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곽상언 변호사가 받은 국정원 사찰문건. 2012년 6월 4일 작성된 것으로, 윤석열 당시 대검 중수1과장의 미국 출장에 관한 내용이 상세하게 적혀 있다.
곽상언 제공
이후 검찰은 미국 고급아파트 매입자금을 외화로 바꿔 송금해준 은아무개씨, 현금 13억 원이 담긴 상자 7개를 은씨에게 전달한 이아무개씨, 13억 원을 받은 아파트의 원소유자 경아무개씨, 돈의 출처로 의심받던 박연차 전 태광실업 회장 등을 조사했다. 특히 경씨는 2012년 5월 28일과 29일, 30일 연이어 소환조사를 받았다. 윤석열 검사의 미국행은 노정연씨 소환조사를 앞두고 이뤄졌다.
국정원은
<대검 중수부, 今週(금주) '노정연 13억원 밀반출 수사' 숨고르기 양상>이라는 문건(2012년 6월 4일 작성)에서 검찰이 환치기 형식으로 13억 원을 전달한 사실은 확인했지만, "자금출처가 어디인지, 노정연이 환치기에 적극 가담했는지 등은 추가확인을 통해 실체를 규명해야" 한다고 짚었다. 그러면서 6월 10일 윤석열 검사가 미국에서 귀국한 이후 수사상황을 보고받은 후 대검 수뇌부와 노정연 조사 관련 일정을 잡을 계획이라고 전했다.
이어 윤석열 검사의 미국행에 관한 내용을 제법 상세하게 서술했다. 6월 4일부터 8일까지 미국 워싱턴에서 열리는 세계은행 주최 반부패회의에 참석하기 위해 6월 1일 출국했고, 6월 4일 오전(한국시각)까지는 회의 개최지인 워싱턴이 아닌 뉴욕에 체류 중인 것으로 확인되고 있다고 전했다. 윤 검사가 뉴욕에 체류하면서 벌인 '수사활동'에 대해서는 이렇게 적고 있다(OOO는 국정원이 문건을 제공했을 때 지운 부분, 괄호 안 한글 표기는 편집자 주).
- 허드슨클럽 등 현장을 점검하는 한편, 인근 코네티컷州(주)에 거주하는 제보자 OOO 등 주요 참고인이 될 만한 인물을 비공개로 만나면서
- 국제회의 참석이라는 본래 목적과 함께 一石二鳥(일석이조) 활동을 전개중인 것으로 전해지고 있으며, 6.8 회의 종료 후에는
- OOO의 단골 도박장소이자 OOO가 노정연에게 급히 100만불을 보내라고 전화한 현장(OOO의 주장)인 코네티컷주 소재 폭스우즈카지노호텔도 둘러본 후 6.10 귀국할 계획
윤석열 검사가 세계은행 주최 반부패회의 참석을 빌미로 노정연씨의 미국 고급아파트 매입 의혹까지 수사하는 것을 "일석이조"라고 표현한 점이 흥미롭다. 특히 문건에서 "외국 수사기관 관계자가 美(미) 현지에 들어와 사건 관련조사를 임의적으로 하는 것은 불법이니만큼 처신에 각별 유의"라는 '각별한 조언'도 눈길을 끈다. 윤 검사가 사전에 미국 수사기관(FBI)와 협의하지 않고 노정연씨 관련수사를 벌였다면 '불법'이라는 뜻이다. 이는 국정원과 검찰의 긴밀한 공조관계를 보여주는 대목들이다.
이와 함께 국정원은 대검 중수부의 한 관계자가 "(2009년 검찰 수사 때 제기된 '140만 불과) 이번 환치기 100만 불까지 포함할 경우 240만 불에 거래가 완료되었다는 의심도 지울 수 없는 등 액수가 맞지 않는 부분이 있어 현재로서는 어느 것이 맞다고 단정할 수 없고, 확인작업을 거쳐 정확한 액수 확정과 함께, 노정연 조사에 대비한 신문항목 정리에 주력"할 것이라고 전했다고 적었다.
