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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워드는 '불륜', 우리는 왜 이 여성들에 열광할까

<마에스트라>부터 <내 남편과 결혼해줘>까지, 이 드라마를 관통하는 키워드

24.01.12 13:24최종업데이트24.01.12 13: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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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N 드라마 <마에스트라> <내 남편과 결혼해줘>와 TV조선 드라마 <나의 해피엔드> 속 주인공들 ⓒ tvN/TV조선


뭐니 뭐니 해도 드라마에 '바람'만 한 MSG를 찾기는 어렵다. 갈등 상황에 자극적인 대사로 인해 시청률 상승은 물론, 오래도록 회자하는 명장면이 탄생하기도 한다.

2007년 방영된 SBS 드라마 <내 남자의 여자>에서 불륜 커플에게 "너 교양 있어? 교양 있는 게 그러고 살아?"라며 망신을 주는 배우 하유미의 대사는 10년이 훌쩍 넘은 지금까지도 회자될 정도다. 2020년 방영된 JTBC 드라마 <부부의 세계>에서 불륜을 변명하는 남자의 "사랑에 빠진 게 죄는 아니잖아"라는 대사 역시 당시 최고의 유행어로 자리 잡기도 했다.

불륜, 바람이라는 소재는 드라마 전개에도 효과적으로 작용한다. 사랑하는 이에게 배신당한 주인공은 각성하게 되고, 복수로 향하는 서사는 시청자가 주인공에게 이입하며 그를 응원하게 만든다. 드라마에 너무 몰입한 어르신들이 불륜을 저지르는 연기를 했을 뿐인 배우에게 욕을 하거나 손가락질을 한다는 웃지 못할 에피소드도 방송가에 횡행할 정도다.

2024년의 드라마 판에도 어김없이 '불륜'이 등장했다. 지난해 12월 2일 첫 방송된 JTBC 드라마 <웰컴투 삼달리>부터, tvN 드라마 <마에스트라>, TV조선 <나의 해피엔드>, 지난 1일 첫 방송된 tvN <내 남편과 결혼해줘>에 이르기까지. 최근 인기를 끌고 있는 이들 드라마 속 주인공들은 모두 상대의 불륜 또는 바람을 겪는다.

자세히 보면 다른 콘셉트와 줄거리의 드라마지만 분명 유사점이 있다. 주인공에게 남자친구, 남편의 바람은 이제 당하고만 살지는 않겠다는 각성 수단이 된다. 또한 여성 주인공의 곁에는 그를 돕는 남성 조력자가 있다. 그리고 이들은 모두 시련 끝에 성장한다. 같은 소재를 다뤘지만, 결코 양산형 드라마가 아닌 이야기들이다. 비슷한 시기에 시작한 드라마들 속에 모두 불륜, 바람 소재가 있다니. 이 드라마들은 시청자의 어떤 욕망을 짚어내고 있을까.

'네가 감히 날 버려? 난 신경 안 써'

해당 드라마에서 불륜은 중요한 사건이지만, 물론 서사의 전부는 아니다. 오히려 주인공의 극적인 감정을 촉발하기 위한 단기적인 매개에 가깝다. 그래서 드라마는 불륜이 주는 감정적 타격을 극대화하기 위해 남성 캐릭터의 설정을 양방향으로 구현한다. 모 아니면 도, 너무 순애보이거나 나쁜 남자로 묘사하는 것이다. 이 때문에 시청자들은 바람을 피운 그들을 더욱 괘씸하게 느끼게 된다.

예를 들어, <마에스트라> <나의 해피엔드> 속 남편들은 아내에게 헌신적으로 내조하는 유형이다. 자신만 사랑하는 줄 알았던 남편의 불륜을 까맣게 몰랐던 주인공들은 더욱 큰 배신감을 느낀다. 반면 <내 남편과 결혼해줘> 속 남편 박민환(이이경 분)은 툭하면 고함을 지르고 물건을 걷어차는 폭력적인 캐릭터로 그려지고, 그의 불륜은 오히려 예상 가능한 수순이 된다. 불륜을 목격한 주인공 강지원(박민영 분)은 심지어 남편에게 살해 당하고, 두 번째 삶을 얻는다. 이제 각성하고 복수할 기회가 온 것이다.

<마에스트라> 속 차세음은 전 세계 5%뿐인 마에스트라(여성 지휘자)로서 성공적인 커리어를 이어나가고 있지만, 인간 차세음의 삶은 외롭다. 엄마가 앓았던 레밍턴 병(가상의 희귀병)이 유전될까 두려워하며 가족을 철저히 외면하고, 엄마와 얽힌 트라우마를 극복하지 못한다. 그러나 외도를 저지른 남편이 자신의 병을 약점으로 쥐고 협박하자, 세음은 결단을 내린다.

직접 언론에 나서 자신에게 레밍턴 병이 유전될 수 있다고 고백하고, 오랫동안 외면했던 엄마와 재회하며 화해의 눈물을 흘린다. 알 수 없는 신체 통증으로 두려움에 떨 때 오케스트라를 지킨 건 자신과 갈등을 빚었던 단원들이다. 남편의 불륜을 통해 세음은 트라우마와 직면하고, 세상에 알리며 극복하게 되고 새로운 조력자인 단원들과의 신뢰 관계를 얻게 된다.

불륜으로 성장한 건 차세음만이 아니다. <내 남편과 결혼해줘> 속 강지원은 뜻하지 않게 10년 전으로 돌아가 새로운 삶을 얻게 되고, 복수를 위해 자기 삶을 처음부터 다시 가꾸려 한다. 불합리한 상사에게 동료들과 함께 대응하고 자신을 괴롭혔던 동창들의 잘못을 낱낱이 밝히는 등 내적 성장을 겪는다. 다시 태어난 강지원은 절친한 친구인 줄 알았지만 알고 보니 남편의 불륜 상대였던 정수민(송하윤 분)에게도 예전처럼 휘둘리지 않고 관계의 주도권을 잡기 시작한다.

