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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왜 전두광을 전두환이라 부르지 못하나

[김성호의 씨네만세 598] <서울의 봄>

23.12.03 11:43최종업데이트23.12.03 11: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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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의 봄 포스터 ⓒ 플러스엠 엔터테인먼트

 
한국 현대사를 10년쯤 뒤처지게 만든 비극이 있다. 민주화라는 국민적 바람을 군홧발로 짓밟고서 광주의 아까운 생명을 총칼로 찢어발긴 신군부의 등장이다. 우리는 이를 12.12 군사반란이라 말한다.
 
때는 바야흐로 1979년, 1970년대 유신체제가 종말을 고하고 '서울의 봄'이라 불린 민주화의 바람이 일었다. 오랜 독재가 막을 내리며 바야흐로 새 세상이 열리는가 기대가 피어났다. 언로를 막고 민의를 탄압하며 지역갈등을 조장하고 노동자를 착취해온 길고 긴 군부독재가 마침내 끝나는가 싶었다.
 
그러나 결과는 모두가 아는 대로다. 전과 크게 다르지 않은, 혹은 그보다 천박하고 악랄한 이가 집권하여 군대가 시민을 향해 총구를 겨누고 수많은 사람들이 죽어나가기까지 하였던 것이다. 서울에 불었던 훈풍은 그렇게 무참히 멈추었다.
 
한국 현대사의 비극, 12.12 군사반란
 

▲ 서울의 봄 스틸컷 ⓒ 플러스엠 엔터테인먼트

 
세간을 뜨겁게 달구고 있는 <서울의 봄>은 그 비극의 서막을 썼다. 12.12 군사반란 당일, 전두환을 위시한 하나회 군인들과 이들의 반란을 저지하려는 군인들의 이야기를 그린다. 영화의 시작과 함께 실제 사건으로부터 '모티프'를 얻었다고 밝히고, 전두환은 전두광으로 노태우는 노태건으로 바꾸었으나 영화를 보는 누구도 이것이 그저 꾸며낸 이야기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영화는 실화다. 1979년 독재자 박정희의 암살과 함께 선포된 계엄은 정보와 수사권을 틀어쥔 국군보안사령관 전두환에게 막대한 권력을 안겼다. 계엄 뒤 합동수사본부장이란 중책을 맡은 그는 정권 붕괴로 무력화된 중앙정보부는 물론이고, 검찰과 경찰까지 손아귀에 틀어쥐었다. 이를 통해 얻은 정보력을 바탕으로 그는 군을 넘어 현실 정치에까지 막강한 실력을 행사하게 된다. 대통령의 암살로부터 혼란에 빠질 수 있는 상황을 통제하라고 쥐어준 권한을 사적으로 활용한 것이다.
 
더욱 큰 문제는 전두환이 하나회의 수장이었다는 점이다. 육군사관학교 11기를 주력으로 한 군 내 사조직 하나회는 서로를 밀어주고 끌어주며 군 요직에 제 사람들을 앉히는 방식으로 그 세를 키워왔다. 어느덧 군 전반에 힘이 뻗치지 않은 곳이 없는 상황이 됐고 전두환이란 실권자를 둘러싸고서 막강한 힘을 과시했다. 1979년 전두환은 그저 한 명의 군인이 아니었다.

영화는 실세로 등극한 합동수사본부장 전두광(황정민 분)이 그를 견제하는 계엄사령관 정상호 육군참모총장(이성민 분)을 납치하고 군 실권을 장악하기까지의 이야기다. 혐의는 대통령을 쏘아 죽인 김동규에 동조했다는 것이지만 당연히 이렇다 할 증거는 없었다. 참모총장이 다음 인사에서 그를 외곽 사단으로 좌천시키려 한다는 소식을 들은 뒤였다. 참모총장이 선을 넘어 정치에 개입하는 전두광을 탐탁찮게 생각한다는 사실은 군 안에 소문이 파다할 정도였다.
 
전두환은 어떻게 나라를 삼켰는가
 

▲ 서울의 봄 스틸컷 ⓒ 플러스엠 엔터테인먼트

 
그냥 엎드려 당할 전두광이 아니다. 그는 친구인 노태건을 비롯해 하나회 소속 군인들을 모아 제 계획을 전한다. 정상호를 납치해 김동규와의 연루 혐의를 뒤집어 씌울 수만 있다면 군에서 하나회에 저항할 이는 남지 않게 되는 것이다. 문제라면 대통령의 재가 없이 독자적으로 움직일 경우 하극상을 넘어 반란이 된다는 것, 꺼려하는 이들을 한편으론 다독이고 한편으론 윽박질러가면서 전두광은 반란을 모의한다.
 
