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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타 강사'가 성적 고민 해결? 민망한 고등학교 교실을 봐라

[TV 리뷰] 채널A <성적을 부탁해 티처스>

24.01.17 07:10최종업데이트24.01.17 0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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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널A <성적을 부탁해 티처스>의 한 장면. ⓒ 채널A

 
닭이 먼저일까, 알이 먼저일까. 교직에 첫발을 내디딘 이래, 지금껏 단 한순간도 머리를 떠나지 않은 질문이다. 물론, 정답을 알아내고 말겠다는 다짐 같은 건 애초 없다. '동네북'으로 전락한 우리 교육의 현실을 절감하며, 교사로서의 자괴감에서 나온 푸념인 까닭이다.
 
공교육의 붕괴와 사교육의 창궐. 학교 안팎에서 둘은 인과관계로 설명된다. 교사들은 사교육이 창궐하면서 공교육이 무너졌다고 말하지만, 여론은 정반대로 해석한다. 공교육의 수준이 낮아져서 사교육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고 한다. 교사가 무능한 탓이라는 이야기다.
 
있는 그대로의 현실부터 보자. 공부는 학원에서 하고, 시험은 학교에서 본다. 국영수 등 대입에서 열쇠를 쥐고 있는 과목의 경우, 학교 수업은 말 그대로 껍데기만 남은 형국이다. 그나마 대입에 별 영향을 주지 않는 한국사나 예체능 교과, 그리고 동아리 활동과 진로 탐색 활동 등 비교과 영역에서만 공교육의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국영수의 경우, 어느새 사교육의 선행학습은 기본이 됐다. 되레 '선행 과정을 몇 번 돌렸느냐'가 관건이다. 이젠 초등학생 때 미적분을 뗐다는 건 그다지 놀랍지도 않다. 고등학교 1학년 첫 시험 때 이미 의치대와 명문대 진학 여부가 결정된다는 건 삼척동자도 다 아는 이야기다.
 
고작 교육부의 조치는 '선행학습 내용 출제 금지'가 전부다. 학년 초엔 교과별 평가 계획서와 수업 진도표를, 학기 중엔 출제 원안을 별도로 제출하도록 하는 이유다. 서로 대조해서 어긋난 경우, 징계하겠다는 취지다. 시도 교육청에서 관내 모든 학교를 조사하려면, 아마도 별도의 담당 부서가 필요할 것이다.
 
꽤 오래전부터 시행됐지만, 과문한 탓인지 이로 인해 선행학습이 줄어들었다는 이야기는 듣지 못했다. 선행학습이 돼 있어야만 교과 진도를 어렵잖게 따라갈 수 있다는 걸 아이들도 알고 있다. 동료 수학 교사의 말을 빌자면, 학교 수업만으로 수능에서 1등급을 맞는 건 하늘의 별 따기라고 했다. 2023년 온 사회를 들끓게 했던 '킬러 문항 소동'을 떠올려보라고 했다.
 
단언컨대, 우리 공교육은 대입에 최적화한 사교육을 당해낼 재간이 없다. 사교육에 견줘 공교육의 수준이 낮다는 여론의 질타는 기실 학교가 학원이 되어야 한다는 말과 조금도 다르지 않다. 같은 출발선상에서 사교육과 공교육이 대입 실적 경쟁을 벌이라며 등 떠미는 것이다.
 
'동네북'으로 전락한 우리 교육의 현실
 

채널A <성적을 부탁해 티처스>의 한 장면. ⓒ 채널A

 
사교육이라는 말조차 생소했던 과거에도 공교육에선 대입 실적을 두고 학교 간 지역 간 치열한 경쟁을 벌이긴 했다. '명문고'라는 타이틀을 얻기 위해 아이들은 새벽부터 밤늦도록 수험서와 씨름했고, 교사는 몸을 갈아 넣었다. 이른바 '비평준화' 지역에서는 중학교조차 전쟁터를 방불케 했다.
 
맹목적인 대입 실적 경쟁과 학벌 구조의 고착화는 또 다른 '닭이 먼저냐, 알이 먼저냐'의 논쟁을 불러일으켰다. 논쟁이 가열될수록 교육 문제는 대입과 결부되어 누구도 풀 수 없는 '고르디우스의 매듭'으로 여겨졌다. 결국 이 뿌리 깊은 좌절감은 사교육에 날개를 달아준 꼴이 됐다.
 
이젠 교사들 누구도 교육개혁을 입에 올리지 않는다. 교육개혁은 선거철 공약으로 잠깐 소비됐다가 사라지는 달콤한 솜사탕 같은 것이라고 여긴다. 윤석열 대통령은 노동개혁, 연금개혁과 함께 교육개혁을 정부의 핵심 공약으로 내세웠지만, 다들 '현상 유지가 최선'이라고 말한다. 그냥 긁어 부스럼 내지 말라는 뜻이다.
 
그렇다고 현 정부만 탓하는 건 아니다. 역대 정부가 사활을 걸고 추진했던 교육개혁마다 늘 용두사미로 끝났다는 걸 알고 있어서다. 하나같이 변죽만 울려대다 흐지부지되는 전철을 밟았다. 선의로 시작한 교육개혁은 죄다 '개악'으로 귀결됐고, 공교육에 대한 불신만 팽배해졌다.
 
만시지탄이지만, 교육개혁은 공교육과 사교육이 서로 '제 갈 길'을 가도록 유도하는 것이어야 했다. 공교육의 목표와 사교육의 존재 이유는 엄연히 다른데, 장소와 운영시간만 다를 뿐 똑같은 내용을 가르치고 평가받는 교육 기관이 되고 말았다. 사교육이 공교육의 '보완재'를 넘어 아예 '대체재'로 자리매김이 된 게 화근이다.
 
