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11.25 10:40최종 업데이트 23.11.25 10: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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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중 아디다스 전국점주협의회장이 16일 국회에서 열린 정무위원회 국정감사에서 발언하고 있다. 맨 오른쪽은 피터 곽 아디다스코리아 대표이사. ⓒ 연합뉴스

 
"우리는 사라져도 이 단체는 절대 없어지지 않을 겁니다."

얼마 전 프랜차이즈 점주 단체인 전국가맹점주협의회에서 활동하는 김아무개 사장은 분노와 자조 섞인 푸념을 했다. 공감 가는 말이었다. 올해 점주들의 피해 호소가 많아졌음을 실감한다. 


2016년, 필자는 갑질 분쟁 피해 당사자로 당시 정재찬 공정거래위원회 위원장 간담회에 참석했다. 이미 이때 프랜차이즈 본사의 과도한 갑질이 사회적 문제로 대두되었다.

당시 참석한 다수의 피해 점주들은 공정위에 대한 비판과 간청을 겸하며 어렵게 만들어진 위원장과의 대화에서 공정위의 관심을 끌기 위해 애썼다. 그러나 당시 위원장의 태도는 실망스러웠다. 그는 가맹사업 시장 규모에 비해 공정위 담당 직원이 턱없이 부족하다는 변명으로 일관했다. 더욱이 점주 단체에 협상권을 부여하면 공정위가 다룰 분쟁이 확실히 줄지 않겠냐는 필자의 주장도 단호히 일축했다. 우리는 노동자가 아닌 상인이라 그럴 권리가 없다는 거였다.

그 뒤로 피해 프랜차이즈 점주들을 보호할 수 있는 '제도'는 조금씩 개선되어 왔다. 그런데 정작 '분쟁 상황'은 나아질 기미가 없었다. 아니 오히려 더 악화되는 분위기다. 올해 벌어진 몇 가지 갑질 사례만으로도 이를 알 수 있다.

쿠쿠전자와 아디다스... 국가는 뭐하고 있습니까

최근 다수 언론을 통해 기사화된 '쎈수학'(좋은책신사고), '쿠쿠전자', '아디다스'의 경우는 자사에 종속된 자영업자들을 집단으로 계약 해지하여 점주와 그 가족들을 생계절벽으로 몰아넣은 갑질 사건이다.

또한 올해 국회 정무위원회 국감에서 질타를 받은 일명 '떡참'(기영F&B)이라는 브랜드는 가맹비·로열티·인테리어 감리비·교육비 등 없이(일명 6무) 점포를 개설할 수 있다며 가맹점주를 모은 후, 과도한 수익 수탈로 점주들이 연쇄 폐점을 선언하자 점주들에 위약금을 부과하면서 비판을 받았다. 문제는 이 사례가 수많은 갑질 사례 중 지극히 일부라는 것이다.
 

더불어민주당 윤영덕 의원이 지난 10월 16일 국회에서 열린 정무위원회 국정감사에서 질의를 하고 있다. 윤 의원은 쿠쿠전자의 대리점 공급가와 인터넷 판매가를 비교하며 구본학 쿠쿠전자 대표이사를 질타했다. ⓒ 연합뉴스

  
며칠 전, 대형 할인점의 할인품을 보던 나는 문득 아내에게 쿠쿠전자 밥솥을 인터넷에서 소비자가 19만 원에 구매할 수 있는 데 같은 밥솥을 본사가 대리점에는 25만 원에 납품(대리점 공급가)한다는 사실을 전하며 의견을 물었다. 아내의 대답은 이러했다.

"그건 장사하지 말라는 거 아냐? 뭣 모르고 거기서(대리점에서) 샀던 사람들이 인터넷 가격이 훨씬 싼 걸 알면 가만히 있을까? 요즘 사람들 가격 비교에 얼마나 민감한데…. 그 대리점이 바가지 씌웠다고 소문낼걸? 그럼 바로 망하는 거지."