'정치적 기획수사'가 새겨진 국정원 사찰문건

▲ 윤석열 대통령이 2023년 2월 24일 국가정보원 청사를 찾아 2023년도 업무계획을 보고받기 전 방명록을 작성하고 있다. 왼쪽부터 김규현 국정원장, 김성한 국가안보실장, 윤 대통령. 방명록에는 "자유 수호를 위한 여러분의 헌신과 열정을 굳게 지지합니다"라고 적었다.
대통령실 제공
국정원의 곽 변호사 사찰문건 덕분에 기자는 12년 전에 품었던 윤석열 검사의 '미국 출장'에 대한 의심을 어느 정도 풀 수 있었다. 국제회의 참석은 명분이었고 '노정연 수사'가 미국 출장의 실질적인 목적이었던 것이다.
그래도 남는 의문 하나는 "노무현 대통령을 존경한다"라고 했던 윤 검사는 왜 '뉴욕까지 방문하면서 노정연씨 수사에 공을 들였을까?'다. 장모 사건 압력행사 의혹으로 대검 감찰까지 받게 되자 '위기탈출'을 위해서 대검 중수과장이던 윤 검사가 직접 뉴욕에까지 가서 수사활동을 벌인 것은 아닐까?
그런데 기자의 개인적 의심을 푸는 것보다 더 중요한 사실이 있다. 지금은 대통령이 돼 있는 윤 검사가 '정치적 기획수사'를 이끌었다는 점이다. 노정연씨 검찰수사가 검찰과 국정원의 긴밀한 공조에 의해 진행된 '정치적 기획수사'였다는 것은 국정원의 사찰문건에 뚜렷하게 새겨져 있다. "수사 템포를 적절히 조절", "정치적 부담도 상당", "대선 정국에 쟁점화되지 않도록 상황 관리", "연말 선거 일정을 앞두고 역풍을 맞을 가능성" 등 국정원 문건 속에 새겨진 단어와 문장이 이를 보여준다.
심지어 수사팀 안에서 "과태료 처분이나 1년 이하 징역, 벌금형 정도 형벌을 부과하기 위해 정치적 역풍을 각오하고 재판에 세울 필요가 있는가? 차라리 정부가 아량을 베풀었다는 시그널을 주는 것이 효율적이지 않냐?"라는 의견이 있다는 점을 전한 대목에서도 정치적 기획수사의 냄새가 진동한다(한문, 영문에 대한 한글 표기는 편집자 주).
- 조사방식을 두고 장고를 거듭했던 대검 중수부는... 여타 정치적으로 민감한 사건 수사 진행상황을 보아가며 수사템포를 적절히 조절하겠다는 내부 입장인데... 수사를 속전속결로 밀어부칠 경우 정치적 부담도 상당한 만큼, OOOO OOOO 등 다른 사건들과 '가닥을 맞춰가며' 템포를 조절키로 하고, 외부적으로는 에둘러 'low key(로우 키)' 스탠스 시현. (2012년 6월 12일)
- OOOOO은 OOOOO에게... 大選(대선) 변수에 노무현 관련수사가 쟁점화되지 않도록 상황관리에 주의를 기할 것을 주문. (2012년 6월 19일)
- 문제는 외화반출의 공범으로서 '불구속 기소'할 것인자, '무혐의' 처리할 것인지에 대해 OOOOO.OOOOO 또한 심적 부담 아래 아직까지 가닥을 잡지 못한 것으로 파악... 무리하게 기소해놓고 공판에서 혐의를 입증하지 못해 연말 선거 일정을 앞두고 1심 무죄 판결을 받을 경우 역풍을 맞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어... ★검찰 수뇌부는... '연말까지 노정연 관련 건을 끌고 갈 경우 得(득)보다 失(실)이 많을 수 있다'고 우려... (2012년 6월 19일)
- '11년 외국환거래법이 개정되면서 밀반출 금액이 50억 원 이하일 경우 '과태료 처분'토록 법이 완화되었고, 동사건 행위 시점이 '09. 1월인 점을 감안해, 법 개정 이전으로 소급 적용한다 해도 '1년 이하의 징역 또는 벌금형'인데, 그 정도 형벌을 부과하기 위해 '정치적 역풍을 각오하고 재판에 세울 필요가 있는가'라는 논쟁이 수사진 내에서 대두중으로, ... 차라리 '정부가 아량을 베풀었다는 시그널을 주는 것이 효율적이지 않냐'고 OOOOO에게 의견을 개진했는데, ★'이번 사건 하나만 보지 말고 넓게 보고, 큰 틀에서 결정하자'는 것이 내부 중론... (2012년 6월 22일)
- 수사진들이 불구속 기소 방향을 우려하는 이유는 ... 잘잘못을 떠나 노무현 추종 세력들을 감정적으로 단결시켜 연말 정국에 좋지 않은 영향을 끼칠 수 있다는 정무적 판단에 기인. (2012년 7월 6일)
추가로 풀려야 할 두 가지 의혹

▲함께 걷는 문 대통령과 윤석열 신임 검찰총장 문재인 대통령이 2019년 7월 25일 오전 청와대에서 윤석열 신임 검찰총장에게 임명장을 수여한 뒤 함께 환담장으로 이동하고 있다.