사전에 반란모의를 알지 못했으나 정상호에게도 수는 있었다. 하나회와 척을 지고 있는 강직한 군인들을 필요한 자리에 배치했던 것이다. 서울을 방위하는 수도경비사령관에 이태신(정우성 분)을 임명한 것도 그중 하나다. 12.12 군사반란에 맞선 장태완 사령관을 모델로 한 인물로, 영화 속 반란군을 저지하기 위해 그야말로 동분서주한다.

영화는 역사 속 사실을 거의 그대로 따라 밟는다. 반란을 모의한 전두광이 연회를 빙자하여 참모총장 계열로 분류되는 수도방위 요직 장성들을 요정으로 유인해 붙들어 놓는 것부터, 정상호를 납치한 뒤 최한규 대통령(정동환 분)에게 재가를 받으려 시도하지만 실패하는 것, 반란사실이 알려지고 육군본부 수뇌들이 B2벙커에 모여 진압군을 결성한 것, 진압군이 반란군의 계략에 그대로 속아 대세가 기울고 홀로 남은 이태신이 끝까지 저항하려 드는 것 등이 모두 그렇다.

이태신이 단신으로 행주대교를 건너오는 반란군 측 2공수여단을 가로막는 장면처럼 일부 극화된 대목이 없지 않지만, 이야기의 중추는 어디까지나 고증된 사실 그대로를 따라간다. 12.12 군사반란과 관련해선 MBC가 1995년 제작한 <제4공화국>과 2005년의 <제5공화국>이 당시 상황을 충실히 그린 바 있고, <서울의 봄> 역시 큰 틀에서 그를 벗어나지 않는다. 위 드라마와 극명하게 다른 점이라면 거칠고 괄괄한 성격으로 알려진 장태완 수도경비사령관을 이미지가 겹치는 전두광 배역과 대비하고자 조용하고 묵묵한 성품의 이태신으로 빚은 정도랄까.
 
비겁과 무력은 나라를 좀먹는다
 
아무튼 영화는 군사반란 당시 진압군이 반란군에게 무참하게 패하는 과정을 긴장감 있게 재구성한다. 사전에 모의하여 일시에 참모총장을 납치한다는 이들의 계획은 그 시작부터 막아내기가 쉽지 않은 것이었다. 하나회가 수도권 인근에서 대규모 병력 동원이 가능한 군단이며 사단을 장악하고 있었고, 보안사를 통해 통신망을 감청하며, 청와대 경호실까지 마음대로 움직이는 판에 손쓸 도리가 없이 대통령과 육군참모총장이 감금되어 버렸다.
 
이태신 소장이 나서 어떻게든 일을 수습하고 반란을 진압하려 하지만 동원가능한 부대 대부분이 하나회에게 장악돼 있어 상황은 여의치가 않았다. 뿐인가. 대장이 하나회가 아니더라도 휘하 장교가 하나회인 경우가 적잖고, 진압에 대한 항명 또한 줄을 이어서 제대로 된 대응을 하지 못한다. 영화는 이태신이 전화로 실권을 가진 장군들을 설득하는 과정을 담아내지만, 이 모든 통화가 감청돼 반란군 측에게 사전에 차단되는 과정 또한 그려낸다.
 
<서울의 봄>을 보며 가장 안타까운 건 영화 속 '똥별'로 지칭되는 대다수 장성들의 무력함이다. 누구보다 군의 생리며 전략전술을 잘 이해하고 조국수호에 앞장서는 마음가짐을 가지고 있어야 할 이들이 아닌가. 그러나 막상 사태가 벌어지자 대부분은 우왕좌왕할 뿐, 무얼 어떻게 해야 할지 감을 잡지 못한다. B2 벙커에서 진압군을 결성하고도 적극적인 초기대응은커녕 상대에게 시간을 벌어주는 결정만을 반복한다.
 
오국상 국방부 장관(김의성 분)은 또 어떤가. 계엄사령관인 육군참모총장의 상관은 오로지 두 사람뿐, 하나가 대통령이고 다른 하나가 국방부 장관이 아닌가. 반란을 합법으로 만들겠다는 반란군의 계획은 전두광이 대통령의 재가를 받지 못하며 틀어지게 된다. 고집이 보통이 아니었던 최한규는 전두광의 말만으로는 재가해줄 수가 없다며 국방부 장관의 동의를 얻어오라 하는데 그가 어디 숨었는지 찾을 도리가 없는 것이다.
 
책임을 다하는 자의 외로움에 대하여
 

▲ 서울의 봄 스틸컷 ⓒ 플러스엠 엔터테인먼트

 
진압군 입장에선 계엄사령관은 사라지고 반란군보다 높은 지위의 직속상관이라 할 이가 아무도 남아 있지 않은 상황이었다. 대통령과 계엄사령관까지 감금된 상황에서 전 군을 합법적으로 동원할 수 있는 이는 직책상 국방부 장관이 유일한데, 그가 모습을 감추고 도망만 다니니 영화를 보는 관객들은 개탄할 밖에 없다. 장관도 장성들도 모두 제 역할을 내버린 채 반란군을 막지 않으니 이태신을 비롯한 몇몇의 저항은 마침내 패배로 귀결된다.
 
