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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사 좀 되니, 나가줄래?" 백종원도 결국 피하지 못했다

[리뷰] MBC <백종원 시장이 되다>

23.09.24 11:35최종업데이트23.09.24 1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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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C 특집 다큐멘터리 <백종원 시장이 되다>의 한 장면 ⓒ MBC

 
과거 SBS 예능 프로그램 <백종원의 골목식당>을 통해 망해가는 식당을 손님이 찾아오는 곳으로 성공시킨 백종원, 그가 이번에는 '시장'에 도전했다. 

MBC는 지난 13일에 이어 20일  특집 다큐멘터리 <백종원 시장이 되다>를 방송했다. 이 방송은 단순히 식당 한 곳이 아니라 예산시장 전체를 바꾸는 프로젝트였다. 한마디로 시장판 골목식당인 셈이다. 

예산이 고향인 백종원은 "예산시장이 과거에는 예산의 홍대였다"고 했다. 그러나 이제 예산시장은 곳곳에 임대 딱지만 붙어 있는 텅 빈 점포만 즐비하다. 그는 "이러다가 지역이 없어지겠다"라는 걱정으로 예산 시장 프로젝트를 시작했다고 기획 의도를 밝혔다. 

결론부터 말하면 <백종원 시장이 되다>는 성공했다. 예산군에 따르면 지난 7월 말 기준 예산시장 누적 방문객 수는 137만 명으로 집계됐다. 지역소멸위기 극복이라는 목표를 충분히 달성한 것이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다양한 문제가 터져 나왔다. 

"장사 잘되네, 이제 나가라"

백종원이 예산시장을 바꾸는 프로젝트를 추진하면서 가장 먼저 한 일은 '상가 매입'이었다. 과거 골목식당으로 식당을 성공시켜도 "건물주만 좋은 일 했다"는 비판을 염두에 둔 행보였다. 실제로 백종원의 도움을 받은 식당들이 장사가 잘되자 건물주들은 임대료를 올렸다. 심지어 나중에는 "아들에게 건물을 줬다"라는 식의 각종 핑계를 대고 임차인들을 쫓아냈다. 

백씨는 흔히 말하는 '젠트리피케이션'을 방지하기 위해 아예 상가를 매입했다. 이 과정에서 일부 건물주들은 시세보다 높은 금액을 요구하거나 아예 상가를 팔지 않겠다며 고집을 부렸다. 백종원과 예산군청은 건물주들을 설득해 예산시장 내 일부 상가들을 매입해 프로젝트를 차근차근 진행했다. 
 

<백종원 시장이 되다>의 한 장면. 예산시장 주변에서 장사를 했던 치킨집은 백종원 시장이 되다 프로젝트 이후 주인으로부터 나가라는 통보를 받았다. ⓒ MBC


불똥은 주변 상가로 튀었다. 시장 주변에서 10년 넘게 치킨집을 운영했던 사장은 건물주로부터 퇴거 통보를 받았다. <백종원 시장이 되다>가 몰고 온 후폭풍이었다. 

치킨집 외에도 몇몇 상가들은 건물주들이 가게를 팔았다며 나가달라는 요청을 받았고, 일부는 임대료가 급격하게 오르기도 했다. 발빠른 사람들은 방송 효과를 얻기 위해 백씨가 매입하지 않은 상가에 높은 임대료를 주고 들어와 비싼 가격을 받았다. 아무리 준비를 했지만 백종원조차 '젠트리피케이션'을 피하지는 못한 것이다. 

황리단길 개별공시지가 4년 만에 175% 급상승
 

<백종원 시장이 되다>의 한 장면. 젠트리피케이션은 낙후된 지역이 살아나자 임대료가 상승해 기존 세입자들이 쫓겨나는 현상을 말한다 ⓒ MBC

 
방송과 SNS를 통해 OO길이라며 사람들이 찾아오는 유명 골목상권들, 이곳은 원래 사람들이 찾지 않아 그나마 저렴한 임대료로 겨우 생계를 유지했던 곳이다. 하지만 입소문이 나며 골목상권이 성장하자 임대료는 급상승했고, 비싼 임대료를 감당하지 못해 기존 세입자들은 하나둘씩 떠났다. 

<경주신문>이 한국관광공사 자료를 토대로 조사해 보니 '경주 황리단길'은 불과 4년 만에 개별공지시가가 175% 급상승했다. 경주시 전체 개별공시지가의 3배가 넘는 수준이었다. 

