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마이스타

본문듣기

어떻게든 이름값하려는 '파묘' 감독의 뚝심

[리뷰] 영화 <파묘>

24.02.27 15:09최종업데이트24.02.27 15:10
원고료로 응원
* 이 글에는 영화의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장르영화의 황무지인 한국영화계에 장재현 감독은 가뭄의 단비 같은 존재다. 서양 엑소시즘을 한국에 복각해 놓은 <검은 사제들>에서 시작된 그의 영화세계는 사이비 종교를 탐색하다 믿음에 관한 탄식을 남긴 <사바하>까지 이어졌다. 황무지를 외로이 개간하고 있는 장재현 감독은 여기서 한발 더 나아가 한국 사람들에게 익숙한 무당, 풍수지리를 살피며 땅을 파는 지관까지 자신의 영화세계에 데려와 <파묘>를 만들었다.

<파묘>는 그의 작품 중 가장 한국적인 오브제들이 대량으로 배치된 작품이다. 무당과 씻김굿, 조상의 묫자리를 점지해 주는 지관은 한국문화권에서는 그리 낯선 존재가 아니다. 비단 소재뿐만 아니라 캐릭터 간 관계와 설정들도 한국적이다. 소위 MZ스러운 무당들과 이전 세대 지관-장의사 간 직업의식 차이, 그럼에도 결국 사람들을 위하는 마음으로 일을 하려는 직업윤리, 가늠할 수 없는 부를 지닌 재벌가 집안의 실체까지.

한국 사람들에게는 이미 미디어에서 여러 번 재생산을 통해 목격한, 꽤나 일상적인 장면이다. 6장으로 구성된 영화는 3장까지 이르러 가장 한국적인 엑소시즘을 선보이며 장르 영화의 쾌감을 십분 발휘하는데 성공해낸다.

영화가 말하는 단점과 한계, 그럼에도
 

▲ 영화 속 씻김굿을 하는 장면. 영화 <파묘> 스틸 이미지 ⓒ ㈜쇼박스

         
<파묘>는 4장에서 이야기의 방향을 급선회한다. 의뢰인의 묘를 파헤친 후 벌어지는 참사의 원인은 다름아닌 일제강점기-군사주의 시절부터 이어져온 일본의 잔재이자 한국의 상흔이라는 것이다.

미스터리 스릴러의 모호성으로 장르적 쾌감을 일으키던 영화는 돌연 그 실체를 전면으로 드러내는 선택을 한다. 한국의 역사적 상흔을 장르적으로 되짚고자 하는 시도가 이전부터 없었던 건 아니지만, 최근 한국영화에서는 확실히 보기 드문 행보다.

전작에는 보이지 않았던 장르전환을 지켜보면서 이렇게까지 급선회할 필요가 있었나 싶었지만, 장재현 감독은 사실 줄곧 이런 식으로 자신이 하고픈 바를 끝까지 밀어붙이는 사람이었다. 우스갯소리로 <파묘>를 한 줄로 축약해 본다면 '장재현의 황당무계한 tv 서프라이즈'다.

그렇지만 이 영화를 미워할 수 없는건, 영화 스스로 자신의 단점과 한계를 알고 있음에도 이를 숨기려 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상업영화로서 일종의 타협점일지도 모르겠다. 장재현 감독은 인터뷰에서 "전작 <사바하>가 이해하기 어려웠다는 후기를 읽었었다"고 말한 바 있다. 상업적 흥행 실패를 겪은 그였기에 이런 선택은 일종의 실험일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살풀이와 음양오행을 단순히 세계관을 치장하는데 쓰이지 않고 이야기의 중심으로 배치-활용했다는 것만으로도 <파묘>는 어설픈 장르영화와는 거리가 먼, 속이 꽉 찬 영화다.
 

▲ <파묘>는 과거를 파헤치는 행위이기도 하다. 영화 <파묘> 스틸 이미지 ⓒ ㈜쇼박스

 
영화의 제목을 다시금 톺아본다. '파묘(破墓)'는 이장하기 전에 묘를 파헤치는 행위다. 이는 상징적으로 대한민국의 잠들어있는 과거를 다시 들여다보는 행위이기도 하다. 영화 속 인물들은 일상으로 돌아갔지만 불현듯 느끼는 불안과 통증은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이는 오래 전 일제강점기 시절부터 이어진 역사적 상흔을 상징한다.

장재현 감독은 묻혀버린 역사를 다시 파헤치면서, 국가적인 상처를 애써 잊으려 하지 말고 들여보며 회복해 나가야 한다고 말한다. 그런 점에서 <파묘>는 이름값을 톡톡히 해낸 영화다. 비록 모두를 만족시키는 안정적인 드라이브는 아닐 테지만, 자신만의 스타일이 확실한 '파묘'는 황무지였던 한국 장르영화계에 튼튼한 나무 한 그루가 되어줄 것이다.
덧붙이는 글 개인 SNS에 업로드되었습니다.
영화 최민식 파묘 장재현 오컬트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서비스 노동자. 그리고 플랫폼 노동자. 사회와 문화의 전반적인 감상을 글로 남기려고 합니다.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