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3년 10월 5일 발행되어 배포된 금속노조 대우조선지회(정규직노조) 선전물 <새벽함성> 내용 중에서
대우조선지회
이 같은 차별의 일차적 원인은 돈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과연 그것이 전부일까? 한화오션 하청노동자를 1만 명이라고 하면 하청노동자도 정규직과 차별 없이 독감 예방접종 비용을 전액 지원하는 데 추가로 필요한 비용은 1억2000만 원이다. 물론 적은 돈은 아니지만, 단지 이를 아끼려고 하청노동자는 50%만 지원하는 것이 아니다. 작은 것 하나하나부터, 일상 곳곳에서 차별을 겪어야 하청노동자는 그 차별을 당연하게 여기게 되고, 그래야 구조적이고 더 큰 차별에도 순응하게 되기 때문이 아닐까?
일하는 데 필요한 자전거, 알아서 사라고?
한편으로, 어처구니없고 황당한 그러나 여전한 차별도 있다. 조선소에는 야드 내에서 대형 블록을 운반하는 트랜스포터라는 운송장비가 있다. 워낙 큰 블록을 운반하기 때문에 트랜스포터 한 대에 앞뒤 2명씩 신호수가 자전거를 타고 함께 따라다닌다. 업무시간 내내 트랜스포터의 운행 속도에 맞춰 앞뒤에서 따라가며 안전한 운행이 되도록 주변을 통제해야 하므로 신호수에게 자전거는 반드시 필요한 작업도구이다. 그런데 신호수가 업무 중 타고 다니는 자전거를 정규직 신호수의 경우 한화오션에서 무상 지급하지만, 하청업체 신호수는 사비로 구입해야 한다.
소규모 기업도 아니고 재벌 대기업 조선소에서 업무에 필요한 작업도구를 회사가 아닌 노동자가 사비로 구입해야 한다는 게 이해되지 않았다. 예를 들어 용접노동자에게 용접기와 용접봉을 사서 쓰라고 하면 말이 되는가.
더구나, 정규직에게는 당연히 무상 지급되는 자전거를 하청노동만 사비로 사서 써야 한다는 것이 황당했다. 그래서 단체교섭 때 하청업체에 자전거 무상 지급을 요구했다. 하지만 하청업체는 무상지급이 당연하다는 것에 동의하면서도, 원청 한화오션이 기성금에 자전거 구매 비용을 포함해주지 않으면 무상지급할 여력이 없다고 할 뿐이었다. 결국 조선소 모든 일이 다 그렇듯이 하청업체 신호수 자전거 무상지급도 원청 한화오션의 결정에 달린 것이다.
그러던 차에 작년 하반기부터 정규직 신호수에게는 전기자전거가 지급되기 시작했다. 온종일 자전거를 타고 다녀야 하는 신호수 업무 특성상 수십 년 신호수를 하면 근골격계질환이 발생할 수 있다. 그러니 노동자 건강을 위해서 전기자전거 지급은 환영할 일이다. 하지만 전기자전거 지급을 바라보며 하청노동자의 상대적 박탈감은 더 커졌다. 결과적으로 차별과 격차는 더 커졌기 때문이다.
이전까지는 정규직 노동자와 '동일하게' 자전거를 무상지급해 달라고 요구했다면, 이제는 정규직은 전기자전거를 지급하는데, 하청노동자는 일반자전거라도 무상지급해야 하는 거 아니냐고 요구하게 된 셈이다. 즉, 스스로 차별을 인정하고 받아들여야만 하게 된 것이다.

▲ 정규직 신호수 노동자에게 지급된 전기자전거
이김춘택
하청업체도, 정규직에게 전기자전거가 도입되었으니 이제 자전거를 장비 개념에 포함시켜 하청업체 신호수를 위한 자전거 비용을 원청 한화오션에 다시 요구해 보겠다고 한다. 한화오션의 반응이 어떨지 궁금하다. 정규직에게 전기자전거를 지급했으니, 이제 하청노동자에게는 일반자전거라도 무상지급되도록 할까? 아니면 하청노동자는 신호수 업무에 필수인 자전거를 계속 노동자가 사서 쓰도록 할까?
오늘도 조선소 직접생산의 80% 이상을 담당하는 하청노동자는 구조적으로 그리고 일상적으로 차별당하고 있다. 차별은 비정규직, 하청노동자가 시키면 시키는 대로 일하고 주면 주는 대로 받게 만들기 위해 필요한 매우 중요한 톱니바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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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10월 26일 출범한 사단법인 김용균재단입니다. 비정규직없는 세상, 노동자가 건강하게 일하는 세상을 일구기 위하여 고 김용균노동자의 투쟁을 이어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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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신, 자전거... 조선소에서 벌어지는 일상적 차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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