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필라테스 수업을 100번 넘게 들었다. (자료사진).
픽사베이
전혀 아니다. 놓았기 때문이다. 바뀐 것은 밖을 향하는 목표를 더 확고히 세우고 의지를 다진 것이 아니라, 내면이 변했기 때문이었다. 하루 이틀 삼일, 성취가 또 다른 성취를 낳은 것이 전혀 아니었다.
비웠기 때문이었다. 살을 빼야지, 근육을 더 키워야지, 일주일에 며칠은 꼭 가야지, 그런 계획이나 목표를 놓아 버렸기 때문에 가능했다고 나는 생각한다.
요즘, 주위 사람들이 어떻게 운동을 꾸준히 해? 하고 물으면, 나는 '그냥'이라고 대답한다. 정말 이유가 없이 그냥 하는 것이었다. 그냥이 또 그냥을 불러와, 계속해서 그냥 또 갈 수 있었다.
일주일에 세 번 가야지 하고 계획했을 때, 두 번 밖에 못 가면 나도 모르게 자기 비난이 올라왔다. 살을 5킬로 뺄 거야 했는데, 2킬로밖에 빼지 못해도 스리슬쩍 스스로 '너는 더 열심히 해야 해'라며 자책했다. 수영장을 6바퀴 쉬지 않고 돌았지만, 10바퀴를 돌 수도 있었는데, 더 열심히는 안되니? 라며 나를 채근했다.
그 목소리는 쉬지 않았다. 쉬지 않는 목소리에 나는 에너지를 빼앗기고, 의지를 잃은 채 의기소침해지기 일쑤였다. 그건 즐겁지 않았다.
지금은 다르다. 나는 리포머 위에서 다리를 스트레칭할 때, 허벅지 근육이 늘어나면서 느껴지는 약간의 고통이 너무너무 시원하다. 플랭크 자세를 하다가 등이고 허리고 아파오며 더는 못하겠다 싶을 때, 트레이너는 그만(stop)을 외치고, 그때 아이 자세로 손을 뻗어 등을 펼 때, 긴장된 근육이 쫙 풀리면서 잠시의 기쁨을 맛본다.
그 순간에 머물 때, 그 순간을 오롯이 소유할 수 있다.
밖으로 세운 목표나 의지가 아니라 순간의 느낌에 머물 때, 그것은 즐거움이 되었고 몰입이 되었다.
생각이나 감정에 빼앗긴 정신을 몸에 집중하고 들숨과 날숨으로 호흡하며, 통증 그 자체에 머물러 줄 때, 운동하는 그 순간은 명상과 같은 텅 빔으로 내게 머물렀다.
'하나, 둘, 셋..' 호흡과 동작을 반복하다 보면 하루치의 수업이 끝난다. 내일도 '하나, 둘, 셋' 그렇게 몸을 느껴주며 또 다른 클래스로 이어나간다. 그것이 10이 되고 100이 되면, 그것은 애쓰거나 의지를 내는 것이 아니라 하루를 채우는 일상이 된다.
총 100번을 채워 '100 classes'를 다 채운 날, 정작 나는 인지하지 못했지만 주변으로부터 100번을 격려하는 선물을 받았고 사람들과 사진을 찍었다. 약간의 근육이 생겼지만, 뱃살은 그대로이고 딱히 더 많이 건강해졌다고도 확언할 수는 없겠지만 말이다. 그래서 오늘도 '그냥' 왕복 40분 거리를 운전한다.
'그냥', 그렇게 당신도 '하나, 둘, 셋' 하고 한 번 시도해 보면 어떨까. 무엇이 아니어도, 무엇이 더 나아지지 않아도 '그냥' 이대로 나는 즐겁다. 즐겁다는 것이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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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찌 그리 꾸준히 운동해?'... 이러니 되더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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