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베키오 다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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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배경으로 성장한 가문이 바로 '메디치 가문'입니다. 교황청의 전담 은행을 맡았던 메디치 가문의 은행은 빠르게 성장했죠. 메디치 가문은 금융업뿐 아니라 양모 생산을 비롯한 제조업에도 적극적으로 관여했습니다.
매디치 가문은 15세기 피렌체의 사실상 지도자로 성장합니다. 이후 메디치 가문은 세 명의 교황을 배출할 정도로 번영했죠.
메디치 가문은 그렇게 축적한 부를 이용해, 적극적으로 예술가를 후원했습니다. 피렌체 두오모를 설계한 필리포 부르넬리스키 역시 메디치 가문의 후원을 받았죠.
그뿐 아닙니다. 수많은 이탈리아 르네상스기의 거장 예술가들이 피렌체에서 탄생했죠. 레오나르도 다 빈치와 미켈란젤로가 대표적입니다. 이외에도 조토, 마사초, 도나텔로, 보티첼리 등의 예술가가 피렌체에서 태어나 활동했습니다. 피렌체는 꼭 메디치 가문의 후원을 받지 않더라도, 여러 예술가와 교류할 수 있는 이탈리아 예술의 허브로 성장했습니다.
꼭 미술 분야만이 아닙니다. <신곡>의 저자 단테 알리기에리도 피렌체에서 태어났습니다. 특히 단테는 지식인의 언어였던 라틴어가 아니라, 서민들의 구어에 가까웠던 이탈리아어로 글을 썼습니다.
단테의 작품이 출판되고 유통되면서 각 지방에서 사용되던 방언이 하나의 '이탈리아어'로 수렴되기 시작했다고도 하죠. 지금까지도 이탈리아 표준어는 피렌체가 속한 토스카나 지방의 방언을 근간으로 합니다. 단테가 '이탈리아어의 아버지'라 불리는 이유입니다.
이후 르네상스 문화가 확산된 프랑스나 영국, 독일 등지에서도 라틴어가 아닌 모국어로 문학을 쓰는 추세가 만들어집니다. 단테와 피렌체는 그 출발이라고 할 수 있겠죠.

▲ 피렌체의 단테 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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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에 와서 피렌체는 그리 큰 도시는 아닙니다. 도시의 인구가 30만 정도에 불과한 곳이죠.
16세기에 접어들며 피렌체도, 메디치 가문도 점차 쇠락하기 시작합니다. 메디치 가문은 15세기 말 한 차례 피렌체 정치에서 축출되기도 했죠. 메디치 가문은 다시 돌아왔지만, 피렌체의 황금기는 이미 지나고 있었습니다.
16세기 유럽 대륙의 주도권은 알프스 이북으로 완전히 넘어갔습니다. 특히 카를 5세 시기 신성로마제국은 전성기를 구가했죠. 카를 5세는 이탈리아 반도를 침공해 한때 로마까지 정복했습니다.
이후 메디치 가문의 역할도 제한될 수밖에 없었습니다. 피렌체의 산업도 쇠퇴하기 시작했죠. 결국 메디치 가문은 1737년, 잔 카스토네 데 메디치가 사망하면서 단절되었습니다. 메디치 가문이 가지고 있던 토스카나 대공의 자리는 신성로마제국의 황제, 프란츠 1세가 가져가게 됩니다.
그렇게 독립된 피렌체의 역사도, 메디치 가문의 역사도 끝을 맺었습니다. 이후 피렌체는 이탈리아 독립 전쟁과 함께 이탈리아의 땅이 되었죠. 한때 이탈리아 왕국의 수도이기도 했지만, 이것은 이탈리아 왕국이 로마를 차지하기 전, 로마로 향하는 전진 기지 역할을 수행한 것에 가깝습니다.

▲ 우피치 미술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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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여전히 이 작은 도시를 보기 위해, 수많은 사람들이 몰려들고 있습니다. 피렌체의 두오모는 여전히 도시의 상징이 되어 광장 중심에 서 있죠.
메디치 가문의 유산을 상속받은 안나 마리아 루시아 데 메디치는 1743년 사망했습니다. 그는 메디치 가문이 가지고 있던 예술품을 모두 피렌체 시에 기증하면서, 단 한 가지 조건을 걸었습니다. 이 예술품이 피렌체 밖으로 나가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그가 기증한 작품들은 지금까지도 피렌체 우피치 미술관에 남아 있죠.
메디치 가문은 단절되고 피렌체의 번영은 끝이 났습니다. 그러나 그 시절이 남긴 예술의 흔적은 50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이 도시에 남았습니다.
"인생은 짧고 예술은 길다"고 하죠. 피렌체에서도 마찬가지였습니다. 피렌체의 메디치 가문은 이제 단절되고 없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후원으로 만들어진 피렌체의 두오모는 지금의 여행자에게도 똑같은 경외감을 선사하고 있습니다.
정치보다 긴, 인생보다 긴 예술이라는 것은 그런 것이겠죠. 피렌체의 두오모가 보여주는 것은, 단지 화려했던 과거의 빛바랜 흔적만은 아닐 것입니다. 역사를 타고 남아 여전히 같은 감동을 주는, 정치보다 긴 예술을 두오모의 돔은 상징하고 있는지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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