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꽂이
박희정
책방지기의 개성이 흠씬 묻어나는 책목록이 반가웠다. 권윤덕의 그림책, 최종규의 엽서도 눈에 띈다. 힐튼 호텔 옆에 사는 노숙자들의 생애사도 정희진의 페미니즘, 아무튼 시리즈, 김중혁의 추천을 받은 소설도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 기지촌 여성을 다룬 <전쟁의 맛>을 손에 넣을 수 있어서 행운이었다.
책이 많으면 책에 치여 미처 읽지 못하고 매대에 올려놓는 경우도 있을 텐데 일일이 추천사를 써서 책을 전달하려는 그 간절함이 절절하다. 소수자, 약자, 평화, 생태에 관련된 책들을 구비하려고 노력한단다. 정희진 선생님이 들렀다 가셨다면서 <나의 해방일지> 촬영지도 함께 했다는 전설같은 이야기를 들었다.
광역버스가 저녁에는 한 시간에 한 대밖에 다니지 않는 시골이지만 '오늘과내일'을 일부러 찾아오는 손님들을 보면서 새삼 우리나라 사람들의 문화 시민력에 대해 경외감이 들었다. 자신의 방식으로 삶을 아름답게 사는 사람들이다. 촘촘한 문화생태계가 하늘의 별처럼 펼쳐져 있다.

▲가정집 개조한 책방
박희정
87년이던가? 고등학교 때 일본어 선생님이 이제는 비행기를 자유롭게 탈 수 있게 되었다고 감격에 마지 않으셨다. 카드 공중 전화기의 존재를 알려주시면서 선진 일본 문화라고 칭했다. 불과 삼사십 년 전이다.
이제는 손흥민 경기를 보러 런던에 가는 일이 별스럽지 않은 일이 되었다. 불현듯 독립책방에 가고 싶어서 지방 가는 버스를 타고 물어물어 오는 일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현대인은 이렇게 살 거라고 뭉뚱그려서 개성 없이 묘사하지만 자세히 바라보면 저마다 다 다르게 자신의 삶을 디자인하면서 살고 있다.
대중성이란 어쩌면 허상이란 생각이 든다. 십 대는 이렇고 사오십 대는 저렇고 칠팔십 대는 그렇다고 할 수 없다. 인생의 진도표는 다 깨졌고 생애주기도 제각각 다르다. 우리를 끝없이 범주화해서 상품을 팔려는 자본주의 속성을 얼른 깨닫고 개성 있게 문화적으로 사는 일이 이 지난하고 무미한 세계에서 살아남는 일일 수 있다.
2024년이 밝아오고 있다. 과오는 지나갔다. 발 밑을 살피고 머리를 하늘로 향하자. 유유자적하면서 설령 돈이 되지 않는 어리석은 일이라도 깊게 빠져 이 순간을 사랑하는 일로 채워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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