하시는데요
저는 신문지가 무슨 밥상이냐며 구시렁구시렁 하는데요
신문질 신문지로 깔면 신문지 깔고 밥 먹고요
신문질 밥상으로 펴면 밥상 차려 밥 먹는다고요
따뜻한 말은 사람을 따뜻하게 하고요
따뜻한 마음은 세상까지 따뜻하게 한다고요
어머니 또 한 말씀 가르쳐 주시는데요
해방 후 소학교 2학년이 최종학력이신
어머니, 우리 어머니 말씀 철학
- <신문지 밥상> 정일근
리더는 혼자가 아닌 다른 사람과 함께 해야 한다
전국시대 진(晉)나라는 지·위·조·한씨 같은 몇몇 귀족 세력이 왕실을 능가했다. 이들 중 지씨 가문 세력이 가장 컸다. 결론부터 말하면 지씨 가문은 멸망하고 진나라는 위·조·한 세 나라로 갈라진다.
지씨 가문 멸망에는 후계자를 잘못 정한 이유도 있다. 물론 후계자로 낙점받은 지백요가 결코 능력이 떨어지는 인사는 아니었다. 지백요는 여러 면에서 다른 사람을 앞지르는 호걸이었다. 틀림없이 능력 있는 후계자였다. 지씨 가문의 장자 지선자(知宣子)는 후계자로 아들 지백요를 마음에 두고 일족인 지과(知果)에게 물어보니 기대와는 다른 대답이 돌아왔다.
"요는 참으로 어진 마음이 없습니다. 자신의 다섯 가지 장점으로 남을 업신여기고 어질지 못한 행동을 한다면 누가 참아내겠습니까? 기어이 요를 후계자로 세우고자 하신다면, 우리 지씨 가문은 멸망하고 말 것입니다."
지백요가 능력은 뛰어나나 사람 대하는 태도에 문제가 있다는 지적이다. 그러나 지선자는 마음을 바꾸지 않았다. 싸움터에서 힘과 용기보다 더 중요한 것이 무엇이란 말인가. 앞으로 지씨 가문은 무한 경쟁에서 살아남아야 한다. 지선자는 뛰어난 외모와 재능을 가진 요를 차마 버리지 못하고 후계자로 삼았다.
지백요의 안하무인 행동은 여타 거대 씨족들의 분노를 샀다. 특히 술자리에서 사람을 모욕하는 짓이 도를 넘었다. 그는 조간자에 이어 정경이 되자 진(晉)나라의 이름으로 군대를 부렸다. 원정에서 돌아오는 길에 위씨, 한씨 가문의 종주들과 함께 잔치를 열었는데, 지백요는 마음 놓고 한강자(韓康子) 호(虎)와 그의 모신(謀臣) 단규(段規)를 모욕했다.
단규는 한호가 가장 믿는 지모가였다. 그러자 지씨 가문의 사람이 지백요에게 충고했다. "주군, 저들을 대비하지 않으면 반드시 난리가 닥칠 것입니다." 그러나 지백요는 코웃음을 쳤다. "난리라면 장차 내가 일으킬 것이오. 내가 지금 난을 일으키지 않는데, 감히 누가 일으킨단 말이오."
그는 다시 말했다. "그렇지 않습니다. 주서(周書)에 이런 말이 있습니다. '원망이란 꼭 큰일 때문에 생기는 것도 아니고 작은 곳에서만 생기는 것이 아니다'라고요. 대저 군자는 능히 작은 일에 신경을 썼기에 큰 우환을 막았습니다. 지금 주군께서 연회 한 번에 남의 군주 되는 사람과 신하를 한꺼번에 욕보이시고는 대비하지도 않으면서, '그들은 감히 난리를 일으키지 않을 것이다' 하니 이래서는 안 되지 않습니까? 벌이나 개미 따위 벌레도 사람을 해할 수 있는데 남의 군주 노릇하는 자와 신하라면 어떻겠습니까?" 지백요는 여전히 들은 체하지 않았다.
지백요와 상반되는 인물을 보자. 역시 진나라 거대 씨족인 조씨 가문을 이끄는 조무휼 이야기다. 무휼의 아버지 조간자는 무휼이 정말 현명하다는 사실을 알고 무휼을 태자로 삼았다.
무휼이 군대를 거느리고 정나라 원정에서 돌아오는 날 지백요와 조무휼이 연회석에서 술을 마셨다. 지백이 술에 취하자 무휼에게 술을 뿌리며 두들겨 팼다. 실로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거대 씨족인 조씨 가문 우두머리에게 손찌검하다니. 여러 신하가 지백을 죽여야 한다고 간청하자 무휼이 말했다. "군주께서 나를 태자로 삼으신 까닭은 내가 욕됨을 견딜 수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하셨기 때문입니다."
지모와 충동 조절 능력을 갖춘 조무휼은 나중에 지씨 가문을 멸하고 전국시대에 강력한 국가 모습을 갖추게 된다. 리더에게 능력이란 무엇일까? 리더는 혼자 좋은 성과를 낼뿐 아니라 다른 사람과도 함께 성과를 낼 줄 알아야 한다.
혼자서는 좋은 성과를 내지만 조직원과 함께 하는 일에서 부진한 성과를 낸다면 능력 있는 리더가 아니다. 리더가 사람 귀한 줄 모르고 모욕적인 말을 함부로 한다면 좋은 성과를 기대하기 어렵다. 좋은 인재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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