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마이스타

본문듣기

10대부터 어르신들까지... 이 영화관으로 몰리는 이유

[인터뷰] 동인천역 뒤편 보물 같은 공간, 인천 '미림극장' 최현준 대표

23.12.05 14:06최종업데이트23.12.05 14:06
원고료로 응원
1990년대 말 복합상영관 이른바 대형 멀티플렉스가 등장하면서 한국 영화 산업은 양적으로나 질적으로나 비약적인 발전을 이루었다. 그러나 동시에 단관극장의 시대가 막을 내렸다. 단관극장은 스크린이 하나만 있는 극장을 말한다. 그러니까 멀티플렉스가 생기기 전 우리나라에 있던 모든 영화관이 단관극장이었다. 이름도 모두 달랐던 단관극장들은 이제 어느 곳에서도 찾아보기 힘들어졌다.

그러나 보이지 않는다고 사라진 건 아니다. 저마다의 자리에서 어떻게든 생존하기 위해 노력하며 사람들의 '영화 볼 권리'를 지켜주고 있는 극장들이 있기 때문이다. 바로 '예술영화전용관'이다. 개발 논리와 대형자본의 위협 속에서도 우직하고 묵묵하게 버텨내고 있는 극장, 그들의 이야기를 소개한다. 이번 연재는 노회찬재단과 한국예술영화관협회와 함께 기획했다.[기자말]

미림극장 입구. 253석 단관으로 운영중이다. ⓒ 권지현

 
실버영화관, 고전영화관, 예술영화전용관. 이 모든 수식어가 한 극장에 붙는다. 바로 인천 '미림극장'. 그러니까 좀 짬뽕이다. 그래서 더 재미있는 공간인지도 모른다. 아주 옛날 영화부터 아주 최근 영화까지 상영하고 유명한 영화부터 숨은 독립 예술영화까지 상영하며, 청소년부터 나이 지긋한 어르신까지 한꺼번에 찾는 공간이기 때문이다.

또 그곳에는 극장문을 열고 들어서는 청년에게 어서 오라고 인사하고, 객석에 앉아 있는 어르신에게는 오늘도 오셨네요 하고 안부 인사를 전하는 청년회장 같은 사람도 있다. 주민들이 친근하고 편안하게 극장을 찾을 수 있도록 9년째 미림극장을 지키고 있는 최현준 대표, 그를 만났다.
 
"예전에는 여기 극장 앞까지 바닷물이 들어왔어요"
 

최현준 미림극장 대표. 9년째 미림극장을 운영하고 있다. ⓒ 권지현

 
미림극장은 1957년 배가 드나들던 배다리길 가까운 곳에서 가설극장으로 시작했다. 항아리 만들던 공장 터에서 천막을 치고 영화를 틀었다고 한다. 그렇게 시작한 미림극장은 오랜 시간 인천시민들의 고단함과 문화적 갈증을 해소해주는 문화 공간으로 사랑받았는데, 그런 미림극장에 위기가 닥친 건 역시 극장계의 공룡 멀티플렉스가 등장하면서였다.
 
"여기 근처에 극장이 한 20개 정도가 있었어요. 제2의 충무로라고 했을 정도였으니까요. 그런데 1999년인가 멀티플렉스가 들어와서 개관한 첫날, 여기를 포함한 인근 극장 관객이 하루 만에 절반으로 뚝 떨어졌다고 하더라고요. 어제 가득 찼던 관람석이 반이 비어버린 거예요. 그때부터 점점 운영이 어려워진 거죠. 결국 2004년에 문을 닫았어요. 당시에 여기서 35년간 근무하던 영사 기사님이 계셨거든요. 그분이 극장 앞에 사셨는데, 당신 청춘을 바쳐서 일한 곳이 문을 닫았다고 하니까 마음이 아파서 앞을 지나가지를 못했다고 하시더라고요."
 

이후 미림극장은 10년 동안 방치가 됐다. 그러다 오래된 추억의 공간을 재건해 사람들을 모이게 해보자는 취지에서 인천시와 인천 동구청, 인천시 사회적기업협의회가 뜻을 모았고 2013년 미림극장은 10년 만에 다시 영사기가 돌아가기 시작했다.
 
"다시 문을 열 때 극장의 정체성을 실버영화관으로 정했다고 하더라고요. 추억의 공간이기도 하고 중장년 이상의 인천시민이라면 미림극장에 대한 기억 한두 개는 가지고 있을 거거든요. 그런 공간을 다시 마련해 드리고 싶었을 거예요. 그런데 운영이라는 게 그런 마음만으로 되는 건 아니잖아요.

저는 2015년에 이곳 운영부장으로 먼저 입사를 했는데, 지원사업도 좋고, 고전 영화도 좋은데, 우선 어르신 영화관이라는 고정관념을 깨야겠다 싶더라고요. 특정 세대를 위한 공간이 아닌 영화를 매개로 세대 간에 소통이 이루어지는 공간도 괜찮겠더라고요. 그래서 젊은 세대들에겐 고전 영화를 소개하고, 어르신에게는 요즘의 이야기를 보여드리면서 영화를 통해 세대를 넘어 공간과 공감을 나누자 싶었죠."

 
"모든 세대가 함께 하는 종합예술공간, 미림극장"
 

미림극장 상영관 출입문. 고전영화는 65세 이상 3천 원, 일반 6천 원, 일반 영화는 65세 이상 6천 원, 일반 8천 원으로 운영되고 있다. ⓒ 권지현

 
최현준 대표의 마음은 그대로 관객에도 통했다. 어르신들만 오던 공간에 청소년과 청년이 들어오고 자연스럽게 함께 영화를 보고 소통하는 장이 되었던 것. 실제로 GV(Guest Visit) 행사 때 여러 세대가 참여하는 모습을 보고 감독이나 배우들이 놀라기도 한단다. 최현준 대표는 미림극장이 '청년 세대에 고전의 의미를 전하고 신구세대가 함께 어울려 문화예술을 누리는 공간'이길 바란다.
 
