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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라고 아이들의 생명을 결정할 권리는 없다

[TV 리뷰] SBS <꼬리에 꼬리를 무는 이야기>

23.12.01 18:13최종업데이트23.12.01 18: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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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사회에는 생활고나 처지 비관 등을 이유로 자살을 결심한 부모가 일방적으로 자녀를 먼저 살해하는 비극이 종종 발생한다. 미성년인 아이는 가장 믿고 의지했을 보호자인 부모에게 자신의 의지와 무관에게 목숨을 잃어야했다. 과거에는 '동반 자살'이라고 했지만, 최근에는 '존속 살해' 혹은 '아동학대범죄'라는 용어로 대체해야 한다는 인식이 높아지고 있다. 부모라는 이유로 아이의 생명까지 마음대로 결정할 권리는 누구에게도 없기 때문이다.
 
11월 30일 방송된 SBS 실화 스토리텔링 <꼬리에 꼬는 무는 이야기>에서는 '여우고개에 묻힌 진실' 편을 통해, 2011년 포천 자매살인사건을 둘러싼 비극적인 진실을 조명했다.
 
2011년, 한 젊은 부부가 일정한 거처없이 몇 달에 한 번씩 전국 곳곳을 떠돌며 지내고 있었다. 충청북도 진천의 오이농장, 경상남도 밀양의 펜션 등, 구인광고를 보고 숙식이 가능한 일자리를 찾아다니며 몇 달씩 성실하게 일을 잘하다가 어느날 홀연히 쪽지 한 장만 남기고 사라지기를 거듭했다. 사장님들은 부부를 용돈 벌고 여행도 다니면서 '인생 즐기는 욜로족' 정도로만 생각했다. 그렇게 전국을 돌아다니던 부부의 행적은 그해 8월 이후로는 소식이 뚝 끊겼다.
 
그해 12월 30일 금요일. 포천경찰서에서 한 통의 제보전화가 걸려온다. 깊은 골짜기 절벽 끝에 차 한 대가 떨어져 있다는 것. 발견 장소는 경기 포천의 '여우고개'라는 곳이었다.
 
출동한 경찰이 절벽 아래에서 발견한 차량의 상태는 처참했다. 차량을 완전히 파손되었고 방치된지 꽤 오랜 시간이 흘렀다. 그리고 경찰은 차량 인근에서 담요로 덮어있던 백골 시신 두 구를 발견하게 된다.
 
차량 조회 결과 놀랍게도 그 주인은 전국을 여행하던 그 젊은 부부의 것으로 드러났다. 차에는 차 키가 그대로 꽂혀있었고, 기어는 드라이브 상태에 놓여있던 것을 볼 때 주행 중에 떨어졌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다.
 
경찰은 현장에서 발견된 은박 돗자리 조각에서 결정적인 단서를 발견한다. 돗자리 뒷면에는 "우리가 아직 살아 있네요. 우리는 산정호수에 빠져 죽기로 결심을 했습니다. 오늘 2월 22일 화요일이네요. 이곳의 위치를 알리고 우리 아이들의 시신이 잘 거두어지길 바라면서 마지막 길을 떠납니다"라는 글이 적혀있었다. 바로 아이들이 죽었다고 알리는 부모의 편지였다. 국과수 부검을 통하여 현장에 밝혀진 두 구의 시신은 13세와 11세의 여자 아이들이었다.
 
경찰 조사 결과, 네 가족 모두 실종신고가 된 상태였고 다른 경찰서에서도 부부의 행적을 쫓고 있었다. 신고자는 남편의 매형이었다. 실종된 가족은 남편의 누나 집에서 함께 거주했으나 시신 발견 10개월쯤 전인 2011년 2월에, 바람 좀 쐬고 온다면서 네 가족이 함께 집을 나간 것으로 드러났다.
 
누나 부부는 방학이니 가족여행을 간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며칠 후 부부가 보낸 편지를 읽고 충격에 빠졌다. 부부는 처지를 비관하여 아이들과 함께 극단적인 선택을 하겠다는 내용이었다. 편지에는 "이렇게 할 수밖에 없는 저희를 용서하세요. 특히 아이들에게 미안합니다. 하지만 남아서 천덕꾸러기가 될 것 같아 저희가 데려갑니다. 부모 잘못 만나서 고생하는 아이들이 애처로워 같이 가려고 합니다"라고 적혀있었다.
 
