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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남 명문고 '초대형 사학비리', 학생들이 8년만에 되찾은 정의

[TV 리뷰] SBS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 이야기>

23.12.15 17:31최종업데이트23.12.15 17: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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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BS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 이야기>의 한 장면. ⓒ SBS

 
학교는 작은 사회라고도 불린다. 사전상의 의미로는 가장 기본적인 교육 기관이지만, 그 안에서도 경쟁, 서열, 차별, 폭력, 권력 등이 엄연히 존재하고, 때로는 우리가 사회에서 겪게 될 수많은 일들이 녹아있는 세상의 축소판이 되기도 한다.
 
최근에도 학교에서 벌어지고 있는 수많은 사건들이 우리 사회에서 논란의 중심으로 떠오른 가운데, 20여 년 전 평범한 학생들과 교사들이 힘을 합쳐 거대한 비리에 함께 저항했던 어느 학교의 이야기는 우리에게 깊은 울림을 전한다.
 
12월 14일 방송된 SBS 실화스토리텔링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 이야기>에서는 '학교의 봄'을 통하여 1990~2000년대 우리 사회를 떠들썩하게 했던 한 사학 비리 파동을 조명했다.
 
강남 8학군 사립 명문고에서 있었던 일
 

SBS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 이야기>의 한 장면. ⓒ SBS

 
1990년대 서울 서초구에 있는 S고등학교는 한때 서울대를 100명씩 보낸 적도 있는 강남 8학군의 사립 명문 남고였다. 하지만 정작 학생들에게는 교칙도 지나치게 엄하고 체벌이 난무하는 살벌한 환경 때문에 기피 대상 1순위로 꼽힐 만큼 악명이 높았다.
 
1993년 11월, S고에서는 전국 모의고사가 열렸다. 수능을 코앞에 둔 고3이나, 3학년 진학을 앞둔 2학년에게 모두 중요한 시험이었다. 그런데 이날, 이 학교와 학생들의 운명을 뒤바꿀 엄청난 사건이 일어난다.
 
학생들은 시험지와 답안지를 받아들고 석연치 않은 점을 발견했다. 11월 모의고사임에도 시험지에는 7월이라고 쓰여 있었다. 또한 모의고사에서 본 문제는 한 출판사의 학습지에서 나온 것과 똑같았다. 심지어 교사들은 답안지도 걷지 않고 집에 가서 각자 채점을 해보라고 해서 의아함을 자아냈다.
 
학생들이 모의고사를 비용까지 지불하며 보는 이유는 전국에서 자신의 등수가 몇 등이고 어느 학교에 진학할 수 있는지 알아보기 위한 것이었다. 답안지를 거둬가지 않는다는 것은 공식 성적표도 나오지 않는다는 의미였기에, 학생들로서는 왜 이런 시험을 본 건지 혼란에 빠질 수밖에 없었다. 당황한 학생들은 교사에게 문의했지만 누구도 제대로 대답해주는 이가 없엇다.
 
당시 S고 2학년이었던 주민근씨는 답답한 마음에 모의고사 주관사에 직접 전화를 걸어서 자초지종을 물었다. 돌아온 대답은 시험지 여분이 남았고 고등학생들의 학업을 돕는 차원에서 무료로 배포했다는 것이었다. 결국 학교에서 아이들을 속이고 불필요한 가짜 시험을 치르게 한 것.
 
아이들은 학교가 돈을 빼돌릴 목적으로 벌인 일이라고 확신했다. 알고보니 S고에서는 이전부터 이런 비슷한 일이 자주 벌어졌다. S고는 주변 다른 학교보다 보충수업비나 관련 교재비를 2~3배나 비싸게 거뒀고, 학생들에게 전기세까지 걷었다. 이밖에도 각종 명목으로 툭하면 학생들한테 돈을 걷기 일쑤였다. 의심과 불만이 커져가는 가운데 이 '가짜 모의고사' 사건까지 터지게 된 것이다.
 
모의고사 며칠 뒤 학교에서 사건이 벌어졌다. 세 명의 아이들이 그 S고 교장이 관련된 의혹을 폭로하고 규탄하는 전단을 제작해 학교 곳곳에 뿌린 것이다. 교장은 이전부터 교사에게 인격적인 모욕과 폭행을 가하는 등 여러 가지 비상식적인 만행을 저지르는 모습이 학생들에게 수없이 목격된 바 있었다. 아이들은 학교의 모든 부조리 뒤에 교장이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유인물을 돌린 세 명의 학생은 얼마가지 못해 학교 측에 적발되었고, 그 아이들의 짝이었던 학생 한 명까지, 총 4명이 퇴학 처분을 받았다. 학교 측은 학생들을 범인 취조하듯이 위협하여 사실을 추궁했다. 특히 주동자들은 교사들에게 무자비하게 구타를 당하고 작은 방에 갇혀서 억지로 진술서를 쓰게 했다.
 
