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만죽재,무섬마을에서 가장 오래된 고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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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에는 지역 항일의 중심이었던 이 마을에 있는 '아도서숙'이 항일운동의 중심 역할을 했다. 1931년 9월, 일경 1개 소대가 '아도서숙'으로 몰려와 무섬마을 청년 18명을 체포해 굴비처럼 한 오랏줄에 엮어 외나무다리를 건너 압송했다고 한다. 1933년 7월에는 일경이 아도서숙에 불을 질러 강제로 폐쇄시키고 말았다. 5명의 독립운동가를 배출한 무섬마을은 마을 단위로는 전국에서 가장 많은 독립운동가를 배출한 마을이다.
만죽재는 여러 채의 집이 있는데 그중 내가 묵기로 한 집은 안채, 집은 경북 지방의 전통적인 건축양식이라는 ㅁ자 구조였다. 중간에 마당이 있고 ㅁ자 형태로 안채, 사랑채, 부엌 등이 마당을 감싸고 있었다. 마당에는 아마 우물이 있었던 자리를 메운 듯한 자리에 수도가 설치 돼 있었다. 아직 추운 날씨에 얼지 말라고 수도물을 약하게 틀어놓아 수도가에는 맑은 물이 졸졸 흘러 나오고 있었다.
삐걱이는 소리를 내는 오래된 마루 위 살강에는 손님들을 대접하던 다양한 형태의 소반이 여러 개 놓여 있어 이 집안의 가세를 짐작할 수 있었다. 화장실이 문을 열고 나간 집 뒤쪽에 있고 침대도 없는 작은 옛날 방에 이불을 펴고 자야 했지만 3백 년이 훌쩍 넘는 고택에서의 하룻밤은 또 다른 정취를 안겨 주었다.

▲ 만죽재의 마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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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새 봄비 치고는 세찬 비가 내렸다. 빗소리는 마치 ASMR처럼 밤새 지붕을 두드렸다. 설핏 잠이 깰 때마다 빗소리를 들으며 다시 잠이 들었다.
150미터 외나무다리를 혼자 걷는 호사
다음 날 아침, 해가 뜨기도 전 다시 외나무다리로 향했다. 강변에는 물안개가 낮게 내려앉아 있었다. 간혹 왜가리를 비롯한 새들이 날아올라 몽환적이기까지 했다. 아마 '고향'이라는 단어에 막연하게 떠올리는 풍경이 바로 이런 풍경이 아닐까 싶었다.

▲ 물안개내려앉은 새벽의 외나무다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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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 밑으로 강물이 흘러가는 150미터의 외나무다리는 어제 한번 건너본 덕에 내딛는 걸음이 훨씬 수월했다. 외나무다리 옆으로 강물은 그다지 깊어 보이지 않지만 물 위를 건넌다는 생각 때문에 처음 건너면 긴장을 하게 된다. 주말에 오면 줄을 서서 다리를 건넌다고 하는데, 평일에 온 덕분에 전세라도 낸 듯 홀로 정취를 감상하는 호사를 누릴 수 있었다.

▲ 다리 중간에 놓인 받침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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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쪽에서 외나무다리를 건너면 어떻게 될까? 다리 중간중간에 나무를 덧대 다소 넓은 공간을 마련해 두었다. 오고 가는 사람들이 비켜설 수 있도록 만들어 둔 것이다. 오랫동안 그곳에 서서 강물 흘러가는 소리를 들었다. 맑은 강물이 모래를 쓸어가며 내는 소리는 자연의 아름다운 연주곡이었다. 그 소리를 담아가서 잠이 안 올 때마다 듣고 싶었다.

▲ 내성천에 비친 모습, 모래를 쓸어 안고 흘러가는 물소리가 아름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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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제방이 형성된 내성천 주변에는 왕버드나무들이 군락을 이루고 있다. 왕버드나무는 아직 앙상한 가지였지만 아주 연한 풀빛이 번져가고 있었다. 마치 자연의 화가가 막 붓을 잡고 첫 붓칠을 한 듯한 엷은 색이었다. 이제 곧 나뭇잎은 하루하루 짙어져 갈 것이다.
4대강 사업이 한창 진행 중일 때 이 풍경도 사라질 뻔했다고 하는데, 제발 개발이라는 미명 하에 이런 아름다운 풍경들이 흔적도 없이 사라지는 어리석은 일들이 더 이상 반복되지 않았으면 하는 생각이 간절했다. 한 번 사라지면 인간의 손길로는 절 때 되돌릴 수 없는 것이 자연의 풍경이지 않은가!

▲ 강변으로 형성된 자연 제방에는 왕버드나무가 줄지어 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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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섬마을이 기대한 만큼의 풍경이어서 좋았다. 봄빛이 짙어졌을 때, 강물에 첨벙첨벙 걸어 들어갈 수 있는 여름에, 단풍 아름다운 가을에 다시 한번 들러봐야겠다. 마음의 위로를 주는 공간을 또 한 곳 알게 됐다는 뿌듯함, 도시에서 자라 제대로 된 고향 풍경을 떠올릴 수 없는 나에게 '마음의 고향'이 또 한 곳 늘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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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방송작가협회 회원, 방송작가, (주) 바오밥 대표,
바오밥 스토리 아카데미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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