그리고 열 달 만에 아이들은 끝내 백골 시신으로 발견됐다. 하지만 정작 부모는 감쪽같이 사라졌다. 돗자리 편지에 기록된 작성일은 2월 22일, 그런데 부부의 행적이 마지막으로 확인된 건 8월이었다. 아이들이 사망한 2월 이후에도, 부부는 멀쩡히 살아서 전국을 돌아다니고 있었던 것이다.
 
2012년 1월 1일, 수사팀은 부부에 대한 체포 영장을 신청하고 살인과 사체 유기 혐의로 본격적인 수사에 돌입했다. 단란했던 네 가족은 이렇게 '살해 당한 피해자'와 '살인을 저지른 피의자' 사이로 엇갈리게 됐다.
 
경찰이 파악한 부부의 행적에 따르면 네 가족이 함께 집을 나간 것은 2011년 2월 14일, 아이들은 그로부터 7~8일 이내에 아이들은 사망한 걸로 추정된다. 하지만 부부는 이후로도 전국을 돌며 일자리를 얻고 병원에 들렀던 생활 흔적들이 연이어 발견됐다.
 
특히 부부는 마취통증의학과에 3번이나 가서 발에 '동상 치료'를 받은 것으로 드러났다. 아이들과 함께 죽기로 결심했다던 편지와는 달리, 누가 봐도 살려고 애쓰는 기색이 역력한 부부의 모습은 말과 행동이 정면으로 모순되는 장면이었다.
 
경찰은 그해 8월 이후 부부의 행적이 끊기면서 수사에 난항을 겪었지만 공개수배로 전환하면서 끝내 포기하지 않았다. "간절했다. 그 아이들이 과연 어떻게 사망했을까. 그거를 풀어야 하니까." 사건을 담당했던 김중기 형사의 고백이다.

결국 사라진 부부의 꼬리가 다시 잡힌 것은 부산에서였다. 부부는 부산의 한 농장에서 일하다가 함께 일하던 농장 직원의 제보로 덜미를 잡혔다. 제보자는 서울 말씨를 쓰면서 함께 일한지 반년이 넘도록 낯을 가리는 부부의 수상한 모습에 의문을 품었고 어느날 시내에 나갔다가 지명수배 전단에서 부부의 모습을 발견하고 큰 충격을 받았다.
 
당시는 2013년 4월, 사건 발생 2년이 지난 후였고 부부는 1년 반 넘게 이곳에서 일하고 있었다. 현지 경찰은 만반의 준비를 하고 농장을 덮쳤다. 그런데 막상 경찰을 발견한 부부는 형사가 추궁을 하기도 전에 "전 죽어 마땅한 사람"이라며 모든 잘못을 인정하고 도주나 저항도 없이 순순히 체포됐다. 오히려 농장 쪽에서 같이 일하던 직원들이 성실하고 착한 사람들을 왜 잡아가냐며 형사들을 만류했다고 한다.
 
당시 부부를 검거한 장영권 형사는 "굉장히 많이 울고 후회를 하면서 언제든지 자기가 처벌받을 마음의 각오를 하고 있더라. 꿈에서도 자식이 많이 나타나고 그렇게 하면서 매일 자식들도 꿈에서 울고 그렇게 했다는 이야기를 해줬다"고 설명했다.
 
부부의 검거 소식이 전해지자 세상이 떠들썩했다. 자식을 죽인 비정한 부모가 뻔뻔하게 살아있다는 사실에 많은 사람들의 비난이 쏟아졌다. 부부는 각자 분리되어 진술을 받았다. 남편과 아내는 서로 자신이 다 한 일이라고 주장하며 서로의 선처를 호소했다.
 
여우고개에 묻혀있던 두 아이의 죽음과 관련된 충격적인 진실이 드러났다. 단란했던 네 가족은, 부부의 여인은 사업 실패로 빚더미에 올라앉게 됐다. 부부는 살던 집도 팔고 친척집을 전전했으나, 얹혀살던 누나네 형편도 어려워지면서 절망적인 상황에 몰렸다. 궁지에 몰린 아내는 희망을 잃고 먼저 남편에게 극단적 선택을 제안했다고 한다.
 
네 가족은 포천으로 가족여행을 떠났다. 남편은 여행지에서도 마지막까지 아내의 마음을 돌리려고 설득했으나 실패했다. 결국 부부는 홀로 남겨질 두 딸이 눈에 밟힌다는 이유로 아이들까지 함께 데려가야겠다는 잘못된 결심을 하기에 이른다.