심지어 사건과 관여하지 않았던 같은 반 아이들도 단순히 복사비를 빌려줬다거나 알고도 사전에 알리지 않았다는 이유 등으로 유기 정학 처분을 받기도 했다. 또한 학교는 퇴학시킨 아이들에게 전학이나 검정고시에 필요한 어떠한 서류도 떼주지 않는 보복성 조치를 단행했고, 전학 처리를 조건으로 학부모에게 돈을 요구하기도 했다.
 
여기에서 그치지 않고 학교 측은 주동자들한테 배후에서 지시한 이들이 있을 것이라며 사주한 교사의 이름을 대라고 압박했다. 교장이 이 사건을 이용하여 평소에 눈엣가시처럼 여기던 일부 교사들을 찍어내려고 했다. 학생들은 어떤 선생님의 이름도 입에 올리지 않았다. 하지만 다음 학기부터 일부 교사들이 분명한 이유도 없이 수업에서 제외되기 시작했고 교무실에서도 쫓겨났다.
 
대한민국 발칵 뒤집은 초대형 사학비리 사건
 

SBS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 이야기>의 한 장면. ⓒ SBS

 
이에 불이익을 당한 교사들도 결국 더 이상 참지 못하고 집단 대응에 나섰다. 1994년 3월 14일, 가짜 모의고사가 치러진 지 약 4개월 만에, 자의반 타의반으로 학교를 떠나야 했던 교사들은 언론 앞에 모였다. 그들은 먼저 스스로의 잘못을 먼저 고백하는 양심선언을 한 뒤, 그간 S고에서 벌어졌던 모든 사건들의 진실을 폭로했다.
 
사실 S고의 문제를 세상에 알리려고 한 것은 이들이 처음은 아니었다. 하지만 교육기관이나, 국회, 청와대 등은 검토해 볼테니 기다리라는 말만 거듭하며 미온적으로 대응했다. 이에 교사들이 선택한 최후의 수단이 언론을 통한 폭로였던 것.
 
강남 최고의 명문고에서 일어난 초대형 사학비리 사건은 대한민국을 발칵 뒤집어놨다. 대통령까지 나서서 특별수사 지시를 내렸고, 그러자 그동안 외면했던 교육청, 국회, 검찰까지 그제야 갑자기 두 팔 걷어붙이고 조사에 나섰다.
 
막상 본격적인 조사가 시작되니까 더욱 놀라운 혐의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튀어나왔다. '사학부패 백화점'이라는 오명까지 받을 정도로 극심했던 S고의 사학 비리는 교장과 그에 충성하던 2인자인 교감, 상근 이사 C씨, 그리고 교장의 아내이자 재단 이사장까지 4인이 주도했다.
 
교장은 자신의 아버지가 초대 교장이었던 S고를 이어받아 20년째 집권하며 아내인 이사장과 함께 학교를 사실상 자신들의 '왕국'으로 만들었다. 교장 부부는 현직 교사들에게 불법 과외를 지시하고 월 수십에서 수백의 과외비를 주며 학교 업무에서도 배제시켰다. 불법 과외가 적발된 현직 교사들은 형사 처벌까지 받았지만 교장은 이사회 징계만 받고 1년 후 교장으로 복직한 것이 드러났다.
 
또한 S고에서는 새 학기가 시작되면 학부모들 중 VIP 리스트를 작성했고, 이들은 전직 장관, 국회의원 등 공무원에서 법조인, 의사, 대학교수 등 사회 유력층들 인사로 구성되었다. 이 중 일부는 학교 측과 매우 끈끈한 관계를 형성했고, 교장은 VIP 자녀들의 성적 조작까지 교사들에게 지시하기도 했다. 교사들은 불이익을 받을까 두려워 부당한 지시를 알면서도 따를 수밖에 없었다.
 
반면 가정 형편이 좋지 못한 서민층 학생들은 공공연한 차별을 감수해야 했다. 유력층 부모를 두지 못한 학생들은 암묵적으로 반장이나 학생회장 자격을 얻기 어려웠다, 졸업할 무렵에 학생회장이었던 학생은 공로상을 받는 명목으로 학교에 돈을 내야하는 관행이 있었다고 한다.
 
