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09.28 19:27최종 업데이트 23.09.28 19: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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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택가족들과 함께 만두를 빚는 모습 ⓒ 김소라

 
올해 추석이 무슨 요일이더라. 포털 검색창에 검색을 해본다. 기다렸다는 듯이 추석 관련 콘텐츠가 화면을 채운다. 선물 광고가 가장 먼저 보인다. 이어서 부모님과 조카 용돈으로 얼마가 적당한지 묻는 고민 글이 있다. (부모님 용돈이) 20만 원에서 30만 원 사이라는 답변에서 공통적으로 발견되는 말은 이렇다. "대부분 이 정도 하더라고요."

남들과 비슷한 정도로, '적당히' 준비하는 것이 현명한 선택일 때가 많다. 추석에 가족과 친척을 찾아가기에 앞서 적당한 준비가 어느 정도일지 정성껏 알아보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을 새삼 확인했다. 그러한 사람들에게 연휴가 끝난 후 "명절 잘 지내셨어요?"라고 물었을 때 "적당했어요"라는 대답을 들을 수 있기를 바란다.


나의 경우 적당하지 않은 사람들과 만족스럽고 적당한 추석을 지낸다. 적당하지 않은 사람들이라 함은, '대부분 하는 그 정도'를 수행하기를 멈춘 사람들이다. 명절에 가족을 만나지 않는 사람, 가족을 만날 수 없는 사람, '본가'에 가지 않게 된 사람들이 삼삼오오 모인다. 이유는 굳이 묻지 않아도 된다. 이제는 우리가 가족이니까.

"추석에 집에서 만두 빚을 건데 올래?" 지난해에는 내가 물어보았는데, 올해는 연락을 받았다. 이맘때에 시간 여유가 조금 더 있는 사람이 먼저 소집을 하는 식이다. "혼자 있지 않을까 해서 연락했지. 우리 집으로 와."

이런 친구들을 서로 '명절 메이트'라고 부르게 되는데, 이보다 더 적절한 이름이 있을까 싶다. 여행 패턴이 잘 맞는 사람을 여행 메이트라고 부르고, 쇼핑 코드가 잘 맞는 친구를 쇼핑 메이트라고 부른다. 명절 메이트는 연휴 동안 하루종일 삼시세끼를 같이 해먹고 함께 시간을 보내는 것이 불편하지 않은 사람, 명절에 같이 시간을 보내자고 편하게 물어볼 수 있는 사람일 테다. 나에게 가족은 다름 아닌 이 사람들이다.

네모난 상과 둥근 상

시장에서 두부, 당면, 부추, 버섯, 마늘을 사다가 만두 속을 만든다. 재미로 시작하지만 언제나 양 조절에 성공하지 못해서 이내 만두 산이 쌓인다. 욕심을 부리다 옆구리가 터진 만두, 무슨 모양을 의도한 것일지 의견이 분분한 만두, 제일 예쁜 만두는 잘 보이는 곳에 두려는 사람을 보면서 다들 웃음꽃이 번진다. 더도 말고 덜도 말고 한가위만 같아라 라는 조상들의 말이 썩 어울리는 장면이다. 

어릴 적 명절을 어떻게 지냈는지를 떠올려 본다. 아버지가 운전을 하는 차를 타고 아버지 쪽 할머니 할아버지 댁이 있는 안동에 내려갔다. 오랜 운전 끝에 아버지는 누워서 쉬고, 어머니는 도착하자마자 앞치마를 둘렀다. 그리고 이틀 내리 부엌에서 나오지 못했다. 명절이 끝나고 나면 어머니는 집에 돌아와 이틀을 앓아 누웠다. 음력 1월 3일이 생일인 어머니는 설날 내내 시댁에서 제사음식을 준비했던 탓에 누워서 생일을 맞이하곤 했다.

끼니마다 상다리가 휘어지게 밥상이 차려졌다. 여덟 명 정도가 앉을 수 있는 커다란 네모 상과, 다섯 명 정도가 꼭꼭 끼어 앉으면 꽉 차는 작은 둥근 상 이렇게 두 개의 상이 있었다. 네모 상에는 할아버지, 아버지, 오빠, 큰아버지, 할아버지, 사촌오빠가 앉았다. 둥근 상에는 할머니, 엄마, 나, 사촌 언니, 그리고 아기들 밥을 먹이는 막내 고모가 앉았다.

나에게 둥근 상에 앉아서 밥을 먹으라고 아무도 가르친 적이 없지만 언제나 거기에 앉았다. 둥근 상은 매번 부엌에 좀 더 가까이 있었는데, 밥그릇을 먼저 비운 남자들에게 숭늉을 가져다주는 것은 둥근 상에 앉은 여자들 몫이었다.

확신을 가져도 된다
 

선택가족과 함께 추석을 보내는 사람들이 보다 확신을 가지면 좋겠다. ⓒ 픽사베이

 
가부장적인 혈연들로부터 벗어나서 내 인생의 주도권을 쥐고 나를 구성하는 사람들을 직접 꾸려나간 지 햇수로 6년 차 정도가 되었다. 오랜만에 친척을 보고 왔다는 친구들을 만나면 어김없이 놀란다. 정말로? 아직도 "결혼은 언제 할 거니"라는 질문을 듣는단 말이야? 대학을 왜 안 가냐고, 머리를 기르라고, 살을 빼면 예쁘겠다는 말을 아직도 한단 말이야?

놀라는 나에게 추석에 무엇을 했냐는 질문이 돌아온다. 나의 선택가족들과 좋은 시간을 보내다 왔지만, "더 이상 본가의 가족들과 명절을 함께 보내지 않아요"라는 말을 할 때에 나도 모르게 멋쩍게 뒷머리를 긁게 된다. 도리를 다하지 않고 있다는 생각에 어딘가 찜찜하고 떳떳하지 못한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올해 추석도 선택을 했다. 내가 선택한 가족들과 자전거 여행을 할 예정이다. 적당한 명절이 무엇인지를 스스로에게 묻고, 나를 편안하게 쉬게 할 수 있는 곳을 찾은 결과이다. 내가 가족이라고 부르는 사람들을 먹이고 돌본다. 얻어먹고 돌봄 받는다. 선택가족과 함께 추석을 보내는 사람들이 보다 확신을 갖고 현재의 당신과 가족에게 최선을 다했으면 한다. 나에게 하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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