부부는 처음엔 방안에서 번개탄에 불을 피웠다. 하지만 딸들이 괴로워하자 잠에서 깨자 충격을 받고 첫 번째 시도는 실패했다. 부부는 아이들을 끌어안고 울면서 "다음 세상에서 만나자"고 모든 사정을 알렸다. 아무것도 모르는 10대 초반의 어린 아이들은 부모와 헤어져야 한다는 두려움과 슬픔에 눈물을 펑펑 쏟을 수밖에 없었다. 부부는 그 모습을 '아이들도 자신들과 같은 생각을 하고 있다'는 착각에 빠졌다.
 
어쩌면 잘못된 선택을 막을 수 있었던 마지막 기회였지만, 부부는 멈추지 않았다. 부부는 차 안에서 두 번째로 극단적인 시도를 했다. 그런데 아이가 또다시 깨어났다. 고통스러웠던 아이가 살기 위하여 마지막 몸부림을 쳤지만, 부부는 그 간절했던 시그널을 외면했다. 고통을 줄여줘야 한다는 잘못된 합리화에 빠진 남편은 아이의 목을 졸랐고, 아내는 버둥거리는 아이의 다리를 붙잡았다.
 
두 딸들은 이미 차량이 추락하기 이전에 부모의 손에 의하여 목이 졸려 살해된 것이었다. 산전수전 다겪은 형사들조차도 어린 자기 자녀를 직접 목을 졸랐다는 고백을 듣고 괴롭고 참담했다고 한다.
 
원래 부부는 곧장 아이들을 따라갈 생각이었다고 주장했다. 차를 몰던 남편은 여우고개에 들어선 순간, 가드레일이 뚫린 구간을 향해 그대로 돌진했고, 정신을 잃었다고 한다. 하지만 얼마 후 안전벨트를 매고 있던 부부는 차 안에서 다시 눈을 떴다. 죽겠다던 사람이 안전벨트를 왜 매고 있었냐는 추궁에 남편은 "차에 탔을 때부터 습관적으로 매고 있었다"고 변명했다. 이후로도 돌로 머리를 서로를 내리치고 추위에 얼어죽으려고 하는 등 극단적인 시도를 계속했으나 번번이 실패했다고 한다.
 
부부는 결국 일단 몸을 추스르고 다시 기회를 보자고 암묵적인 약속을 했다. 두 사람은 아이들의 시신을 우의와 담요로 덮어준 뒤, 그리고 돗자리를 찢어 메모를 남긴 채 여우고개를 떠났다고 밝혔다.
 
부부는 정처 없이 움직이다가 허기진 배를 달래고, 꽁꽁 언 발도 녹였다. 당시 사건 담당 김중기 형사는 부부의 행동에 대하여 "살려는 욕구가 강했기 때문"이라고 분석하며 "자살이라는 단어를 늘 마음에 새기고 살았다면서 몸은 다르게 행동했으니 아이러니하다"고 꼬집었다.
 
부부를 면담하며 정말 이해하기 어려운 부부의 말과 행동을 가까이서 접한 국선 변호인들도 어려운 사건이었다고 회상했다. 변호사들은 "처음부터 계획적으로 딸들만 죽이려고 작정했던 게 아닌가라는 시각이 있었다. 파렴치하고 뻔뻔한 부모로서 최소한의 책임과 의무를 저버린 나쁜 사람들이라는 인식이 있었다"면서도 막상 실제로 접하고 나서는 "이들이 어마어마한 연기자가 아니라면, 옆에서 볼 때 애들을 그리워하고 자신이 저지른 짓에 대한 죄책감은 진짜처럼 보였다"라고 회상했다.
 
사건의 쟁점은, 부부가 정말로 죽을 계획이었는지였다. 부부가 처음부터 아이들만 희생시키려고 했던 가능성도 있었다. 이들이 2년이 넘도록 자수하지 않고 도망만 다닌 것도 이런 의구심을 더했다.
 
부부의 변명은 잡힐 때까지 자기들도 죽어야겠다는 생각을 포기한 적이 없다는 것이었다. 몇 차례 시도를 했으나 실패하는 상황이 반복되었다고 한다. 자수를 하지 않은 이유는 구속이 되면 자살하는 것을 사실상 단념하는 것이어서 자수를 할 수가 없었다고 변명했다.
 
아내는 "아이들을 먼저 보내고 저희는 죽지 못하는 게 너무 미안했다"라고 밝혔다. 남편은 "하지만 죽는 걸 실패할 때마다 점점 더 고통스러워졌다. 그리고 나중엔 죽는다는 게 정말 무서워졌다 "면서 죽는 게 사는 것만큼 어려웠다고 주장했다.
 
