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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수함이 만든 잔혹함... 동심파괴가 던지는 질문

[리뷰] 영화 <이노센트>

23.09.07 10:25최종업데이트23.09.07 1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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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이노센트> 스틸컷 ⓒ (주)스튜디오 디에이치엘

 
초능력을 소재로 한 북유럽 영화가 이목을 끌고 있다. 인기리에 방영 중인 한국형 히어로 <무빙>이나 초능력이 생긴 십 대의 비행을 다룬 <클로니클>과 접점을 이루는 영화 <이노센트>다. 순진무구한 아이를 통해 인간의 선악을 탐구한다. 이민자, 싱글맘, 장애인 등 소외된 사람들이 모여 사는 아파트에서 동심파괴 현장이 목격된다. 어린 시절 부모의 관심을 받으려고 무심결에 했던 장난이 부메랑처럼 돌아오는 날카로운 기억이다.
 
감독 에실 보그트는 어울리지 않는 것을 이어 붙여 공포감을 조성했다. 한낮 광장의 결투, 아이의 악의, 자연의 기이함 등 선입견을 깨버린다. 복지국가의 안락함과 초능력이라는 소재는 신선한 충격으로 다가온다. 대자연의 축복이 가득하지만 서늘한 정서가 스며드는 북유럽 특유의 분위기가 내내 흐른다. 여름의 노르웨이는 오후 10시가 되어야 해가 지기 때문에 빛에 관한 다양한 관점이 존재한다. 따뜻한 빛과 아이들의 쾌활한 웃음소리가 무섭게 느껴지기도 한다.
 
그중 아파트라는 한정된 공간에서 벌어지는 미스터리한 일들이 초능력으로 확대된다. 등장인물도 단조롭다. 네 아이와 부모 및 동네 사람 몇몇이 전부다. 자칫 지루할 수 있는 서사를 음향, 촬영 기법을 통해 조여드는 긴장감을 유발한다.
 
넷이 모여 증폭되는 능력자들
  

영화 <이노센트> 스틸컷 ⓒ (주)스튜디오 디에이치엘

 
최근, 이 동네로 이사온 이다(라켈 레노라 플뢰툼)와 자폐 스펙트럼 장애를 가진 언니 안나(알바 브륀스모 람스타드). 비슷한 또래의 벤자민(샘 아쉬라프)과 백반증을 앓고 있는 아이샤(미나 야스민 브렘세스 아샤임)를 사귀게 된다. 이다는 아파트 근처 숲속에서 벤자민의 놀라운 능력을 알게 된다. 벤자민은 물건을 옮기거나 사람 마음을 조정할 수 있는 초능력을 보여주며 이다의 관심을 끈다.
 
한편, 안나는 혼자 모래 놀이를 하다 아이샤를 만난다. 둘은 말을 하지 않아도 마음으로 우정을 나누며 친해진다. 아이샤는 안나의 내면을 선한 마음으로 물들이는데, 안나의 목소리를 찾아주고 잠재되어 있던 초능력을 각성하는 것도 돕는다. 서로를 느끼며 우정을 쌓고 몰랐던 잠재력을 깨우게 되는 거다.
 
이로써 각자 다른 초능력을 지닌 네 아이가 한데 모이게 되자 그 힘은 증폭되어 간다. 하지만 주변에 위협을 가하기 시작하던 벤자민의 폭주로 관계는 끊어지고야 만다. 벤자민은 곤충이나 고양이를 괴롭히는 것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간다. 자신을 못살게 굴었던 대상에게 적개심을 세워 나간다. 결국 분노의 화살은 엄마에게 돌아가고 끔찍한 현장을 만들어 낸다.
 
순수함이 사악함으로 변하는 나이
  

영화 <이노센트> 스틸컷 ⓒ (주)스튜디오 디에이치엘

 
영화 속 아이들은 순수(이노센트)의 정의를 다시 쓰게 한다. 점입가경인 벤자민을 중심으로 서스펜스를 조성하다가 안나와 아이샤를 통해 희망을 이야기한다. 어린아이에 투영해 순수 악을 논한다. 인간이 태어날 때부터 지닌 본성과 욕망도 후천적으로 갱생 가능하다 믿는 성악설을 떠올리게 한다.
 
순수함은 이기심과 집착을 만들어 낸다. 때로는 무언가에 심취한 나머지 자신을 넘어 타인을 옭아매는 어두운 마음에 닿는다. 옳고 그름의 가치관이 제대로 성립되지 않은 유년기에는 어떤 일이 어떻게 벌어질지 모른다. 음식을 먹고 싶고, 물건을 사고 싶다는 순수한 마음은 도덕적 타당성을 알지 못해 잘못된 길로 빠져들기 십상이다. 본능에 충실한 아이의 순수한 행동이지만 어른은 윤리적인 맥락을 고민할 수밖에 없는 거다.
 
의심해 본 적 없는 순수한 동심이 잔혹한 성장통으로 변화하는 영화다. 다양한 인종과 집안 배경도 눈에 띈다. 가정 폭력과 무관심, 장애 등으로 녹록지 않은 가족의 모습은 소수자, 비주류의 삶을 톺아보는 계기를 마련한다. 네 아이의 뛰어난 연기는 실제인지 분간하기 어려울 만큼 자연스럽다. 능숙한 연기와 표정은 어른들의 마음을 훔치는 데 성공했다.
 
감독 '에실 보그트'는 <블라인드>에 이어 두 번째 장편 <이노센트>를 통해 따뜻한 서늘함을 마음껏 펼쳐냈다. 북유럽을 대표하는 '요아킴 트리에' 감독이 사랑하는 각본가다. 그의 영화 <라우더 댄 밤즈> <델마> <사랑할 땐 누구나 최악이 된다>의 시나리오로 재능을 인정받았다.
덧붙이는 글 이 글은 브런치에 게재했습니다. https://brunch.co.kr/@doona90
이노센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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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고 쓰고, 읽고 쓰고, 듣고 씁니다. https://brunch.co.kr/@doona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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