연합뉴스
윤석열 검사가 뉴욕 방문까지 하며 공들인 노정연씨 수사는 징역 4월에 집행유예 1년으로 마무리됐다(2013년). 앞서 진행된 검찰의 1심 구형량도 '징역 6월'에 불과했다. 전직 대통령의 딸을 상대로 한 대검 중수부의 정치적 기획수사치고는 초라한 성적표가 아닐 수 없다.
법원의 판결로 사건이 종결된 지 10년이 지났지만, 지금이라도 두 가지 의혹이 추가로 풀려야 한다. 먼저 대검 중수부에 봉인돼 있던 '노무현 수사기록'의 재검토를 '누가' 허락(지시)했는가다.
곽상언 변호사도 자신의 책에서 "윤석열 검사는 (노무현) 서거 3년이 지난 2012년에 '노무현 대통령 수사 기록'을 재검토했다"라며 "그가 누구의 허락이나 협조를 받아 어떤 방식으로 '보안을 유지'하면서 비공개 수사 기록인 노무현 대통령의 수사기록을 검토했는지 추후 밝혀져야 한다"라고 주장했다.
또한 국정원에 수사정보를 제공한 '대검 관계자'가 누구인지 밝혀져야 한다. 곽 변호사는 "이 문건에 등장하는 사람은 추후 반드시 어느 국가정보원 요원과 어느 정도의 업무 관계를 맺었는지, 그 국가정보원의 요원에게 어떤 정보를 누설했는지 등에 대해 반드시 수사받아야 할 것"이라며 "그의 행위는 '공무상 비밀누설죄'에 해당하기 때문이다"라고 지적했다.
곽 변호사가 국정원 사찰문건을 받은 시기(2021년 1월과 3월)는 문재인 정부였다. 하지만 문재인 정부는 앞서 기자가 언급한 '두 가지 의혹'을 제대로 확인하지 않았다. 곽 변호사는 "문재인 정부가 그것을 확인하지는 않았다"라고 말했다. 당시 검찰총장은 윤석열 현 대통령이고, 국정원장은 박지원 전 의원이었다. 두 사람 모두 문재인 대통령이 임명했던 인사다.
저작권자(c) 오마이뉴스(시민기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탈자 신고
댓글45
1970년 전남 강진 출생. 조대부고-고려대 국문과. 월간 <사회평론 길>과 <말>거쳐 현재 <오마이뉴스> 기자. 한국인터넷기자상과 한국기자협회 이달의 기자상(2회) 수상. 저서 : <검사와 스폰서><시민을 고소하는 나라><한 조각의 진실><표창원, 보수의 품격><대한민국 진보 어디로 가는가><국세청은 정의로운가><나의 MB 재산 답사기>
공유하기
2012년 '윤석열 검사' 미국행, 의문이 풀리다
기사를 스크랩했습니다.
스크랩 페이지로 이동 하시겠습니까?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