문체부와 한국관광공사가 조사한 자료를 보면 2020년 대비 2021년 전국 8개 골목상권의 평균 개별공시지가는 최소 6%에서 많게는 17% 이상 상승했다. 임대료도 해당 지역 평균과 비교해 1.5배 이상 높았다. 

더 큰 문제는 임대료를 감당하지 못해 기존 세입자가 나간 뒤 들어오는 임차인들은 기존 임대료보다 더 높은 가격을 줘야 한다는 점이다. 나가고 들어오는 세입자가 반복될수록 임대료는 계속 상승했다. "건물주만 좋은 일"이라는 말이 나오는 이유이다. 

백종원 "당장은 괜찮지만 이러다가 또 망해요" 
 

<백종원 시장이 되다>의 한 장면. 백종원이 예산 지역 숙박비를 올린 업주들을 질타하는 모습 ⓒ MBC


예산시장은 '백종원 특수'를 톡톡히 누렸다. 손님들이 찾아오면서 주변 상가는 물론이고 지역 전체가 북적였다. 그러자 모텔비를 기존 가격보다 2배 이상 받거나 4천 원이었던 국수값을 7천 원으로 올려 받는 등 주변 물가가 들썩였다. 

백종원은 업주들이 모인 자리에서 "지방에 왔다가 가격이 비싸면 손님들이 찾지 않는다"면서 "당장의 욕심에 눈이 멀지 맙시다"라며 목소리를 높였다. 예산 지역 업주들은 충고를 받아들여 가격을 올리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하지만 끝까지 고집을 부린 곳도 있다. '백종원 거리'라는 간판이 붙어 있는 예산의 국밥거리를 다녀간 방문객들은 "양을 늘리기 위해 물을 탔다", "고기가 오래돼 냄새가 난다",  "불친절하다"는 불만을 쏟아냈다. 백종원과 직원들이 솔루션을 제공하고 위생을 재차 강조했지만 일부 업주들은 "사소한 것까지 다 (참견해서) 사람을 어렵게 한다. 벌금을 맞더라도 우리는 빠지겠다"며 반발했다. 결국 국밥거리에 붙어 있던 '백종권 거리' 간판은 철거됐고, 사람들에게 외면을 받았다. 

예산시장 주변에는 백종원의 충고를 받아 가격을 저렴하게 하고 위생을 철저히 하겠다는 식당도 있었지만 관광객을 대상으로 비싼 가격을 받는 상가들도 우후죽순 생겼다. 그러자 예산군청은 '함께가게'라는 간판을 통해 예산지역 살리기 프로젝트에 동참하는 가게를 표시하며 차별성을 뒀다. 

공공의 이익보다 인간의 탐욕이 더 우선하는 세상 

예산시장의 성공 소식이 알려지자 지자체마다 백종원을 모셔 지역을 개발하겠다며 몰려왔다. 그러나 백종원이 온다고 해도 성공하기는 쉽지 않다. 

<백종원 시장이 되다>에서 드러났듯이 성공하는 골목상권 뒤에는 필수적으로 젠트리피케이션이 따라온다. 이를 막기 위해 지자체들이 수많은 상가를 매입할 수 있을까? 가뜩이나 예산 부족으로 시달리는 지자체 입장에서는 현실적으로 버겁다.

방송을 보면 카메라가 돌고 있는 자리에서조차 지적을 받아도 따르지 않겠다는 업주들이 나온다. 백종원이 오고 전문가인 직원들이 옆에서 도와줘도 모든 상인들이 가격과 위생을 만족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노력하고 유지한다는 보장도 없다. 

전통시장 개발 프로젝트라는 명목으로 지역마다 엄청난 예산이 투입됐지만 대부분 실패로 돌아간 이유이기도 하다. 공공의 이익이 인간의 욕심을 이길 순 없는걸까.  

<백종원 시장이 되다>는 성공한 시장 프로젝트이기보다 사람들의 욕망이 얼마나 크고 집요하며 뻔뻔한지를 잘 보여준 방송이었다. 백종원이라는 인물이 갖고 있는 유명세와 방송 홍보 효과가 없었다면 결코 성공하지 못했을 것이다.
덧붙이는 글 독립언론 '아이엠피터뉴스'에도 게재됐습니다.
백종원 예산시장 젠트리피케이션 임대료 골목상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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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 언론 '아이엠피터뉴스'를 운영한다. 제주에 거주하며 육지를 오가며 취재를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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