해당 드라마는 불륜이 주인공에게 남긴 상처와 배신감보다 이를 통해 주인공이 내리는 선택과 결정에 집중한다. 주인공은 상대방의 불륜을 통해 개인적인 상처를 극복하며 동시에 남성 캐릭터와의 부정적인 관계에서 벗어나 새로운 인물들과 연결된다. 위기보다 기회에 가까운 불륜, 주인공의 성장을 위한 걸림돌보단 디딤돌인 셈이다.
 
"똥차가 가면 벤츠가 온다" 여전한 로맨스
 

JTBC 드라마 <웰컴투 삼달리>, tvN 드라마 <내 남편과 결혼해줘>, TV조선 드라마 <나의 해피엔드>에서 여성의 조력자를 자처한 남자들. ⓒ JTBC/tvN/TV조선

 
불륜을 겪은 주인공들에겐 조력자가 있다. 그들은 힘들 때 정서적인 버팀목이 되거나, 실질적인 문제 해결에 도움을 주기도 한다. 주인공을 돕는 인물에는 가족이나 친구, 동료도 있지만, <웰컴투 삼달리> <내 남편과 결혼해줘> <나의 해피엔드>처럼 남성 조력자가 핵심적인 경우도 적지 않다.

<웰컴투 삼달리> 속 조삼달(신혜선 분)은 전 남자친구가 바람 피우는 상대였던 어시스턴트 방은주(조윤서 분)의 거짓된 갑질 폭로로 모든 것을 잃고 고향으로 돌아온다. 그곳에서 어린 시절 친구이자 연인이었던 조용필(지창욱 분)과 재회하게 되고, 다시 연인의 기류를 띄게 된다. 용필은 삼달의 상처를 위로하며 헤어진 지 8년이 지났어도 한결같은 마음을 고백하며 삼달을 기대게 한다.

<웰컴투 삼달리>의 용팔이 정서적인 조력자라면, <내 남편과 결혼해줘> 속 유지혁(나인우 분)은 실질적인 해결사다. 10년 전으로 돌아간 강지원이 성관계를 종용하는 미래의 남편에게 시달릴 때, 일부러 배달 음식을 주문하여 관심을 돌린다. 또한 동창에게 복수하려는 지원을 돕기 위해 도움을 줄 만한 지인을 섭외하여 일부러 동창회에 보낸다. <웰컴투 삼달리>와 <내 남편과 결혼해줘>의 남성 캐릭터는 모두 주인공에게 이성적 관심이 있으며, 이를 토대로 조력자를 자처하며 관계를 진전시킨다.

한편, <나의 해피엔드>의 조력자는 정체가 모호하다. 주인공 서재원(장나라 분)은 주변 인물들의 사랑을 원동력으로 살아가는 인물이다. 그러나 진실이라 믿었던 계부(김홍파 분), 남편 허순영(손호준 분), 친구 권윤진(소이현 분)과의 관계가 모두 허상이었다는 것을 깨닫고 남편의 불륜마저 알게 되자 점점 흔들리게 된다. 서재원의 조력자는 회사 동료인 윤테오(이기택 분)로 보인다. 그는 스토킹에 시달리는 재원을 돕고 교통사고까지 내며 그를 지키지만, 동시에 유력한 스토커 후보로 꼽히고 재원의 숨겨진 비밀을 알고 있는 미스터리한 인물로 묘사된다.

세 드라마 모두 불륜을 겪은 주인공이 상처를 극복하거나 복수를 다짐할 때 남성 조력자를 등장시켜 새로운 이성 관계의 등장을 암시한다. 아이러니 하게도 드라마 속에서 주인공들은 남편, 남자친구가 사랑을 배반하고 바람을 피우는 사건을 겪고도 다시 사랑을 하려 하고 여전히 이들 드라마의 장르는 로맨스로 규정된다.
 
불륜 드라마의 진화, 그 이유는

최근 다시 인기를 끌고 있는 불륜 드라마들의 원형을 찾자면 2008년 방송된 SBS 드라마 <아내의 유혹>이 떠오른다. 주인공 구은재(장서희 분)는 얼굴에 점을 찍고 나타나 민소희로서 남편과 상대 여성에게 복수한다. 이로 인해 두 사람은 완전히 파멸을 맞고 바닷가에 뛰어들며 끝맺는다. 드라마의 핵심은 복수다. 자신의 이름을 버리면서 처절히 복수하는 주인공은 시청자에게 통쾌함 못지않은 씁쓸함을 남기기도 했다.

요즘 드라마의 복수법은 다르다. 씁쓸하기보단 속 시원하다. 주인공은 위기를 이겨내고 더 나은 삶을 만들어간다. 속칭 '사이다'에 가까운 셈이다. 남편 혹은 남자친구의 바람이 예전처럼 주인공에게 치명적인 흠이나 상처가 되지도 않는다. 오히려 불륜을 극복한 그들에겐 완벽한 새로운 사랑과 더 친해진 동료, 든든한 가족이 주어진다. 반대로 불륜을 저지른 남성 캐릭터의 이야기는 단편적으로 등장하며 주인공의 고난을 위한 수단적 역할로만 기능한다.

왜 다시 불륜 소재가 K-드라마 시장을 장악했을까? 믿었던 남자가 바람 피우고, 여자가 복수하는 서사에 사람들이 열광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점 찍고 나타났던 여성들은 이제 새로운 복수법으로 배신한 남성을 처단하고, 시청자는 환호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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