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생의 손 호미곶에 맑은 햇살이 찾아왔다. 눈이 부시게 반짝이는 윤슬과 함게 상생의 손이 한층 빛나고 있다. 연말을 맞이해 해돋이 행사 준비가 한창인 호미곶 해맞이 공원에서 바라본 상생의 손의 모습이다.
박희종
인류가 화합하고 화해하며 더불어 사는 사회를 만들어가자는 의미로 만들어진 조각상, 바다에는 오른손이 빛을 떠 올리고 육지에는 왼손이 받아낸다. 광장을 지나 만나게 되는 바다에도 영롱한 햇살이 내려왔다. 눈이 부시게 반짝이는 윤슬, 골짜기에서 만난 한없이 맑은 햇살이다. 맑고도 투명한 햇살이 바다에 떨어졌고 다시 반사된 그 빛은 하늘로 튀어 오른다. 눈 뜰 수 없는 지경의 햇살에 반짝이는 바다, 어떤 문명의 이기도 담아낼 수 없는 맑은 햇살을 즐기러 근처 카페를 찾았다. 누구도 다가갈 수 없는 아름다움에 정신줄을 놓는다.
해맞이 장소에 가득한 사람들의 소망
며칠 후면 수많은 사람들이 찾아 올 해맞이 장소엔 저마다의 소망으로 가득할 것이다. 올해도 12월 31일과 1월 1일에 해맞이 축전이 열린단다. 오래전 장독대에 숨어하던 내 어머니의 기도, 무뚝뚝한 내 아버지가 정월 보름달을 보며 했던 기도 속 소망은 인도의 갠지스강에서 만난 처절한 기도와 티베트의 오체투지 속에 넘쳐나던 처절한 기도와 무엇이 다를까?
네팔의 사랑콧 전망대에서 맑은 햇살을 보며 기도했던 소망은, 내 어머니의 기도와 아버지의 근엄한 절규 속에 다 숨어 있었다. 다름이 아닌 가족의 안녕과 자식의 행복을 기원하던 그 기도였으리라. 가끔 찾아가는 절집은 좋은 날도 괜찮고 외로워 쓸쓸한 날도 좋다. 할머니를 따라 부처님을 보며 하던 어린 손녀의 기도 속엔 소박한 내 가족의 건강과 행복이 담겨 있었다.
골짜기 앞뜰에서 만난 맑은 햇살은 젊은 날 히말라야의 언덕에서 만났던 맑은 햇살과 다르지 않았다. 간절곶의 밤에 만난 불빛과 호미곶에 내려온 맑은 햇살은 한해의 긴 어둠을 거두어 주는 빛이었다.
맑은 햇살을 보며 하는 소박한 삶의 기도는 늙어가는 육신의 건강과 내 가족의 아름다운 행복을 위한 기도였다. 이것이 아닌 어떤 기도가 또 있을 수 있을까? 맑은 햇살을 찾아 만난 아름다운 빛은 한 해를 마무리하고, 소박한 새해를 밝혀 주려는 신성한 빛이었다. 새해가 있어 또 행복한 하루, 새해가 찾아오면 뒷산에라도 올라 해맞이를 하며 또 소박한 기도를 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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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희무렵의 늙어가는 청춘, 준비없는 은퇴 후에 전원에서 취미생활을 하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글을 쓰고 책을 읽으면서, 가끔 색소폰연주와 수채화를 그리며 다양한 운동으로 몸을 다스리고 있습니다. 세월따라 몸은 늙어가지만 마음은 아직 청춘이고 싶어 '늙어가는 청춘'의 글을 쓰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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