이러한 S고의 상상을 초월하는 비리는, 여러 유명 영화의 소재가 되기도 했다. 악덕 교장과 비리 재단에 대항하는 학생과 교사들의 이야기를 다룬 코미디 영화 <두사부일체>가 바로 S고 사건을 모티브로 한 이야기다. 또한 영화 감독 유하는 S고 출신으로 자신의 자전적 경험담을 바탕으로 만든 영화가 바로 2004년작 <말죽거리 잔혹사>다.
 

SBS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 이야기>의 한 장면. ⓒ SBS

 
S고 졸업생 중 상당수는 평생 학창시절 당시의 트라우마를 안고 살아가야 했다. 유하 감독은 인터뷰에서 "옛날 일기장을 보니 '매일 학교 가는 게 죽는 것보다 싫다'고 쓰여 있더라"고 회상하기도 했다. 역시 S고 출신이었던 래퍼 김진표는 '학교에서 배운 것' 랩 가사에서 학창 시절에 겪었던 부당한 폭력과 차별을 고발하기도 했다.
 
정작 사학 재벌에 등극한 교장은 학생들이나 학부모들의 고통엔 전혀 관심이 없었다. 교장에게 학교는 그저 '황금알을 낳는 거위'에 지나지 않았고, 매년 막대한 불법 찬조금을 걷어 재산을 축적했다. 정작 그렇게 많은 돈을 걷고도 학교에 투자하는 경우는 없었다. S고는 명문고대를 가장 많이 보내는 학교라는 명성이 무색하게, 당시 강남에서 시설이 가장 열악한 학교로 악명이 높았다.
 
교장 일가는 학교에서 얻은 수익으로 호화생활을 누리고 있었다. 교장의 자택은 30년 전 시세로 30억에 이르는 초호화 주택이었고, 미국에도 고가의 별장을 아내와 16세 아들의 명의로 해놓았으며, 학교 인근에 50억 시세의 건물까지 가지고 있었다. 학교 소유부지에는 3000여 평 규모 골프 연습장까지 지어놨다. 1994년에 밝혀진 교장의 자산은 무려 200억 대에 이르렀다. 교장은 명실상부한 '사학 재벌'이 되었지만, 그 사이 학교는 조금도 발전하지 않았다.
 
또한 교장의 비리는 혼자서만 저지른 것이 아니었다. 이전에도 의혹제기가 있었고 감사도 받았지만 대개 '경고'만 받고 징계없이 끝났으며 S고에는'우수학교' 판정이 내려지기도 했다. 관리감독 기관이 비리세력을 조직적으로 비호해 준 것이었다.
 
포기하지 않고 목소리 낸 학생들
 

SBS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 이야기>의 한 장면. ⓒ SBS

 
영원히 끊어지지 않을 것 같았던 비리의 카르텔은, 일부 학생들과 선생님들의 용기있는 폭로로 세상에 드러났다. 검찰 수사결과 교장의 많은 혐의들이 결국 사실로 드러났다. 이들에게 뇌물을 받은 고위 교육공무원과 시의회 의원들도 구속됐다.
 
몇 년간 이어진 재판 끝에 교장은 징역 3년, 집행유예 4년을 선고받는데 그쳤고, 횡령액도 일부만 인정받았다. 나머지 주요 관련자들에 대한 처분도 비슷했다. 오랜 세월 학생과 학부모, 교사들이 느꼈을 고통과 피해에 비하면 터무니없이 약한 처벌이었다.
 
다행히 S고는 관선 이사들이 파견되면서 빠르게 정상화 됐다. 유인물 사건으로 퇴학당한 네 학생들도 학교로 돌아왔다. 불법 찬조금도 없어지고, 성적처리도 어느 학교보다 투명해졌다.
 
하지만 사건은 아직 끝난 것이 아니었다. 양심선언 6년 후인 2000년 1월, S고 비리의 주역들이 학교 복귀를 추진하기 시작한 것. 이보다 앞서 1999년 8월에 사립학교법이 개정된 것이 빌미가 됐다. 유죄판결을 받은 사람도 2년이 지나면 재단 이사나 교직에 임명되는 걸 막을 수 없게 된 상태였다. 사립학교에 주체적 권한을 부여하기 위해 법이 개정된 건데, 그 법이 보장하는 자율성을 교묘하게 악용하려한 것이다.
 
