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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그 때 그 곳에 있었어야만 했다

[리뷰] 영화 <패스트 라이브즈>

24.03.14 13:58최종업데이트24.03.14 13: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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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패스트 라이브즈> 스틸 ⓒ CJ ENM


*주의! 이 기사에는 영화의 스포일러가 포함돼 있습니다.

우리가 살면서 겪는 수많은 일 각각을 하나의 역사적 사실이라고 한다면, 기억은 모든 역사적 사실 중 자기 스스로 선별한 일부일 것이다. 그리고 추억이란 같은 과정을 통해 마음 속 깊이 안착한 기억들의 모음이다. 추억은 앞으로 걸어나가는 발걸음을 가볍게 해주기도 하고, 걸음 중 잠시 쉬어갈 때 감정적 안식처가 되어 주기도 한다. 그렇게 추억, 그리고 기억은 우리의 삶을 보다 풍요롭게 만들어준다. 그렇다면 기억으로도 남지 못한 무수히 많은 역사적 사실들의 말로는 어떠할까. 그들은 아는 체 하는 사람 하나없이 그저 허무하게 사라져 버릴 존재들일까.

"우리가 그때 그랬더라면"이라는 대사가 헤어진지 24년 만에 재회한 해성의 입에서 발화됐을 때, 노라와 관객은 본능적으로 그 '만약'의 세계를 상상하게 된다. 극 중 노라의 미국인 남편인 아서가 직접 언급할 정도로 흥미로운 노라와 해성의 이야기는 로맨스 영화 특유의 클리셰에 적극 부합하는 이야기지만, <패스트 라이브즈>는 그 전형성에 올라 타기를 거부한다. 그리고 다른 영화적 경로를 통해 도달하고 자 하는 목적지로 향한다.
 
영화는 등장 인물간의 대화 도중에도, 심지어 '보이스 오버'(배우가 화면에 보이지 않는 상태에서 배우의 목소리를 들려주는 기법-편집자 주)를 사용하면서까지 이들이 살고 있는 장소와 주변 풍경을 집요하게 포착한다. 2000년 12살이라는 시간과 서울의 같은 학교, 같은 동네라는 공간에 해성과 나영은 함께 수없이 많은 나이테를 스크린에 새긴다. 그리고 카메라는 그 모든 몸짓을 담을 수 없으니 그들이 있었던, 있었어야만 했던 삶의 터전을 온 힘을 다해 보여준다.

12년이 지나도 마찬가지다. 해성이 군대에서 제대한 대학생이 되고 나영이 노라가 되어 뉴욕에서 유망한 연극학도가 되어도 카메라는 해성과 노라의 스카이프 대화 장면 만큼 그들이 활동하고 있는 지금 그 곳의 풍경을 담는 것을 놓치지 않는다. 이러한 장면른 곧 '인연'이라는 키워드와 결합하여 영화적 화학 작용을 발생시키는데, 이게 바로 <패스트 라이브즈>가 통과하는 영화적 경로이다.

극 중 노라는 '인연'에 대해 두 번 설명한다. 한 번은 해성과 12년 만의 연락을 끊고 들어간 작가지원 숙소의 모든 친구들 앞에서고, 한 번은 그 자리에 아서만 남았을 때다. 전자의 경우 나름 진중하게 인연의 사전적 정의에 대해 말하지만 후자의 경우 사랑하는 이에게 작업을 걸기 위해 내뱉게 되는 말이라는, 전자의 설명보다 어찌보면 납작한 단어로 묘사한다. 그렇게 노라의 입에서 영화 상에 처음 던져진 '인연'은 자신이 탄생한 시퀀스의 앞뒤로 생동하기 시작한다.

