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교사의 안타까운 죽음, 이유는 바로 칼보다 무서운 누군가의 말과 행동입니다.

내가 한 말과 행동이 누군가에게 큰 상처가 될 수 있음을 늘 경계해야 할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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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유미(yumi05)등록 2023.09.11 15:27
오늘 아침 유독 학교가는 발걸음이 무겁다. 그 때 학교 현관에서 한 여자아이가 엄마의 따뜻한 배웅을 받으며 총총총 들어가는 뒷모습이 시야에 들어왔다. 갑자기 마음이 저릿해온다.
지난 금요일, 대전의 인근 초등학교에서 또 한 명의 선생님께서 안타깝게 생을 마감하셨다. 둘째 아이가 고작 초등학교 1학년이라고 한다. 나는 그 소식을 듣자마자 돌아가신 선생님의 아이 생각에 눈물이 왈칵 쏟아진다. 아까 현관에서 마주친 그 아이처럼, 학교 가기 전 엄마의 따스한 배웅을 매일 받아왔을 그 아이. 하루아침에 세상의 반쪽, 아니 전부를 잃었다. 자신의 고통만을 생각한 누군가가 아이 엄마의 가슴에 돌처럼 내던진 말과 행동으로 인해...
언론에서 보도된 바에 따르면 고인이 되신 선생님이 당시 초등학교 1학년이었던 반 아이들을 훈육하던 과정에서 교장실로 보낸 일로 아동학대 신고를 당했고, 무혐의 처벌이 난 뒤에도, 4년간 4명의 학부모로부터 지속적인 괴롭힘을 당해왔다고 한다.
근무지내 학교에 거주지가 있어 늘 사생활을 감시당하며 눈총을 받았고, 아파서 병가를 냈을 땐 병가내고 학교 주변을 돌아다닌다며, 학교에서는 교실 복도에서 아이가 그 선생님을 마주친다는 연유로 민원을 제기한 적도 있었다고 한다. 그리고 혹여나 그 선생님이 자신의 아이의 담임이 될까 우려해 학교 측에 민원을 제기해 교과전담교사(한 과목만 가르치는 교사)로 2년을 지내왔다고 한다. 그리고 죽기 한 달 전, 한 교사노조에 교권 피해 사례를 올린 내용에서. "언제까지 이런 피해를 당해야 할지 갑갑하다. 내가 한 노력이 이런 식으로 다시 부메랑으로 돌아올까 염려된다." 이런 말을 남겼다고 하니 당시 고통이 상당했음을 짐작할 수 있다.
그렇게 고통스럽게 삶을 마감하면서도 생전 신념에 따라 100인의 화상환자에게 피부를 기증했다는 말에 가슴이 먹먹해져 왔다. 죽을 때 까지 선생님이었던 착한 분. 그런 선생님은 대체 4년 간의 시간 동안 얼마나 많은 속울음을 삼키며 기꺼이 생을 이어왔던 걸까? 같은 학교에 다니는 생떼같은 두 아이들을 놓고 목숨을 끊을 수 밖에 없던 참담한 심정을 그 누가 알길이 있으랴? 매일 아침 두 아이들을 위해 자신의 고통을 삼키며 주먹 불끈 쥐고 교실문을 열고 들어갔을 선생님이 한 순간에 생의 끈을 놓아버린 이유는 아마도 자신의 존재를 짓밟은 누군가의 사소한 말과 행동일 것이다.
이 사건을 접하며 잊고 있던 학창시절의 고통을 떠올린다. 중학교 1학년 시절, 처음 본 중간고사에서 예상치 못하게 전교 1등을 했을 때, 나와 막역한 사이였던 단짝이 그때부터 나를 피하기 시작했다. 웃으며 점심먹으러 가자고 하는 나의 팔을 뿌리치고 다른 무리로 홱 돌아서던 모습. 연습장 위 빨간 글씨로 휘갈겨 쓴 "너는 일주일 후에 죽을 것이다"라는 글귀를 보고 당황한 나를 보며 킥킥대던 친구들의 모습이 어제 일처럼 생생하다.
그렇게 매일 내 일거수 일투족은 전 단짝친구를 비롯 서너명 무리의 아이들에게 조롱거리가 되었고, 그렇게 내 존재를 흔드는 말들을 몸에 휘감고 집으로 돌아와 거울 앞에 비친 내 모습을 보는 게 너무도 괴로웠다. 거울 속 내 모습은 하찮고 보잘 것 없는 존재로 살아갈 의미가 없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그때마다 불쑥 솟아오르는 극단적인 생각을 꾹꾹 눌러내는 것도 고역이었다.
그들이 나를 향해 던지는 조롱과 비난은 그들에겐 잠시나마의 쾌락거리였을지 몰라도 내겐 심장을 도려내는 듯한 고통이었다. 다행히 중학교 2학년 시절 학원에서 혼자 앉은 내 옆자리를 채워준 고마운 친구 덕분에 그 고통에서 놓여났지만 지금도 그때의 기억을 코앞으로 소환하면 정신이 아득해져 온다.
선생님의 비보를 접하며 내 안에 숨어있던 닮은 고통을 끌어내어 겹쳐보니 일순 속이 울렁대고 식은 땀이 나며 마음 속에 불쑥 화가 솟구쳐왔다. 선생님도 나처럼 거울 앞에 서서 자신의 모습을 처량하게 봐라봤을까? 내 고통과 겹쳐보니 그 전보다 더 피부로 생생하게 전해져왔다. 선생님을 죽음에 이르게 한 누군가도 이렇게 자신이 살면서 겪은 닮은 고통을 조금이라도 겹쳐보았다면 상황은 조금 달라졌을까?
연일 들려오는 안타까운 선생님들의 죽음. 그 이면에는 자신의 고통만 생각해 타인의 고통에 무감각해진 사람들이 저지른 말과 행동이 날카로운 칼이 되어 한 사람의 존재 자체를 송두리째 흔들어 죽음에 이르게 한 경우가 대부분이다. 데일카네기의 인간관계론에서는 이런 말이 나온다. "중국에서 수천만명의 사상자를 낸 천재지변보다 내 치통이 더 크게 느껴진다" 나는 이번 사건을 비롯 여러 건의 안타까움 죽음을 목도하며 사람은 자신의 고통만이 소중한 나머지 타인의 고통에는 무감각한 사람들이 많다는 것을 또 한 번 체감한다.
내가 오래된 기억 속 닮은 고통을 끌어내어 선생님이 겪은 고통에 겹쳐보며 그 마음을 어슴푸레하게 나마 기억했듯, 누군가도 다른 사람의 고통에 자신의 닮은 고통을 겹치는 노력을 하며 행동한다면 상황이 달라졌을까? 누군가가 자신 아이 마음의 상처를 염려했듯 선생님 아이의 가슴에 남을 평생의 상처를 조금이라도 헤아리고 행동했다면 선생님의 아이는 오늘도 여지없이 엄마의 따스한 배웅을 받으며 들어갈 수 있었으리라..
이런 저런 생각을 하며 어느 새 교실 문 앞에 다다른 나는 생각한다. 이 문을 열고 들어가는 순간 내가 한 사소한 행동이나 말이 누군가에게는 상처가 될 수 있음을 늘 경계하며 살아야겠다고...
 
 
덧붙이는 글 브런치에 실릴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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