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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아는 '역사 재현'? 처절하게 일침 날린 '서울의 봄'

[미리보는 영화] <서울의 봄>

23.11.10 10:57최종업데이트23.11.10 1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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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서울의 봄>의 한 장면. ⓒ 플러스엠 엔터테인먼트

 
영화 상영 직후 기자간담회 무대에 오른 배우들이 한동안 말을 잇지 못했다. 그것도 말솜씨나 재치 면에서도 인정받는 황정민, 정우성 등 주연 배우들이 말이다. 서울 메가박스 코엑스에서 9일 오후 언론 및 영화 관계자들에게 처음 공개된 영화를 본 뒤 그 감흥에 꽤 젖어있어 보였다.
 
알려진 대로 영화 <서울의 봄>은 1979년 일어난 12.12 군사 반란을 소재로 했다. 전두환을 비롯, 당시 신군부 세력과 거기에 협조한 주요 인사들이 최근까지도 재판을 받아왔고 법의 심판을 일부 받았지만, 그 과정이 참 지난했다. 심지어 심판대 앞에 선 범법자들은 '성공한 쿠데타는 처벌받을 수 없다'는 이유로 자신들의 잘못을 인정하지 않았고, 그 여파는 여전히 이어지고 있다.
 
영화팬들에게 <비트> <태양은 없다> <아수라> 등으로 잘 알려진 김성수 감독은 이번 영화를 두고 '오랜 숙제를 푼 기분'이라 표현했다. 그도 그럴 것이 80학번으로 민주화 운동 한복판을 관통해 온 그의 삶의 궤적에서 12.12는 오랫동안 풀리지 않는 의문투성이였을 것이기 때문이다.
 
영화만 놓고 보면 <서울의 봄>은 특별한 액션이나 화려한 촬영 기법 보단 정공법으로 승부한 결과물이다. 전두광(황정민)을 중심으로 한 반란 무리들이 이합집산하는 과정과 몇 차례 유혹에 흔들리지 않고 군인으로서 쿠데타를 막으려 했던 이태신 소장(정우성) 및 수경사 병력들을 대비시키며 시간 순서대로 사건을 전개한다.
  

영화 <서울의 봄>의 한 장면. ⓒ 플러스엠 엔터테인먼트

 

영화 <서울의 봄>의 한 장면. ⓒ 플러스엠 엔터테인먼트


수도 서울이 배경이었고, 한 사람이라도 포섭하는 게 중요했던 12.12는 무력전보다는 정보전이었다. 영화에서 또한 육군 내부를 잠식한 사조직 하나회의 포섭 과정과 그 작동 생리를 가감 없이 보여준다. 나라를 위해 개인의 영달을 제쳐두고 본분을 다하느냐, 아니면 개인 영달과 호의호식을 위해 국민의 열망과 민주주의에 반하는 선택을 하느냐의 갈림길에서 저마다 선택하는 군인들을 순차적으로 제시한다.
 
단순히 그 과정을 떠올려보면 이게 어떻게 영화가 될까 의문이 들 수도 있지만 <서울의 봄>은 각 인물들의 복잡미묘한 감정을 화면에 세공해 놓으며 묘한 긴장감을 만들어 낸다. 실제 역사가 내포한 비극성을 애써 떠올리지 않더라도, 이태신과 소수의 군인들이 분투하는 과정이 애달프게 다가오며, 전두광과 노태건(박해준) 등 하나회 무리들의 움직임은 분노를 자아낸다.
 
역사 자료나 당시 기사, 관련 논문을 거의 빠짐 없이 봤다가도 실제로 영화 시나리오를 각색하고 기획하기 시작했을 때부턴 철저히 멀어지려 했다는 김성수 감독의 선택은 맞았다. 여러 실화 기반 영화들 상당수가 다소 아쉬운 완성도를 현실적 비극 상황에 기대 정서적 보완을 모색한 것과 달리 <서울의 봄>은 우선 영화 그 자체로도 높은 완성도를 보인다.
 
그래서 감독이 내심 전하고자 했던, 혹은 관객들과 함께 나누고자 한 고민의 흔적이 분명하게 보인다. 승리의 역사로 스스로 규정하며 현재까지도 정계, 군대 내부 깊숙이 자리한 채 권력을 누리고 있는 사람들을 기억하라는 암묵적인 메시지가 영화 후반부 엔딩크래딧이 올라갈 때야 비로소 드러나는데 꽤 묵직하게 다가온다.
 
배우들, 특히 황정민이 연기한 전두광은 혹시라도 어떤 연민을 받을 여지가 거의 없을 정도로 교활함과 탐욕스러움을 내포하고 있다. 이를 연기로 구현한 배우 입장에선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었을 것이다. 캐릭터적으론 생동감 넘치고 현실감까지 담보하면서 관객에겐 어떤 정서적 이해를 받지 않게끔 배우가 철저하게 주변 요소들을 챙긴 결과물로 보인다. 몇몇 영화들 속 악역이 배우의 뛰어난 연기로 이따금 영화 자체가 품고 있는 주제 의식을 뛰어넘어 관객에게마저 정서적 동질감을 주는 경우가 있어, 그 영화의 존재 의의를 헤치곤 했는데 <서울의 봄> 속 전두광은 무서울 정도로 영화 내부에 머물고 있다.
 
감히 말하자면, 김성수 감독이 전작에서 보인 미덕들이 <서울의 봄>에 총망라되어 있다. 그간의 한국영화들이 핍진성이 떨어지고, 관성에 젖은 듯한 기획력으로 관객들의 마음을 사지 못해왔다면, 이 작품만큼은 그런 아쉬움을 상쇄하고도 남을 것이다. 올해의 한국영화로 충분히 꼽을 수 있다.
 
한편으로 이 영화를 보고 현실을 떠올리면 여전히 답답하고 분노할 수밖에 없다. "12·12하고 박정희 대통령 돌아가시는 그 공백기에, 뭐 서울의 봄 일어나고, 그래서 저는 그때 당시 나라 구해야 되겠다고 나왔다고 봐요"라고 발언한 자가 2023년 대한민국의 안전과 안보를 책임지는 국방부 장관을 하고 있다. 우린 이를 어떻게 바라봐야 할 것인가. 김성수 감독은 오랜 숙제를 공들여 풀어냈다. 관객, 시민들이 화답할 차례다.
 
한줄평: 올해의 한국영화, 시의성 면에서도 단연코 지금 봐야 한다.
평잠: ★★★★☆(4.5/5)

 
영화 <서울의 봄> 관련 정보
영제: 12.12: THE DAY
감독: 김성수
출연: 황정민, 정우성, 이성민, 박해준, 김성균 외
제공 및 배급: 플러스엠 엔터테인먼트
제작: ㈜하이브미디어코프
러닝타임: 141분
관람등급: 12세 이상 관람가
개봉: 2023년 11월 22일
서울의봄 정우성 황정민 전두환 신원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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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메가3같은 글을 쓰고 싶다. 될까? 결국 세상을 바꾸는 건 보통의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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