이러한 영화적 움직임을 통해 관객은 해성과 나영의 첫 등장 신부터 시작해, 이 영화에서 지금까지 자신들이 보아온 그들의 모든 역사적 사실을 기억으로, 그리고 추억으로 멋대로 진화시킨다. 이 진화가 바로 앞서 말한 숏과 인연의 화학 작용의 결과다. 그러나 애석하게도 이 지점에서 관객과 해성, 노라의 태초적인 영화적 권능 차이에서 비롯한 인식의 불일치가 발생하게 된다.

관객과 달리 그들은 영화에서 서로가 인연임을 자각하지 못 한다. 아니 못 해야만 한다. 헤어진 지 12년 뒤, 24살의 해성은 노라에게 인연에 대한 설명을 듣지 못 했고, 같은 시기 노라는 해성을 향해 인연에 대해 말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이는 두 인물이 자신들의 관계에 있어 진정한 자각을 위해서는 단순히 인연이라는 단어를 아는 것을 넘어, 서로 대화와 소통이라는 연결선을 통해 이어져야함을 의미한다. 중간에 끊어진 연락과 함께 연결되지 못한 둘은 이후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그들이 있어야 할 곳으로 유유히 흘러가게 된다.
 

영화 <패스트 라이브즈> 스틸 ⓒ CJ ENM

 
영화의 종반은 뉴욕을 향한다. 드디어 24년 만에 다시 한 번 해성과 노라가 같은 물리적 공간에 위치하게 된다. 그러나 12년 전 두 사람이 염원하던 한 공간에서의 재회는 생각만큼 낭만적으로 그려지지 않는다. 노라의 말대로 해성은 너무 '한국인'이고 자신은 한국계 '미국인'으로 커버렸기 때문이다. 소통의 단절로부터 시작된 두 사람의 나이테는 너무나도 달라져 있었다. 뉴욕에서의 첫 만남에서 해성과 노라가 (관객이 기대했던) 유려하고 흥미로운 대화보다 그저 '와 (진짜) 너다' 같은 감탄사만을 반복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가 바로 여기 있다.

이와 같은 두 인물의 감정적 간극을 매워주기 위해 등장한 게 바로 '전생'이다. 앞서 노라의 인연 설명에서 같이 언급된 전생은, 해성이 뉴욕에 도착하고 나서야 본인의 역할을 수행하게 된다. 바로 두 인물의 사고에 가능성을 심어주는 것이다. 그 때 내가 그랬던 것도, 거기 있었어야 했던 것도, 그래서 우리가 이렇게 얽히게 된 것도 '어쩌면 전생에 우리 관계에서 시작된 마법같은 운명은 아니었을까' 하는 가능성. 그 가능성은 결과적으로 이뤄지지 않는 두 사람의 비련적 마침표를 쉼표로 바꿔 준다. 즉, 그들이 이뤄지지 않는다는 건 분명한 사실이지만, 그 사실이 그대로 기억과 추억으로 치환되는 게 아니라 유동적 상태로 남게 되는 것이다.

해성은 노라와의 마지막 이별의 순간 '지금 우리의 현실도 어쩌면 다른 세상의 전생이라면, 그 세상의 우리는 이뤄졌을까'라는 말과 함께 그건 모르는 거라는 말을 덧붙인다. 그리고 해성이 그 말을 건네기 전 영화의 화면은 일순간 두 인물이 마지막으로 헤어지던 24년 전의 그 시간과 그 장소를 비춘다. 이는 해성의 말이 노라에게 닿게 되는 건 분명 2024년 뉴욕이지만 그 순간에 그들이 그 곳에 있을 수 있는 건, 끊어진 줄 알았던 인연의 실이 닿을 수 있었던 건, 결국 그들이 24년 전 그 곳에서 헤어졌기 때문임을 역설한다. <패스트 라이브즈>는 이와 같은 시공간적 삶의 모순과 자신도 모른 채 인연에 이끌려 추억이 아닌 역사적 사실들을 묵묵히 경유해 온 두 사람을 영화만의 방식으로 위로한다.
영화 영화리뷰 패스트라이브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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