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용관장성 평범한 병사 한 명이 수천 명을 막을 수 있다는 거용관 장성의 모습이다.
김대오
거용관장성 앞에 서자 여학생들은 계단 오를 걸 걱정한다. 마오쩌둥의 "만리장성에 오르지 않으면 사내대장부가 아니다"는 글귀가 새겨진 비석 앞에서 기념촬영을 하고 각자 자유롭게 장성을 즐기기로 한다. 두 발로 체험하는 것도, 두 눈에 담는 것도 각자의 몫이다.
성곽을 쌓지 않아도 넘기 어려운 이 험준한 곳에 굳이 이렇게 탄탄한 방어진지를 쌓아야 했던 절박함이 선뜻 마음에 와 닿진 않는다. 만리장성은 한족과 이민족, 농경문화와 유목문화의 경계로, 유교문화의 울타리로서 굳건히 기능해왔고, 인류역사가 남긴 가장 위대한 건축물 중 하나다.
남학생들은 두 번째 봉화대까지 거침없이 오르더니 지친 기색도 없이 빠르게 계단을 내려온다. 장성에서 뭔가 오랫동안 족적을 남길 수 있는 원대한 포부 하나쯤은 가슴에 품었기를 다만 바란다.
소통이 아닌 검색과 감시의 공간, 톈안먼광장
만리장성에서 내려와 베이징올림픽 주경기장이었던 냐오차오(鳥巢)를 경유해 톈안먼광장에 도달한다. 광장에 이르는 진입로에 대한 경계가 사뭇 삼엄하다. 사전 신청을 하고 여권을 제시해 남서쪽 검색대로 진입했는데도 또 한 번 검색이 이뤄지고 마지막 정밀 검색이 또 차례 이어진다.
이쯤 되면 광장의 의미가 무색하다. 광장은 그리스의 아고라처럼 누구에게나 열린 소통의 공간이 아니었던가. 검색을 통해 지키고자 하는 것은 무엇인가. 두려운 것이 많은 사회는 뭔가 많은 문제를 안고 있는 사회가 아닌가.

▲톈안먼광장 삼엄한 검색을 통과해 들어간 톈안먼광장, 또 등에 달린 수많은 CCTV의 감시를 받는다.
김대오
텐안먼 앞에서 국기하강식이 곧 개시되는지 인파가 모여든다. 굳이 기다렸다가 볼 것은 아니다 싶어 인민대회당, 모주석기념관을 둘러보는데 사방에 수십여 개의 CCTV가 관람객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고 있다는 게 느껴진다. 광장에서 열린 공간의 소통과 자유가 아닌 빅브라더가 지배하는 감시사회의 일면을 느껴야 하다니 뒷맛이 씁쓸하기만 하다.
라오서차관의 변검 공연

▲첸먼대가 전통건물과 화려한 조명이 멋진 야경을 연출한다.
김대오
톈안먼광장을 빠져나와 첸먼대가로 향한다. 취엔쥐더, 동인당, 두이추 등 오랜 역사를 간직한 상점들이 즐비한 곳이다. 중국에서 처음으로 철로가 개설된 곳이기도 한데 지금은 현대적 감각으로 재개발되어 조명과 전통 건물들의 조화가 멋진 야경을 이룬다. 베이징오리구이 저녁을 먹고 공연을 보기 위해 라오서(老舍)차관을 향한다.
라오서차관은 베이징 출신의 중국현대 극작가 라오서의 이름을 딴 소극장인데 경극, 만담, 짧은 단막극, 서커스, 변검 등의 공연을 볼 수 있다. 과거에는 국가원수급 내빈들이 찾는 곳이었지만 지금은 근처에 국가대극원 등 대형 공연장이 들어서서인지 관객이 예전처럼 많지 않다. 가장 인기가 많은 공연은 단연 변검 공연이다. 변검술사가 객석까지 내려와 관객 바로 앞에서 순간적으로 가면을 바꾸는데 너무 신기하고 재미있는 경험이다.

▲변검 공연 라오서차관의 공연의 기획력이 변검을 제외하고 다소 떨어진 느낌이다.
김대오
빠르게 변화하는 중국도 변검술사처럼 빠르게 얼굴을 바꾸고 있다. 사방에 붙어 있는 '문명'이란 글귀처럼 점점 세련된 문명의 얼굴로 바꿔가길 바란다. 그리고 그게 빅브라더가 감시하고 조정하는 문명은 아니길 또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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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베이징에서 3년, 산둥성 린이(臨沂)에서 1년 살면서 보고 들은 것들을 학생들에게 들려줍니다. 거대한 중국바닷가를 향해 끊임없이 낚시대를 드리우며 심연의 중국어와 중국문화를 건져올리려 노력합니다. 저서로 <중국에는 왜 갔어>, <무늬가 있는 중국어>가 있고, 최근에는 책을 읽고 밑줄 긋는 일에 빠져 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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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려 3번의 검색... 삼엄한 톈안먼광장에서 든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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