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샤토 랭쉬 바쥬의 소유주 장샤를 카즈 장샤를 카즈(Jean-Charles Cazes)가 샤토 랭쉬 바쥬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임승수
첫 시음에서는 샤토 오 바타이 베르소 2017와 2020이 동시에 등판했다. 장샤를 카즈는 시음회 참가자들에게 3년의 숙성 차이를 염두에 두고 비교 시음해 보라고 조언했다. 둘 다 블렌딩 비율이 같아서 카베르네 소비뇽 60%, 메를로 40%를 섞어 만들었으며 12개월 동안 오크통에서 숙성한 후 병에 넣었다. 와인서쳐 앱으로 해외 평균 가격을 확인하니 약 4만 원(세금 제외)이다.
일단 향에서부터 확연한 차이를 보였다. 2017은 봄바람에 꽃가루가 휘날리듯 잔 속이 향기로 가득 차서 코를 가까이 대기만 해도 대번에 향이 느껴졌다. 하지만 2020은 마치 봉오리가 닫힌 꽃과 같아서 코를 잔 속으로 깊숙이 밀어 넣어야 그나마 향을 맡을 수 있었다. 평론가 점수를 찾아보니 2017보다 2020의 점수가 대체로 더 높다. 잠재력으로 본다면 2020이 더욱 뛰어난 와인이라는 의미다. 결국 괜찮은 보르도 와인을 충분히 숙성하지 않은 채 마시면 향에서부터 손해를 본다.
입에서도 같은 결론이 나왔다. 2020은 확실히 과실 집중도가 좋고 잠재력이 느껴지긴 하지만 타닌이 강해 다소 떫다. 맛이 부드러워지기 위해서는 숙성 시간이 필요한 것이다. 반면에 2017은 너무나도 매끄럽고 편해서 술술 넘어간다.
잠재력을 고려한다면 잘 숙성된 2020이 더 뛰어난 모습을 보여주겠지만, 지금 당장 무엇을 더 선호하느냐고 묻는다면 망설임 없이 2017을 선택할 것이다. 해외 평균 가격 4만 원대의 보르도 와인도 빈티지(포도 수확 연도)로부터 7년 정도는 지나야 제 모습을 보여준다는 얘기다.
베토벤이 38세가 되어서야 교향곡 5번 '운명'을 세상에 내보였는데, 만약 30살에 사망했다면 후세대 사람들은 이 명작을 감상할 수 없었을 것이다. 숙성 잠재력이 높은 보르도 와인을 일찍 열어 마시는 건 베토벤이 운명 교향곡을 쓰기 전에 생을 마감하는 것과 같다. 뛰어난 보르도 와인의 절정기를 경험하기 위해서는 인내심이 필요하다.
두 번째 시음은 샤토 오 바타이 2017과 2018이었다. 장샤를 카즈는 참가자들에게 떼루아의 차이를 염두에 두고 시음하라고 조언했다. 떼루아는 천지인(天地人), 그러니까 기후(天), 땅(地), 사람(人)처럼 와인을 만드는 데 영향을 끼치는 제반 요소를 일컫는 말이다.
샤토 오 바타이 2017과 2018에서는 숙성의 차이보다는 떼루아의 차이가 훨씬 선명하게 드러날 것이라는 힌트를 준 것이다. 땅도 같고, 만든 사람도 같으니, 아무래도 기후의 차이가 결정적 요소로 작용했을 것이다. 와인서쳐 앱으로 샤토 오 바타이의 해외 평균 가격을 확인하니 약 9만 1천 원(세금 제외)이다.
빈티지별로 블렌딩 비율이 달라서 2017은 카베르네 소비뇽 66%에 메를로 34%이며, 2018은 카베르네 소비뇽 59%에 메를로 41%이다. 오크통에서 16개월 동안 숙성한 후 병에 넣었다. 평론가들은 대체로 2018 빈티지를 더 높게 평가했는데, 두 와인의 향과 맛을 비교해 보니 그 이유를 알 수 있었다.
2017에 비해 2018의 향이 더 강하고 화사하며 묵직하다. 2017년보다 2018년 날씨가 더 좋았구나. 그래도 1년 선배라고 2017이 마시기에 좀 더 부드럽고 편한 느낌이었지만 둘 중 하나를 선택하라면 주저 없이 2018을 잡을 정도로 기량 차이가 컸다. 몇 년 더 지나 충분히 숙성되면 얼마나 맛있어지려나. 품질의 차이는 가격에도 반영되어 2017의 해외 평균가가 9만 3천 원(세금 제외)인 반면 2018의 해외 평균가는 10만 8천 원(세금 제외)이다.
그야말로 헤비급 와인

▲ 샤토 랭쉬 바쥬 2014.
임승수
드디어 대미를 장식하는 샤토 랭쉬 바쥬 2014 등장이다. 4년 전에 만났을 때는 서로 서먹서먹했는데 오늘은 어떨지 궁금하구나. 와인서쳐 앱에 나오는 해외 평균가는 무려 19만 6천 원(세금 제외)! 그야말로 헤비급이다. 잔을 코에 가져가니 향기의 집중도와 궐리티에서 앞선 와인들과 격이 다르다. 코에서 한껏 기대감이 높아졌음에도 불구하고 네 기대치가 왜 이렇게 낮냐며 비웃는 듯 입에서 잭팟이 터진다. 와우!
마시자마자 감지되는 가장 큰 차이점은 입에서의 질감이다. 최고급 순면 이불에 얼굴을 파묻을 때나 느낄 법한 보드라움이 구강 내부를 스친다. 앞서 마신 멀쩡한 와인들이 상대를 잘못 만나 졸지에 깔깔한 모시옷으로 전락한다. 그 매끄러움과 보드라움에 이어 숨 쉴 틈 없이 몰아치는 농익은 과실 향과 은은하면서도 견고한 타닌 또한 일품이다.
이게 2020년에 마셨던 녀석과 같은 와인이라니! 믿을 수가 없다. 4년 만에 어마어마하게 진화했구나. 그때 서먹서먹했었던 건 전적으로 인내심이 없었던 내 탓이다. 일찍 마시면 안 되는 걸 머리로는 알고 있지만, 견물생심이라고 근사한 보르도 와인이 눈앞에 얼쩡대니 손이 조건반사적으로 움직인다.
이제 어린 보르도 와인은 셀러 저 구석에 처박아 놓고 몇 년간 거들떠보지도 않으련다. 참는 자에게 복이 있나니 천국이 너희 것임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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