이런 걸 우리는 통상 '비상식'이라고 한다. 시장 반응에 누구보다 민감한 기업이 도대체 어떤 의도로 이런 정책을 펼쳤는지 의문스럽다. 더 기가 막힌 건 국감에 나온 쿠쿠전자 대표의 말이었다. "서비스센터(대리점)는 판매가 주목적이 아니며, 판매는 '소득 보전' 차원에서 팔 수 있도록 해드린 것"이라며 "공정거래법상 온라인 재판매 가격은 우리가 통제할 수 없다"라고 했다. '대리점 공급가'보다도 싸게 파는 온라인 유통 사업자들은 사실상 원가 이하로 손해를 보고 팔고 있다는 주장일까?

더욱이 대표는 "(그럼에도) 잘 파는 센터도 있다"라고 했다. 그렇다면 쿠쿠 본사는 소비자를 고객이 아닌 '호갱'으로 본 것일까?

국정감사는 물론 심층 탐사 프로그램인 KBS2 <추적 60분>에서도 다룬 아디다스 갑질 사건은 재고 밀어내기, 과도한 실적 강요, 차별 납품, 온라인 판매 독점 등 종속적 자영업자를 대상으로 하는 기업의 갑질이 얼마나 가혹할 수 있는지 보여준 사례다. 현재 피해 점주 상당수가 계약 갱신 거절로 파산 지경에 몰린 이 사건에 대해, 법 전문가, 기자, 심지어 국회의원까지 아디다스라는 글로벌 브랜드가 이런 갑질을 저질렀다는 사실을 쉽게 받아들이지 못했다. 

그런데 필자는 당연한 결과로 여겼다. 사견이지만 기업은 국가에 의한 통제가 없으면 '도덕적 해이'에 빠진다. 기업은 돈벌이라는 욕망을 가진 사람들의 집단이기 때문이다. 'Impossible is Nothing'과 같은 그럴듯한 기업 모토는 그저 광고문구일 뿐이다. (아니면 중의적일까?) 그래서 회사 구성원 개인이 가진 얄팍한 도덕은 집단 욕망 속에서 무척이나 보잘것없어진다. 결국 지금의 기업 갑질은 이 나라 감독 기관의 방관적 태도가 한몫한 것으로 보인다.

이 주장에 합당한 근거를 대라 하면 아디다스와 나이키 같은 글로벌 스포츠용품 기업과 대형 패션 브랜드 기업들의 노동 착취 논란을 들 수 있다. 자사의 상품을 생산하는 일부 국가에서 저임금 노동 착취, 특히 아동 노동을 착취했음이 드러나며 비난을 받았다. 여기서 주목할 것은 해당 사건이 일어난 그 국가들은 법 제도가 잘 정비된 독일, 미국 등 선진국이 아닌 인도네시아, 미얀마, 인도, 베트남 등 저개발도상국이었다는 사실이다.
  

풋워크 풋워크는 글로벌 스포츠 용품과 패션 브랜드의 탐욕을 파해쳤다. ⓒ 소소의

 
이는 '탠시 E 호스킨스'가 펴낸 <풋 워크>라는 책에 아주 적나라하게 나와 있다. 이를 통해 우리나라에서 벌어진 아디다스 가맹점 갑질 사건을 비추어 보면 아래와 같은 해석이 가능하다.

'대한민국 경제 규모는 선진국일 수 있으나, 경제 사회의 질서를 떠받치는 행정·사법 기관과 이런 법 제도를 개선·보완하는 입법부의 의식 수준은 아직도 저개발도상국에 머물러 있다.'

지금 '폭발적'이란 단어가 과하지 않을 정도로 늘어나는 종속적 사업자들에 대한 기업 갑질에는 이렇듯 국가의 책임이 상당하다고 본다.

