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달장애인 소형민 피플퍼스트 활동가가 20일 오후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 인근 카페에서 <오마이뉴스>와 인터뷰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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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형민씨는 문씨와 같은 센터에서 역시 동료지원가로 일하고 있다. 그는 1년 전 이맘 때 삭발을 했다. 그때도 동료지원가 예산을 삭감하려는 윤석열 정부에 항의하며 대통령실이 있는 삼각지역 승강장에서 머리를 밀었다. 그리고 준비해 온 발언문을 읽어 내려갔다.
"최저시급도 안 주고, 일자리도 빼앗아 가면 장애인이 이 세상에서 살기가 너무 힘들어집니다. 그래서 예산을 세우고 지원을 해줘야 하는데 왜 이것마저도 빼앗아 갑니까."
소씨는 지난 18일 연행될 각오를 하고 새벽부터 일어나 점거 농성에 나섰다. 경찰들이 농성 중인 발달장애인 동료들을 포위하자, 그는 "무서움보다 치욕스러움"을 느꼈다. 오전 9시께 연행된 소씨는 그날 오후 6시가 넘어 성북경찰서에서 석방됐다.
"동료지원가 예산을 지켜달라는 우리를 현행범으로 체포했어요. 범죄자로 취급하는 말들, 저한테 비수를 꽂는 말들을 했어요. 기분이 안 좋았어요."
소씨에게 동료지원가 사업은 '관계'를 배우는 시간이었다. 같은 장애 유형의 동료라도 서로 생각이 다를 수 있고, 다툼이 있을 수도 있고, 그러면서 더 가까운 친구가 될 수 있다는 걸 알게 됐다. 그는 "장애인이 일을 못한다고 무시하니까, 장애인을 우습게 보는 것 같았어요. 동료지원가 예산이 정말 잘리면 다시 항의하러 갈 거예요"라고 힘주어 말했다.
"제게 동료지원가는 일터이자 '베스트 프렌드'들을 만날 수 있는 기회입니다. 우리도 안정적으로 일할 수 있는 곳이 많아져야 해요."
"장애인 노동 비하 멈춰라"

▲발달장애인 남태준 피플퍼스트 활동가가 20일 오후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 인근 카페에서 <오마이뉴스>와 인터뷰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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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태준씨는 피플퍼스트 성북센터에서 일한다. 남씨를 포함한 3명의 발달장애인이 그곳에서 동료지원가로 활동한다. 남씨은 장애인 권익옹호 활동을 비롯해 동료상담을 위해 필요한 자료를 만드는 일을 한다. 센터 홈페이지와 페이스북 페이지에 게시글을 올리고 관리하는 일도 그의 몫이다.
남씨 역시 이번 동료지원가 예산 전액 삭감으로 일자리를 잃을 처지에 내몰렸다. 남씨는 18일 점거 농성 현장에서 가까스로 연행을 피했다. 경찰은 그가 잠시 자리를 비운 사이 로비로 들이닥쳤다. 그는 "잠깐 화장실에 있었는데 밖에서 동료들이 끌려가는 소리가 들려서 기분이 진짜 안 좋았어요"라며 눈살을 찌푸렸다.
남씨는 지난달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전장연) 지하철 타기 400일차를 맞아 국회의사당역을 다녀왔다. 그날은 피플퍼스트 활동가들이 발언자로 참여하는 '피플데이(pepole day)'였다. 남씨는 직접 만든 팻말을 들어 보이며 "장애인 노동 비하를 멈추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동료지원가 사업이 발달장애인에게 어떤 의미인지 묻자, 남씨는 이렇게 설명했다.
"동료지원가 사업이 계속 유지되면, 동료지원가가 늘어나고, 우리와 같은 동료지원가가 장애인 동료들의 취업 연계를 계속 해줄 수 있어요. 정부와 기획재정부, 고용노동부가 동료지원가 예산을 폐기하는 걸 멈춰야 합니다."

▲발달장애인 문석영·소형민·남태준 피플퍼스트 활동가(왼쪽부터)가 20일 오후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 인근 카페에서 <오마이뉴스>와 인터뷰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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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사람은 오는 10월 서울에서 열리는 '한국피플퍼스트' 대회를 앞두고 있다. 이들은 앞으로도 자신을 위해, 서로를 위해, 동료지원가 일자리를 지키기 위해 계속 목소리를 낼 것이라고 강조했다.
고용노동부는 지난 11일 설명자료를 통해 "(예산이 사라지더라도) 동료지원가가 신속히 다른 일자리를 가질 수 있도록 적극 노력할 계획"이라고 밝혔으나, 이를 해결하기 위한 구체적인 대책은 아직까지 나오지 않았다.
세 사람은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며 이렇게 입을 모아 말했다.
"평생교육 선생님들도, 동료 상담 선생님들도, 자조 모임 참여자들도 모두 동료지원가 일자리에 만족하고 있어요. 이번 일을 계기로 사람들이 발달장애인과 우리의 노동을 많이 알아주면 좋겠어요. 동료지원가 예산 삭감 절대 금지!"

▲발달장애인 문석영·남태준·소형민 피플퍼스트 활동가(왼쪽부터)가 20일 오후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 인근 카페에서 <오마이뉴스>를 만나 카메라 앞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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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플퍼스트(people first)는 발달장애인이 주축이 되어 스스로 활동하는 조직과 운동을 뜻한다. 1974년 미국 오리건주 발달장애인 대회에서 한 참가자가 '나는 먼저 사람으로 알려지길 원한다(I wanna be known to people first)'라고 말한 데서 유래했다. 우리나라에서는 2016년 처음 문을 열었다. 서울에는 현재 피플퍼스트 서울센터, 성북센터, 광진센터가 있다.
피플퍼스트 활동가들은 각 지역에 있는 센터에서 동료지원가로 일하고 있다. 이들은 상담, 정보 제공, 자조 모임 등을 통해 장애인 동료가 일자리를 가질 수 있도록 돕는 일을 한다. 동료지원가 사업으로 알려진 '중증장애인 지역맞춤형 취업지원사업' 예산이 내년에 전액 삭감되면, 이들은 일자리를 잃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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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세훈-윤석열 너네 일자리부터 내놔" 대한민국 최초로 점거농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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