교육개혁의 '흑역사'를 통해 깨달은 교훈이 있다. 대입 제도를 손봐서 사교육의 영향력을 줄이겠다는 정책은 필패라는 것. 정권이 바뀔 때마다 조변석개하는 대입 제도는 실상 사교육에 '선물'이었다. 대입 제도가 다양해지고 복잡해질수록 교육 환경의 변화에 발 빠르게 대처하며 적응력을 키워온 사교육의 영향력은 나날이 커질 수밖에 없다.
 
종편에 등장한 '1타 강사'
 

채널A <성적을 부탁해 티처스>의 한 장면. ⓒ 채널A

 
교육개혁이라는 배가 산으로 가는 와중에 종편까지 부화뇌동하며 공교육의 숨통을 조이는 형국이다. 급기야 사교육의 '1타 강사'가 출연해 중고등학생의 성적 고민을 상담하는 '에듀솔루션 버라이어티' 프로그램이 등장했다. 직역하면, 교육 문제를 해결해주는 예능이라는 뜻이다.
 
온 국민이 교육 전문가를 자처하는 현실에서 시청률은 걱정할 필요가 없어 보인다. "본 적 있느냐?"는 질문에 아이들은 "또래 중에 보지 않은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을 것"이라며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몇몇 아이들은 자신도 직접 출연해 컨설팅을 받고 싶다는 바람을 드러내기도 했다.
 
'1타 강사'는 교육부 장관 부럽잖은 우리 교육계 최고의 '벼슬'이다. 일국의 교육을 관장하는 장관의 이름은 몰라도, 교과별 '1타 강사'의 이름은 훤히 꿰고 있다. 대입에 목매단 아이들과 학부모들에게 그들의 가르침은 진리로 받아들여진다. 그들에게 장관직을 맡기면 좋겠다는 우스갯소리까지 나온다.
 
방송에서 다루는 교육 문제란 오로지 대입에 국한된다. '정시 파이터'의 성공 가능성을 면밀하게 분석해 조언해줄지언정 그것이 공교육에 끼치는 엄청난 파장에 대해선 일언반구도 없다. 상위권 대학으로 '레벨업'하려는 'n수생'만의 문제도 아니다. 고1 때 성적에 만족하지 못해 다시 고등학교에 재입학할 목적으로 자퇴를 결행하는 아이들도 적지 않다.
 
학교마다 고3 2학기는 개점 휴업 상태다. 교과 시간표는 있으나 수업이 제대로 이뤄질 리 없다. 수능 대비 자습 시간으로 운영되는 게 다반사다. 내신 등급이 산출되는 교과는 고2 때 대개 갈무리된다. 고3 교실은 수시 전형을 통해 이미 대학에 합격한 아이들이 뒤섞인 채, 말 그대로 각자도생의 아수라장이 된다.
 
1년을 투자해 성적을 '재부팅'하려는 고1, '수시충'과 '정시 파이터'의 갈림길에 선 고2, 반복적 문제 풀이 기계로 훈련받는 고3까지, 지금 고등학교의 교실은 차마 교육을 입에 올리기 민망할 정도로 만신창이가 됐다. 대입을 돈벌이 수단 삼은 사교육이야 그렇다 쳐도, 종편까지 숟가락을 얹는 건 당혹스럽다. 무릇 사회의 공기인 언론이라면, 정부를 향해 해결 방안을 요구하는 게 옳다.
 
방송의 '성공한 재수생'이라는 말이 귓가를 맴돈다. 1년 더 공부해 학벌 구조의 상위 서열로 올라섰다는 의미다. 지방대에서 '인 서울'로, '인 서울'에서 'SKY'로, 'SKY'에서 의치대로 갈아타기가 만만찮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러나 지난 수능 응시생 세 명 중 한 명이 'n수생'이고, 우리나라 최고 학부라는 서울대 공대가 '의치대 사관학교'로 불릴 만큼 심각한 상황이다.
 
'성공한 재수생' 이야기는 우리 공교육을 넘어 사회적으로도 득 될 게 없다. 당장 그러잖아도 과도한 재수 열풍을 부채질할 우려가 크다. 나아가 온존한 학벌 구조를 더욱 고착화하여 사교육 의존도를 심화시키게 될 것이다. 학원마다 명문대 합격자 명단을 큼지막하게 내거는 것과 별반 다르지 않다.
 
무엇보다 머릿속에 각인될 '성공한 재수생'의 '특권 의식'과 실패한 아이들의 열패감이 걱정스럽다. 서울대 공대생조차 의대에 진학한 친구와 비교하며 자신을 낙오자로 규정하는 현실이다. 이럴진대 '인 서울' 대학생들이 지방대생을 차별하고, 지방 사립대를 '지잡대'로 비아냥거리는 건 당연한 귀결이다.
 
사족. "학교는 대입 준비를 위한 훈련소가 아니"라고 했더니, 아이들조차 "현실과 동떨어진 이야기"라며 되받아쳤다. 우리 사회에 사교육은 필요악이라는 한 학부모는 '메기 효과' 운운하며 공교육의 성찰과 분발을 촉구했다. 이들의 가려운 곳을 긁어준 것뿐인데, 딱히 종편만 나무랄 일은 아닌 성싶다. 그나저나 이러다 '학교 무용론'이 나올지도 모르겠다.
성적을부탁해티처스 정시파이터 1타강사 재수열풍 학벌구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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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미뤄지고 있지만, 여전히 내 꿈은 두 발로 세계일주를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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