억울함 호소하는 가맹점주들... '파멸의 경고등 켜졌다'
 

지난 10월 5일 서울 코엑스에서 열린 IFS 프랜차이즈 창업박람회에서 관람객들이 부스를 둘러보고 있다. ⓒ 연합뉴스

 
"이 업계에서는, 지사장이 피땀으로 사업을 일궈놓으면 본사가 강압적 방법으로 사업을 빼앗아 가는 일이 빈번합니다. 위정자들은 경제민주화와 공정사회를 멀리서 구현할 게 아니라 우리 같은 자영업자들의 현실적인 권리부터 찾아주는 데서 시작해야 하지 않을까요?" - ** 영어학원 지사 이세종 사장

"어느 날, 본사가 별 이유 없이 자동차 판매 대리점 재계약을 거절하더라고요. 그냥 기간이 끝났다는 거죠. 너무 화가 났어요. 돈도 돈이지만 그동안의 내 노력과 시간이 부정된 거잖아요. 공정위는 못 한다고 해서, 질 것 알면서도 민사 소송으로 대법까지 갔어요. 그냥 무기력하게 당하기는 싫어서요. 이후 나와 같은 처지의 소상공인들을 모아서 단체를 만들었습니다." - ** 자동차 보증수리 센터 이계훈 사장

"분명 본사 직원이 각 대리점을 방문하며 점주들에게 협의회 탈퇴를 종용했어요. 그런데 국감에서 본사 대표가 그런 적 없다고 하더군요. 회사의 성장에 일조한 사람들을 '계약서에 따라 기간이 만료되어 계약을 해지한다'라는 한 줄로 생계의 절벽으로 몰아넣었음에도 본사의 행위에 '부당한 의도가 있거나 지위를 남용했다고 보기 어렵다'라는 사법부의 판단에 섭섭하고 화가 납니다." - 전 쿠쿠전자 도봉점 사장 이윤호씨


필자의 나이가 오십 대 후반을 달려가고 있다. 이 나이를 관통하며 나와 내 가족 그리고 주변 사람 중 일부가 자신이 평생 일군 소중한 '부'를 한순간에 잃어버리고 분노만 남은 황혼기를 힘들게 버티는 모습을 적잖게 보아 왔다. 그때마다 난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이들의 돈 그리고 내 돈은 누가 가져갔을까?

사람들이 재산을 날리는 원인은 연대보증, 사업 실패 혹은 사기와 같은 범죄 피해 등 다양할 것이다. 그런데 최근 우리 사회에 빈번하게 보이는 현상 중 하나는 앞서 서술한 바와 같이 합법이란 포장 속에서 벌이는 자본가들의 은밀한(때로는 보란 듯이) 상대적 약자에 대한 착취였다. 그렇게 산산조각이 난 '을'의 재산 중 일부는 금융권으로 그리고 일부는 본사라 불리는 자본가에게 흘러가 그들의 부를 키우는 거름이 되었다. 그리고 '을'은 빈곤층으로 추락했다.

"기업가는 이기적이니까 그렇다고 해도 우리를 보호해야 할 공정위의 태도는 정말 실망스러웠습니다. 최초 이번 분쟁을 가맹사업 분쟁으로 신고했는데 공정위가 우리는 가맹사업이 아니라고 하더군요(가맹사업법은 다른 법보다 점주에 대한 보호가 더 강하다). 그래서 이유가 뭐냐고 하니까 가맹사업으로 분류되려면 세 가지 조건을 만족해야 하는 데 그중 '본사의 통제' 부분이 약하다는 거예요. 그런데 이번 추적60분에도 나왔지만, 본사 통제가 엄격하기로 소문난 편의점보다 아디다스 가맹점 통제가 더 엄격해요." - 전 아디다스 점주 홍영철씨

몇 년 전 보았던 <언힌지드>라는 영화의 도입부에는 미국에서 심화하고 있는 부의 양극화로 인한 중산층의 몰락과 빈곤층 양산, 그로 인해 소외된 사람들 사이에 만연된 스트레스와 분노를 각종 통계 숫자가 인용된 기사와 사건, 사고 뉴스 영상으로 보여준다. 도입부 말미, 영화 속 뉴스앵커는 대단히 자극적인 멘트로 이 영화의 시작을 알렸다.

"우리 사회에 파멸의 경고등이 켜졌다."

프랜차이즈 가맹점, 대리점, 위탁사업, 지사 사업 등 기업에 종속된 사업자들, 즉 노동자보다 불안한 지위에서 고통받는 새로운 '을'들의 분노는 어쩌면 영화 <언힌지드>의 묘사처럼 우리 사회의 분열과 쇠락을 알리는 경고등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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