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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애는 안 하는데... 왜 연애 프로그램은 보냐고요?

[주장] 연애 프로그램 신드롬, 청년들의 불안과 욕망에 대하여

24.01.17 10:50최종업데이트24.01.17 1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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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애를 글로 배우는 시절은 이제 끝났다. 내 동년배들은 분기마다 돌아오는 연애 프로그램에 빠져 영상으로 사랑과 인간관계를 배운다.

지난 9일, 넷플릭스 <솔로지옥3>이 마무리됐다. 솔로지옥은 2021년부터 시작된 넷플릭스 시리즈로 식지 않는 화제성에 힘입어 최근 시즌 3까지 제작됐다. 
 

왼쪽부터 넷플릭스 <솔로지옥3>, 티빙 <환승연애3> 포스터. ⓒ 넷플릭스, 티빙

 

<환승 연애 3>도 탄탄한 시즌제를 이어가며 방영을 막 시작했다. 금요일 자정만 되면 '환승연애' 관련 키워드가 X(옛 트위터) 실시간 검색어를 장악했던 지난 시즌을 떠올리면 처음부터 정주행하는 게 현명한 선택이라고 합리화하게 된다. 다들 나와 비슷한 고민을 했던 걸까. 지난달 29일 첫 회차가 공개된 후 8일간, 티빙에는 지난 시즌보다 50% 이상 많은 유료가입자가 모였다고 한다.

아무래도 윗세대는 2030 세대 사이에서 일어난 '연프(연애 프로그램) 신드롬 현상'이 의아할 거다. "아니, 연애도 결혼도 안 한다면서 왜 이렇게 연애 프로그램에 몰입하고 열광하는 거야?" 싶지 않을까. 대부분 '대리 만족'이라는 키워드로 이 현상을 설명하고 이해한다. 역동적인 관계의 굴곡에서 느끼는 감정적 소모와 밥 – 카페 - 영화관 코스만 거쳐도 10만 원은 우습게 깨지는 도시에서의 데이트 비용을 감당하기란 쉽지 않기 때문이다. 

청년에게 경쟁에 이겨 생존하기가 최우선의 가치로 자리 잡으면서 연애와 결혼에 대한 욕망이 뒷순위로 밀린 것뿐이지 사라지진 않은 것 같다. 이 욕망이 대중문화에 투영된 것이라면 연프를 통해 한국 사회가 정의하는 연애와 결혼, 실제 청년들이 연애와 결혼에 소극적인 현실을 읽어보는 지표로 활용할 수 있다. 

<나는 솔로>로 읽는 한국 사회 결혼의 조건
 

<나는 솔로> 참가자가 자기소개 시간에 한 명씩 앞으로 나와 나이, 직업, 장거리 연애 가능 유무, 이상형 등을 이야기하는 장면 ⓒ SBS PLUS

 

최근 회식 자리에서 "환승 연애 보세요?"라는 이야기가 나왔다. 하나 둘씩 박수를 치면서 지난 시즌까지 줄줄 소환해 냈다. 최근 종영한 <솔로 지옥 3>도 정주행 한 사람들이 있어서 공감대를 살 수 있을 것 같아 <나는 솔로>도 보냐고 슬쩍 물었다. "엇, 저는 안 봐요"라는 선 긋기 대답에 내심 서운했지만, 20대 사이에서 <나는 솔로>가 어떤 위치에 있는지 확인할 수 있었다. 

취향이 곧 자신을 대변한다고 여겨지는 상황에서 <나는 솔로>의 애청자라는 사실은 어쩐지 숨기게 된다. 마치 막장 치정 드라마를 인생 콘텐츠로 뽑는 느낌이랄까. 아무래도 <나는 솔로>는 결혼이라는 목적을 이루기 위해 최종 커플이 되려는 출연자들의 몸부림만 부각하지 낭만적 사랑과 연애는 묘사하지 않는다. 20대가 연애 관계 속 적나라한 본심이 오가는 영상을 예능으로 즐기기엔 아직 시간이 더 필요해 보인다. 

기존의 연프가 수려한 외모, 취미, 성격 등의 매력을 강조해 정서적 교류가 새어 나와 가벼운 스킨십으로 이어지는 장면을 포착하고 보여줬다면 <나는 솔로>는 결혼 상대에게 요구되는 프로필을 쭉 나열한다. 첫인상 투표 이후 나이, 직업, 재산, 아이 유무 등이 밝혀지면 한 번의 지각 변동을 겪는 장면에서 '외모 오래 못 간다'는 말에 숨은 뜻을 발견할 수 있었다. 한국에서 연애는 짧고 굵게 불태우는 젊은 시절의 전유물이지 일상과 동행하는 가치가 아니다. 좋아하는 마음이 서로를 향하는 기적적인 순간을 소중히 간직하고 정성껏 유지하는 데에는 관심을 두지 않는다. 

