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02.09 18:13최종 업데이트 24.02.09 18: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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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날에도 많은 자영업자들이 쉬지 않고 일하고 있다 (자료사진) ⓒ 연합뉴스

 
대한민국에서 자영업자들의 삶은, 명절처럼 국민 대부분이 가족과 함께 시간을 보내는 날에도 끊임없는 노동의 반복이다. 이들의 근면은 주목할 만하나 그 배경에는 깊은 고민과 어려움이 자리 잡고 있다.

예전에는 명절이면 가게 문을 닫고 가족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그러나 현대 사회의 변화와 함께, 명절 당일에도 문을 여는 자영업자들이 점점 늘어나는 추세다. 이러한 변화에는 몇 가지 요인이 있지만, 그중 가장 큰 원인은 바로 매출의 압박이다.


십여 년 전만 해도 명절에는 대부분 가정이 차례와 가족 모임에 집중하며 외부 활동을 자제했다. 자영업자들도 그날만큼은 큰 매출을 기대하기 어려워 자연스럽게 영업을 하지 않았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며 전통적인 명절 관습이 변화하고, 차례를 지내지 않는 가정이 늘어나면서 명절 연휴는 물론 당일에도 소비자들의 발길이 이어지게 되었다.

명절에도 가족과 시간 보내기 힘든 자영업자들

사회적 분위기가 이렇게 바뀌다 보니 자영업 중 특히 음식점들의 명절 연휴 영업은 이제 당연한 일처럼 되었다. 이와 관련하여 서울 용산구에서 프랜차이즈 피자를 하는 사장 A씨는 다음과 같이 이야기를 했다.

"전 창업한 지 얼마 안 되어서 그동안 명절 연휴 중 명절 당일은 당연히 쉰다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작년 명절 때 당일 다음날 가게를 열었더니 동네 배달대행 사장이 당일이 '대목'인 거 몰랐냐고 왜 닫았냐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이번에는 서둘러 차례 지내고 저녁에라도 가게를 열까 생각 중입니다. 왜 그렇게까지 하냐고요? 당연히 매출 때문이죠. 이렇게까지 누가 하고 싶겠어요. 알바에게 나오라고는 못 하겠고 혼자서라도 해볼까 생각 중입니다."

명절 영업은 휴업하는 가게들로 인해 오히려 고객을 끌어모을 기회가 된다는 계산도 자영업자들 사이에서는 중요한 고려사항이 되었다. 하지만 이러한 결정 뒤에는 '구인난'이라는 큰 어려움이 도사리고 있다.

명절 연휴 기간에는 대부분의 알바들 또한 가족과 함께 시간을 보내기를 원하기 때문에 인력을 구하기가 더욱 어려워진다. 이에 따라 각종 당근책을 사용하는가 하면, 가족 구성원을 동원해 영업을 지속하기도 한다.

광주광역시에서 프랜차이즈 치킨 매장을 운영하는 B씨는 다음과 같이 명절 연휴 상황을 이야기했다.

"제 기억에 명절 연휴를 쉬어 본 적이 없네요. 부모님 댁은 미리 가는 거죠. 어쩌겠어요. 이 일이 그런 걸. 이번 설에 일할 알바는 확보했어요. 당연히 명절 근무 인센티브는 지급해야지요. 월급 때 합쳐서 주지 않고 따로 돈 봉투 만들어 당일 줘요. 그래야 기분 좋을 테니까요. 우리 집 애들한테 미안하죠. 명절이면 아내가 가게와 집을 왔다 갔다 하며 챙겨줘요. 애들 좀 더 크면 이렇게는 안 하려고요. 좀 쉬엄쉬엄 일해야죠. 그런데 아직은 해야 하네요."

서울시 강동구에서 프랜차이즈 카페를 운영하는 C씨 사정도 다르지 않았다.

"명절이 어디 있어요. 특히 카페는 명절 연휴 때 가족들이 차례 지낸 뒤에 같이 모여 담소 나누는 장소가 되어서 더 잘 돼요. 그러니 쉴 수가 없죠. 그래서 저도 자영업 내내 명절 연휴를 쉬어 본 적이 없어요. 카페 창업 이전에는 편의점을 했거든요. 그때는 24시간 영업이다 보니 제가 37시간을 내리 근무한 적도 있어요. 설에 일할 직원이요? 1.5배 준다고 하면 다 나옵니다."

쉬지 못하는 게 '네 선택의 결과'? 
 

10일 오후 서울 강남구 코엑스에서 열린 '제70회 프랜차이즈 창업박람회 2023'에서 예비 창업자들이 상담을 받고 있다. 2023.8.10 ⓒ 연합뉴스

 
최근 명절 영업이 확대되는 추세에는 배달 플랫폼의 영향도 한몫했다. 배달 음식 주문 중계 시장을 장악한 이들은 '배달대행' 시장에도 진출하여 일명 '긱워커'로 불리는 플랫폼 노동자들을 끌어들였고 이 때문에 배달 음식점의 최대 고민인 배달 문제가 어느 정도 해결되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명절 영업을 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된 현재 상황을 이들 자영업자는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을까? B씨와 C씨는 자신의 심경을 이렇게 밝혔다.

"솔직히 말하면, 배민 같은 '배달앱'이 없거나 명절 때 배달 기사를 못 구해 영업이 곤란한 상황이라면 그 핑계로 닫고 싶어요. 어느 누가 명절 때 가족과 함께하고 싶지 청승맞게 가게에 나와 일하고 싶겠어요." -B씨-

"그전에 애들이 어렸을 때는 아내와 애들을 처가에 데려다주고 가게를 열었어요. 자영업하는 내내 명절을 지낸 적이 없어요. 그러니 가족들 마음은 불편하죠." -C씨-

이처럼 명절에 영업을 결정하는 자영업자들의 상황은 복잡하며 다양한 요인들이 얽혀 있다. 그리고 이들의 선택 뒤에는 단순히 매출을 높이려는 의도뿐만 아니라, 경제적 압박, 사회적 변화, 인력 관리의 어려움 등 여러 가지 고민이 존재한다.

대다수 사람들은 누군가의 선택이 순전히 개인의 의지에서 비롯된다고 생각한다. 이 때문에 특정 직업군이 겪는 애환을 단순히 '네 선택의 결과'라는 식으로, 개인의 책임으로 돌리기 쉽다. 하지만 조금만 들여다 보면, 그 선택이 사회적 압박으로 불가피하게 이루어진 경우가 적잖음을 발견할 수 있다.

요즘 대한민국은 '각자도생'이라는 시류 속에서 점점 더 메말라 가고 있다. 그러나 우리 모두가 사회 구성원으로서 타인의 어려운 삶, 특히 명절에도 쉬지 못하고 일해야 하는 자영업자들의 고단함을 공감하고 이해할 수 있다면, 이는 사회를 더 포용적이며 연대의식이 강한 공동체로 변화시키는 중요한 발판이 될 것이다. 이러한 변화를 통해 명절이 진정으로 공동체 전체가 함께 즐기고 나누는 시간으로 거듭날 수 있으리라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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