"제가 와서 한 게 '청소년 영화제작교실'이었어요. 한 4년간 운영한 거 같은데, 그러다 보니 주로 어르신들이 계시던 곳에 아이들이 왔다 갔다 하게 된 거죠. 그게 서로가 어색할 수도 있는데, 처음엔 조금 그러다가 어느 순간 자연스러워지더라고요. 또 아이들이 직접 제작한 영화를 극장에서 상영하고 그걸 또 어르신들도 보고 그러면서 서로 간의 거리를 좁혀가는 거죠.

그뿐만 아니라 극장은 영화를 넘어서 예술 장르와도 협력할 수 있는 무궁무진한 공간이라 생각해요. 저희는 예술인복지재단에서 하는 예술인파견지원사업에도 참여하고 있는데요, 음악, 미술, 평론 등 다양한 장르의 예술인들이 모여 영화상영회를 기획하기도 했고, 공연도 하고요, 일반인들 대상으로 무용 워크숍을 하기도 하고, 최근에는 음악을 하는 한 작가님이 극장 일상의 소리를 채집해서 디지털 테이프 뮤직으로 만들기도 했어요. 그야말로 종합 예술 공간인 거죠."

 
미림극장을 찾는 시민들은 이제 극장에서 문화 활동을 하는 것에 익숙하다. 영화만 보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활동을 통해 자기만의 예술적 욕구를 발견해내고 표현하는 방법을 찾아가고 있다. 그리고 젊은 영화인들의 예술적 꿈을 펼칠 수 있는 곳 또한 이곳 미림극장이다.
 
"영화를 만들어도 영화를 상영할 곳을 찾기가 힘들거든요. 배급사가 붙으면 어떻게든 개봉이 되지만 그렇지 않은 영화들이 더 많아요. 영화는 만들어지는데 배급도 안 되고 상영도 어려운 거죠. 그런 작은 영화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것이 또 이런 예술영화관이 해야 할 노력이라고 생각해요. 지금도 계속 문의가 옵니다. 영화 상영할 수 있냐고. 너무 소규모 영화거나 하면 저도 상영을 두고 부담스러울 때가 있지만, 영화 만드는 사람들을 외면할 수 없더라고요. 최대한 정성 들여 답장을 보내죠. 같이 해 보자고."
 

하지만, 예술을 하는 사람들의 숙명이란 그런 것일까. 열심히 해도 살림은 늘 빠듯하다.
 
"사실 미림극장은 처음부터 위기였던 거 같아요. 재개관할 때 인천시와 동구청이 지원을 약속했는데, 당장 다음 해에 기관장 바뀌면서 바로 지원이 끊겼거든요. 당황스러웠죠. 그 지원금이 없으면 운영에 큰 차질이 생기니까요. 다행히 그때 사회적기업 대표님들이 십시일반으로 도와주셨는데, 그 도움이 없었다면 문 닫았을지 몰라요. 그 이후로 늘 언제 문 닫게 될지 모르겠다 싶은 불안감이 생기더라고요. 내일, 내년, 그 이후를 생각하면 답이 없어요. 그래서 저는 오늘 하루만 열심히 극장 문을 열자는 생각으로 하고 있어요. 그게 하루하루 지나서 오늘까지 오게 된 건데, 아마 내년 내후년이 되면 또 그렇게 문 열고 운영하고 있지 않을까요?"
 

미림극장 2층 객석. 인근의 CGV 영화관이 철거할 때 의자를 기증받아 마련했다. ⓒ 권지현

 
그러면서도 OTT와 멀티플렉스 등 변화된 영화 산업 현실 속에서 최현준 대표는 예술영화관의 미래에 대해 고민한다. 어떻게 하면 더 많은 사람에게 좀 더 다양한 영화를 보여줄 수 있을까.
 
"공동체 상영이라고 있잖아요. 출장 상영이라고 해서 영화관이 아닌 곳에서 영화가 필요하다 하면 가서 틀어드리거든요. 한 달에 한 번은 영화보기 힘든 곳에 사는 분들이나 어떤 자리를 마련해서 영화를 틀어달라고 신청하면 가서 틀어드립니다. 영화는 관객과 만나는 것이 중요하고 관객은 함께 보고 경험을 공유하는 것이 중요하거든요. 극장이 사라진다면 그렇게 해서라도 영화를 계속 틀고 싶다는 생각을 해요."
 
끝으로 미림극장을 통해 사람들에게 무엇을 보여주고 싶은지 물었다.
 
"행복이죠. 저는 다른 것 없습니다. 극장에서 어떤 영화를 상영하는지가 사람들의 삶에 영향을 미치고, 그런 영화를 통해 하루가 즐겁고 유쾌하게 느껴질 수 있다면 저는 그게 전부라고 생각합니다. 사람들에게 즐거움을 주고 싶은데,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영화를 보여주는 것이고, 그걸 통해 사람들이 행복하면 저는 그걸로 만족합니다. 물론 문화라는 게 영화라는 게 밥 먹고 사는 일만큼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기본적으로 사람은 유희의 인간이라고 하잖아요. 공기처럼 문화와 예술이 생활에 스며들어서 많은 사람이 그것으로 즐겁고 행복한 것 그것이 최고죠."
인천 미림극장 예술영화전용영화관 6411영화제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지역 지상파 20년차 방송작가입니다.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