대신 한국처럼 결혼, 주거, 양육에 일평생 모은 목돈이 들어가는 사회에서 연애가 결혼을 전제하면 개인은 기업 인사팀으로 변한다. 이 사람과 경제공동체로 묶였을 때 안정적인 생활을 꾸리고 아이를 양육할 수 있는지 손익을 따지는 것이다. <나는 솔로> 출연자들 또한 대화를 통해 현실적인 조건을 명확히 확인하려 든다. 장거리 연애를 할 경우 자신의 주거지로 직장을 옮길 수 있는지 묻고, 아이 교육 방식을 대화 주제로 풀어가는 식이다. 

<솔로 지옥3>, 솔직하고 본능적인 출연자들
 

<솔로 지옥3> 남성 출연자가 2명의 여성 출연자 사이를 두고 갈등하는 모습 ⓒ 넷플릭스

 
한편, 낭만적 연애를 강조한 프로그램 중에서 <솔로 지옥>은 <나는 솔로> 못지않게 출연자들의 솔직하고 본능적인 모습을 발견하려 든다. 강한 남성이 아름다운 여성을 쟁취한다는 고리타분한 문장을 프로그램 포맷으로 구현하는 것이 시작이다. 달리기, 닭싸움 등 오로지 '힘'으로만 승부 봐서 데이트 우선권을 가질 수 있는 룰 앞에서 출연자들은 순식간에 맹수가 된다. 

게임을 잘하는 모습도 물론 호감도에 영향을 미치지만 절대적이지 않은 것도 흥미롭다. 일대일 대화와 공동체 생활을 어떻게 하는지 지켜보면서 나와 맞는 사람인지 신중하게 따지는 과정이 감정선의 핵심으로 전개된다. 사랑을 확인하고 확인받는 와중에 가장 많이 언급된 단어가 있었는데, 바로 '표현'이다. 한마디로 '좋아하는 티'를 어떤 방식으로 누가 먼저 냈느냐가 서로의 선택에 큰 영향을 미쳤다. 

사랑을 시작하는 과정에서 상대의 패를 먼저 보아 확신을 얻고 싶지만 정작 자신의 마음은 숨기고 싶은 방어적인 자세가 러브 라인을 엉키게 만드는 것을 보면서 차라리 조건을 놓고 짜 맞춰서 연인을 결정하는 게 오해 없고 편리한 방식일 수 있겠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어쩌면 수많은 불확실성을 견디는 청년들에게 연애가 부담되는 것도 무수한 변수를 가진 인간에게서 오는 리스크를 감당하고 싶지 않은 마음일 수도 있겠다. 

연애 프로그램보다 내 연애가 더 재밌을 수 있을까? 

한겨레 21에 실린 <"우리 결혼 안 합니다" 생애 모델을 거부하는 사람들>(2023년 3월) 기사에 따르면, 과중된 불안감과 결여된 자신감, 리스크 회피 성향, 남녀 간 젠더 인식 격차 등의 복합적인 이유로 많은 청년들이 '연애 – 결혼 – 출산'이라는 생애 모델을 거부하고 있다고 말한다. 고민이 많을수록 '준비해야 할 것'은 늘어난다고 하는데, 나 또한 <나는 솔로>를 보면서 저 정도 스펙은 갖춰야 결혼 시장에 공개적으로 뛰어드는구나 생각했다. 

잘 짜인 드라마 한 편을 보는 마음으로 연프를 시청한다고들 말하지만 잘 들여다보면 그 '대리 만족'에는 여건과 상황이 나아진다면 '연애'와 '결혼' 모두 삶의 선택지로 들여놓을 의향이 분명히 있다는 것이다.

결국 청년들이 크고 작은 실패를 겪더라도 다시 일어날 수 있는 안전망을 사회가 만들어준다면 변화는 일어날 것이다. 상대방이 나에게 주는 확신보다 내가 상대방에게 갖는 감정을 깊이 탐구하면서 크고 작은 연애담을 쌓아간다면 연애 프로그램이 조금은 시시해지는 날이 오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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