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많은 것이 고통스러웠지만 가장 힘겨웠던 일은 아무도 나를 미워하지도 무시하지도 않는다는 사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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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말을 집에서 보내고 학교로 돌아올 때는 산 중턱 학교까지 이어지는 언덕을 반드시 올라야 했다. 물론 피곤한 월요일 아침에 그 높은 언덕을 걸어 올라갈 사람은 없었고, 다들 택시를 타거나 부모님 차를 탔다. 어머니 역시 태워주지 못해 미안하니 택시를 타라며 매주 5만 원을 내 손에 쥐어 주셨다. 기숙사에서 친구들 야식 시킬 때 괜히 빠지지 말고 남은 돈 전부 써도 된다는 말과 함께.
사실 일주일 용돈으로 5만 원을 받는 것은 처음이었지만 그 큰돈으로도 택시비와 야식비를 모두 충당할 수 없었다. 결국 야식을 거절하거나 택시를 거절해야 했고 나는 택시를 거절했다. 그렇게 버스를 타고 언덕 입구에서 내릴 때마다 나는 늘 생각했다.
'제발 나한테 말 걸지 마라. 제발 타라고 말하지 마라.'
내 기대가 이루어진 적은 거의 없다. 매번 누군가는 차를 멈춰 세웠고 언덕이니 얼른 타라고 했다. 차에 타면 '부모님이 바쁘신가 보다'라는 말에 뭐라고 대답해야 할지 생각하는 것도 싫었고, 어머니가 시장에서 사준 화려한 미키마우스 캐리어를 친구 캐리어와 함께 싣고 내리는 과정도 힘겨웠다.
집에서는 자랑스러운 아들이 되었고, 학교에서는 몇 년 만에 특목고를 진학한 자랑스러운 졸업생이 되었고, 내 이름이 적힌 학원 홍보 자료는 한동안 동네에 나뒹굴었다. 가끔 만난 중학교 친구들은 이제 재식이는 급이 다르다며 칭찬인지 거리두기인지 모를 말을 했다. 심지어 아버지는 이왕 갔으니 교사가 아니라 교육행정가 정도를 꿈으로 가지면 어떠냐는 말도 했다.
친구들과 아무렇지 않게 어울려 PC방과 학원을 오가며, 가끔은 롯△△아에 모여 노는 그런 생활. 그러다 자연스럽게 사범대에 가는 그런 내 세상. 이제 그런 세상은 없었다. 그 대신 자랑스러운 아들. 가까이하기엔 급이 달라진 친구. 열등감에 찌들어 입을 닫은 아이가 남았다.
수업 시간 내내 창밖만 바라보는 학생. 나는 내 세상을 잃은 채 그 이질적인 단어들 사이 어딘가를 부유했다. 이제 학교에서 내가 사범대에 갈 수 있다고, 선생님이 될 수 있다고 말해주는 사람은 없었다.
많은 것이 고통스러웠지만 가장 힘겨웠던 일은 아무도 나를 미워하지도 무시하지도 않는다는 사실이었다. 학교에 있는 어떤 사람도 내가 돈이 없다고 놀린 적 없고, 캐리어가 이상하다고 놀린 적 없고, 영어를 못한다고 놀린 적 없었다.
나만 당당하면 되는데 그게 안 되는 현실이 싫었다. 공부도 창밖 그만 쳐다보고 뭐라도 하면 될 것 같은데 그게 안 됐다. 야자시간 내내 전자사전과 씨름하며 해석해둔 토플 지문 하나가 수업 십 분 만에 스치듯 지나갈 때, 내가 너무 한심하고 너무 어이없어서 다시 멍하니 창밖을 쳐다봤다.
아무도 나를 미워하지 않아서 내가 나를 미워했다. 학교생활 어떠냐는 질문에 잘하고 있다며 거짓말 하는 내가 싫었고, 멍하니 우리 집 형편만 생각하다 부모님을 원망하고 싶어지는 스스로가 혐오스러웠다.
그냥 내가 문제였다. 이 세상에 나 빼고는 불편한 사람이 아무도 없는 듯했다. 나는 그렇게 있는 힘껏 나를 미워하며 고등학교 시절 내내 입을 닫고 귀를 닫고 마음을 닫았다.
네 잘못이 아니야
오랜 시간 고등학교 시절의 나에 대해 말하기를 주저하며 살았다. 이야기하면 별것도 아닌 마음을 커다란 약점처럼 가지고 살아가는 모자란 사람이 될까 두려웠는지도 모르겠다.
결국 원하던 교사가 되었으니 이젠 다 괜찮다고 생각하는지도 모르겠다. 다만 고등학교에서 가끔 그 시절 나와 무섭도록 닮은 아이를 만날 때면 자꾸 물어보게 된다. 요즘 어떤 생각을 하느냐고. 지금의 네 상황과 감정만으로 너를 함부로 평가하지 않을 테니 할 수 있는 만큼만 이야기해줄 수 있냐고.
조금 더 일찍 이야기해보면 좋지 않을까. 이야기해보면 열등감이 꼭 내 부족에서 비롯된 것이 아닐 수도 있음을 느끼지 않을까 싶어서. 누구의 잘못도 아닌 잘못된 세상 때문에 열등감이 싹틀 수도 있다는 사실을 더 일찍 느끼지 않을까 싶어서. 내 물음조차 또 다른 불편함이 되지 않을까 걱정하면서도 자꾸만 묻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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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해한 사랑을, 그런 사랑을 가꾸고 지키는 존재를 찾아다닙니다. 저를 통과한 존재가 사랑하는 것을 사랑할 수 있게 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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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안 형편에 부모님 원망... 이런 내가 싫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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