영화는 불행한 한국 현대사를 오늘의 시민 앞에 그대로 펼쳐 보인다. 독재의 끝에서 다시 새로운 독재가 열리는 이 비극의 원인이 무엇인지를 오늘의 관객들이 돌아보도록 한다. 제 자리를 지키며 원칙에 충실하려는 이태신과 같은 이는 영화 내내 외롭기만 하다. 전두광이 말하듯 콩고물이라도 떨어질까 하여 곁에 달라붙는 이들과 실세인 그가 두려워 함부로 나서지 못하고 제자리만 보전하려는 이들이 나라일의 중차대한 역할을 맡고도 책임을 방기한다.
 
그럼에 <서울의 봄>은 책임을 방기하는 공권력에 대한 일침으로 읽힌다. 나라가 준 힘을 제 잇속 챙기는 데 쓴 전두광과 하나회, 그를 막아내지 못하고 무력하게 무너진 비겁하고 무능한 군인들이 어떤 결과를 가져올 수 있는지를 일깨우는 것이다.
 
불행히도 영화는 아쉬움 또한 적잖다. 그중 무엇보다 큰 것은 전두환을 비롯해 12.12 군사반란의 죄인들이 대부분 사망한 시점에서도 실명 대신 가명을 쓰기로 한 선택이다. 일찌감치 법의 심판을 받고 복역했거나 도주했고, 대부분 사면되긴 했으나 사회적 심판만큼은 받은 사건이 아닌가. 그 당사자들마저도 세상을 떠난 마당에 전두환을 전두광이라, 노태우를 노태건이라, 노재현을 오국상이라 한 점은 실망스럽다. 장세동과 허삼수, 허화평 등 5공화국 핵심으로 민주화를 훼손한 이들 또한 모두 가명으로 처리되니 관객들에게도 알게 모르게 진실이라도 함부로 말해선 안 된다는 그릇된 인식을 심어주게 되는 것이다.
   
전두환을 전두환이라 하지 못하는 이유
 

▲ 서울의 봄 스틸컷 ⓒ 플러스엠 엔터테인먼트

 
이것이 과연 정상적인 일인가. 한국을 제외한 나라들, 이를테면 미국과 유럽 등에서 제작된 작품은 실존 인물이며 회사명을 그대로 드러낸다. 불과 10년 전만 해도 전술한 드라마 <제5공화국>이 전두환과 노태우 등 실존인물을 실명 그대로 등장시켜 화제를 모았다. 그러나 오늘날 한국영화에선 인명을 죄다 가명으로 바꾸는 것이 유행처럼 자리를 잡으니 이것이 문화의 퇴행이 아니고 무엇이란 말인가.
 
이것이 과연 자연스런 현상인가. 그럴 수밖에 없는 한국의 사정이 따로 있는 것일까. 문화 및 저작권 부문을 전문으로 다루는 변호사에게 이에 대한 의견을 물었다.
 
백경태 변호사(법무법인 신원)는 "한국은 허위사실이 아니라 사실을 적시하는 경우에도 명예훼손죄로 형사처벌이 될 수 있고, 상호를 그대로 쓰는 것 역시 명예훼손의 성립에서 자유롭지 못한 형편"이라며 "법원은 패러디까지도 저작권 침해에 해당한다고 판단하고 있고 실존인물을 다루는 영화나 영상물에 대한 상영 및 방영금지 가처분 역시 빈번하게 이루어지는 게 현실"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이어 "<서울의 봄>이 도입부에서 실제사건으로부터 '모티프'를 얻었을 뿐이라고 밝히고 극중 인물의 이름을 가명으로 처리한 게 그래서일 듯하다"며 "영화에 작품 외적인 이슈로 법적 문제가 발생하면 관여한 많은 이들의 이해관계가 복잡해질 수 있어서 사전에 이런 논쟁이 될 만한 일을 최대한 피하는 경향이 있다"고 설명했다.
 
사실을 적시하더라도 명예훼손으로 처벌하는 한국의 법체계와 그로부터 생겨난 영화계의 문화가 전두환을 전두광으로 탈바꿈하게 했다는 뜻이겠다. 그렇다면 이 나라 문화계에 봄이라고 부를 날은 아직도 오지 않은 건지 모를 일이다.
 
덧붙이는 글 김성호 평론가의 얼룩소(https://alook.so/users/LZt0JM)에도 함께 실립니다. '김성호의 씨네만세'를 검색하면 더 많은 글을 만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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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평론가.기자.글쟁이. 인간은 존엄하고 역사는 진보한다는 믿음을 간직한 사람이고자 합니다. / 인스타 @blly_kim / 기고청탁은 goldstarsky@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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