이 소식을 들은 S고 출신 교사와 졸업생들은 강하게 반발했다. 서울시 교육감은 여론을 고려하여 비리 세력들의 임원 취임 승인을 철회하는 결정을 내렸지만, 교장의 아내는 학교 복귀를 포기하지 않고, 행정법원에 서울시 교육감을 상대로 임원승인 취소처분 취소청구소송을 내어 결국 승소했다. 비리재단이 다시 학교에 복귀할 수 있는 길이 합법적으로 열린 셈이다.
 
이에 S고 부모들은 비리재단의 복귀를 반대하는 성명서를 발표하고, 학생들은 수업을 거부한 채 운동장에 모여 시위를 벌였다. 당시 아무도 없던 S고의 교실 칠판에는 큰 글씨로 "정.의." 두 글자만 적혀있었다고 한다.
 
판결 후 9일이 지난 어느 날 학생들은 누가 주도한 것도 아닌데 우발적으로 교문 밖으로 나가서 법원으로 향하려 했다. 그 앞에는 수백 명의 전경들이 배치되어 학생들의 시위를 막았다. 학생들은 그럼에도 어떻게든 앞으로 전진하려고 했고, 전경들이 무력으로 이를 저지하려다가 학생과 학부모가 연이어 부상을 당하는 사태가 속출했다. 교복을 입은 학생들과 무장한 전경들이 대치한 것은 4.19 이후 최초의 사건이었다고 한다.
 
간신히 법원 앞에 도착한 학생들은 차분하게 집회를 이어가며 학교의 불합리한 현실을 세상에 알렸다. 학생회 대표들은 항의하는 의미로 삭발식까지 거행했다. 모든 순서를 마친 후 학생들은 교가와 애국가를 부르고 현장 정리까지 깔끔하게 마친 뒤 평화롭게 해산하여 학교로 돌아갔다. 졸업생들도 끝까지 후배들을 지지하고 동참할 것을 약속했다.
 
학생들의 자발적인 법원 앞 평화 시위는 6년 전 선생님들의 양심선언처럼 전 국민의 관심사로 급부상했다. 이후 재판은 고등법원으로 넘어갔고, 선생님들과 학생들, 학부모들은 각자의 방식으로 투쟁을 이어갔다.
 
새 학기가 시작되고 S고는 논란에 휩싸인 학교 진학을 꺼린 신입생들과 재학생들이 대거 자퇴하여 학교 자체가 사라질 위기에까지 놓였다. 재학생들은 교장으로 복귀한 전 교감의 출근을 저지했다. 교감은 학생들을 협박했지만 학생들은 포기하지 않고 목소리를 냈다.
 
2001년 3월 22일, 6개월 넘게 기다린 최종판결의 날이 돌아왔다. 서울고법은 "공정하지 않은 절차로 이사에 선정된 원고들의 재단복귀로 재학생들이 수업거부를 하는 등 사태가 악화됐고 교육정상화가 불가능한 상태에 빠졌다. 학교법인의 설립목적을 달성할 수 없는 상태에서 임원 취임의 승인을 취소한 것은 정당하다"는 판결을 내렸다. 그토록 모두가 기다렸던 교장 일가의 패소 소식이었다.
 
이에 학생들과 학부모, 교사들은 눈물을 흘리며 환호했다. 상고심에서도 대법원은 고등법원의 판결을 확정했고, S고 사학 비리 사건은 1994년 이후 무려 8년 8개월 만에 비로소 정의로운 결말로 막을 내리게 됐다. 당시 S고 학생회장이었던 조연무씨는 "그전까지는 어른들을 믿을 수 없다고 생각했는데 그때는 어른들한테 조금 감사함을 가질 수 있을 거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라며 당시를 떠올렸다.
 
오랜 비리의 사슬을 끊어낸 S고는 관선 이사들과 함께 새롭게 시작했고 현재에는 새로이 강남의 명문으로 자리 잡았다. 또한 이 사건 이후로 선후배 사이가 더 끈끈해졌다고 한다. 조연무씨는 "학교 자체를 사랑하게 됐다. 계속 우리는 하나였다. 단순했다. 학교를 지키고 싶은 마음 때문이었다"라며 모두가 같은 목적을 위하여 함께 뭉쳤던 그날을 회상했다.
 
학생들이 내가 다니고 청춘을 보냈던 학교를 진심으로 사랑하고 자랑스러워할 수 있다는 것은 큰 축복이다. 그러한 자부심을 줄수 있는 교육환경을 만드는 것은 어른들이 해야 할 몫이다. 오늘날 학교를 둘러싼 여러 가지 논란들이 계속되고 있는 요즘, '학교의 존재'에 대한 진정한 의미를 돌아보게 만드는 대목이다.
꼬꼬무 사학비리 상문고 실화 사학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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