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민들이 건립한 영세불망비 하의3도 토지 재판 승소 후 1912년에 하의3도 농민들이 건립한 영세불망비로 가장 큰 비석이 일본인 변호사 고노 토라노스케(木尾虎之助) 불망비
신안군청
기념관 야외에 당시 농민들이 세운 불망비(不忘碑 : 어떠한 사실을 후세 사람들이 잊지 않도록 기록하여 세우는 비석) 5개가 나란히 세워져 있다. 중간에 가장 큰 비석은 일제강점기 재판에서 승소를 이끈 일본인 변호사 고노 토라노스케(木尾虎之助, 불망비에는 '고노 부쓰노스케'라고 표기)를 기리는 비석이다.
일본인이 판결한 재판에서 하의3도 농민들이 승소했음에도 일본인 토지주는 판결을 무시하고 다른 일본인들에게 팔았고, 하의 3도 농민들은 소작쟁의와 항일투쟁으로 대응했다.
해방 후 1946년 7월에 신한공사하의출장소를 불태우며 항쟁하는 등 항쟁이 지속되자 1948년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된 후 국회에서는 1950년 2월에 하의3도 농지에 대한 소유권이 하의3도 농민에게 있다며 무상 환원을 만장일치로 의결하였다. 그러나 1956년 이승만 정부가 무상환원이 아닌 유상환원으로 결정하자 농민들은 토지를 매입키로 했고, 정부는 토지 등기비용을 전액 부담키로 했다. 그러나 이승만정부는 약속을 지키지 않고 하의3도 농민들을 기만했다.
지난 380년 동안 9번이나 토지주가 바뀌었으나 하의3도 농민들은 세대를 넘으며 투쟁한 결과 1994년에 농지개혁사업 정리에 관한 특별조치법을 통해 등기이전을 추진하여 2005년까지 토지를 반환받았고, 2009년도에는 하의3도 농민운동 기념관을 건립하였으나 아직도 51필지가 도쿠다야시치(德田彌七) 명의로 되어 자산관리공사가 관리하고 있다.
섬 농민들의 숭고한 항쟁정신

▲하의3도 농민운동 기념관 박우량 군수가 하의북초등학교 자리에 2009년 건립한 하의3도 농민운동 기념관 실내는 역사의 땅, 항쟁의 땅, 평화의 땅으로 구성, 광장에는 추모기념탐과 조형물, 영세불망비 등이 있다.
신안군청
(사)하의3도농지탈환운동기념사업회 김수현 회장은 "360년 동안 치열하게 싸운 농민 투쟁사는 시대를 앞서간 역사로, 한을 넘어 화합의 역사로 전환되기 위해서는 행정안전부와 교육부, 국가보훈부 등 중앙정부 차원의 관심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밝혔다.
소작쟁의와 하의3도 토지탈환 투쟁 정신을 기리기 위해 매년 기념행사를 이끌고 있는 박우량 신안군수는 "신안 섬의 소작쟁의와 토지 반환 투쟁은 섬 농민들의 숭고한 항쟁정신이자 식민수탈에 항거한 독립투쟁 정신으로 시대를 밝히는 위대한 등대였다. 신안군은 위대한 농민들의 정신을 계승하기 위한 노력을 지속적으로 펼쳐 나갈 것이며 치열하게 싸운 농민투쟁가들을 지속적으로 발굴하여 독립유공자로 등록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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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법에 보장된 정의의 실현은 민주주의를 실현하는 과정이라 생각하며, 주권자로서의 권리를 지키기 위해 끊임없이 실천하는 시민들의 다양한 노력이 지속될 때 가능하리라 믿는다.
지방자치는 민주주의를 완성하는 토대이며, '민주주의 최후의 보루는 깨어있는 시민들의 조직된 힘'이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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