전문가에 따르면, 극단적인 마음을 결심하더라도 죽음에 대한 공포감은 똑같다고 한다. 더구나 눈앞에서 누군가 죽는 걸 보게 되면, 죽음의 공포가 더 크게 밀려온다는 것이다.
 
2013년 9월 2일, 재판은 국민참여재판으로 진행됐다. 부모는 딸들을 살해한 피고인으로 7명의 배심원 앞에 섰다. 남편은 최후진술에서 눈물을 펑펑 쏟으며 "자식을 죽인 부모 입장에서 모두 잘못했다. 하지만 아이들을 정말 사랑했다. 그런 선택을 하게 된 저 자신이 원망스럽다. 속죄하고 참회하며 살겠다"고 호소했다.
 
그런데 부부는 중형을 받더라도 두 사람의 형량이 똑같이 나왔으면 좋겠다는 엉뚱한 부탁을 했다. 한 명이 먼저 출소하고 한 명이 교도소에 조금 더 오래 있게 되면 먼저 출소한 사람이 무슨 짓을 할지 몰라서 걱정된다는 이유였다. 부부는 아이들에게 서로에 대해서도 큰 죄책감을 갖고 있었다고 한다.

배심원석과 방청석에서는 부부에 대한 동정이었는지, 아니면 떠난 아이들에 대한 안타까움이었는지는 몰라도 곳곳에서 눈물을 흘렸다고 한다. 재판 결과는, 배심원 7명 모두 '유죄 의견'이 내려졌다. 재판부는 부부에게 징역 10년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양형 이유에 대하여 "만 12세, 10세에 불과한 아직 인생을 꽃피워보지도 못한 어린 피해자들이 믿고 따르던 피고인들로부터 소중한 생명을 빼앗기게 된 점 등에 미루어 피고인들을 엄히 처벌함이 마땅하다"면서도, 한편으로는 "다만 피고인들이 자백하고 속죄하며 살아갈 것을 다짐하고 있는 점, 앞으로 평생 친딸인 피해자들을 자신들의 손으로 잃게 했다는 죄책감에 치유될 수 없는 정신적 고통을 안고 살아갈 것으로 보이는 점 등을 참작했다"고 설명했다.
 
사회가 내린 형량과 별개로, 부부는 마음의 벌을 평생 받으며 살아갈 것이다. 1심 국선변호인이었던 최미라 변호사도 부부를 온전히 이해할 수는 없지만 "지금까지 했던 모든 사건 중에 이 분들이 제일 후회가 컸다. 범행을 반성하고 뉘우친다 이런 말하지 않나. 근데 이 분들은 확실하게 후회를 했다. 그것은 명확하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이미 떠난 아이들은 다시 살아돌아올 수 없다. 아이들은 아주 짧은 생을 살다가 장례도 제대로 치르지 못한 채, 그 누구의 배웅도 없이 세상을 떠나야했다.
 
세상의 어떤 부모라고 완벽할 수 있을까. 아이들에게 부모로서 부족한 모습을 보여주기 싫었던 마음이겠지만, 진정한 가족이라면 부부도 아이들과 솔직한 대화를 나누며 아이들의 생각과 의지를 들어보려고 노력했다면 어땠을까.
 
부부를 검거한 장영권 형사는 부부가 진심으로 사정을 터놓고 이야기할 곳이 어디에 없었다는 사실을 안타까워 하며 버팀목을 자처하기로 했다. 장 형사는 수감 중인 부부와 편지를 주고받으며 언젠가 이 사회로 돌아올 부부가 또다시 나쁜 생각을 하지 않고 온전히 살아갈 수 있도록 힘이 되어주고 싶다는 바람을 전했다.
 
부부는 2021년 수감 중에 장 형사에게 보낸 편지에서 "죽는다는 게 산다는 것보다 더 어려운 일이란 사실을 알기에 남은 시간은 정말 의미 있게 잘 살아가겠다 약속드린다. 그것이 진정한 참회고 속죄란 생각이 든다"고 밝혔다. 장 형사는 부부가 앞으로 약속을 지키면서 살았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전했다.

아직도 부모가 자녀들을 죽이고 일가족이 사망했다는 안타까운 뉴스가 때때로 들려오곤한다. 여전히 어리석은 일을 반복하는 부모들이 있다. 삶은 누구에게나 귀한 것이고, 본능적으로 삶을 살아내려는 꺾이지 않는 의지가 있다. 아이들의 생명은 아이들 것이지, 부모의 것이 아니며, 그걸 부모라고 해서 마음대로 빼앗을 권리는 누구에게도 없기 때문이다.
꼬꼬무 여우고개 포천자매살인 존속살해범죄 실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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