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부 가는 길 무장에서 고부 가는 길에 동학농민군이 넘었다는 굴치에서 본 풍경. 사진 가운데 산이 흥덕 관아, 좌측이 고부 두승산이고 우측이 정읍이다.
이영천
3월 23일 혁명군이 '동도대장(東徒大將)' 깃발을 앞세워 고부에 입성한다. 정연한 행군행렬이 5리가 넘었다고 전한다. 위용도 엄정하다. 며칠 전까지 장흥 역졸들에게 험한 고초를 겪던 고부 백성들에게, 이들은 하늘에서 내려온 군대처럼 보인다. 온 고을이 회한으로 눈물범벅이다. 피해를 치유하는 게 최우선이다. 불에 타 집 없는 백성에게 우선 식량을 나누어 준다.
그제에서야 살벌하고 지옥 같던 고을이, 가난하나 평화롭던 예전으로 돌아간 느낌이다. 탐관오리의 수탈이 없는, 같이 사는 세상이 당장에라도 손에 잡힐 듯하다. 총을 들고 맞서 싸워야겠다는 핏발서는 의기가, 온몸에 감각으로 전해온다.
전봉준은 새로운 세상에 대한 전망을 다시 제시한다. 군사를 일으켜 전주와 서울을 점령해야만 하는 당위성을 절절하게 설명한다. 그리고 이틀 후 백산에서 동학혁명군의 대의를 천하에 선포하겠다고 한다. 그때부터 본격적인 혁명전쟁에 들어선다고 설파한다.
동학혁명의 상징이 된 이 말
3월 25일, 당일 아침부터 백산에 흰옷 입은 농민이 모여든다. 간단한 봇짐에 짚신을 꿰고 황토물들인 두건에 죽창 들고 오는 사람, 숨겨두었던 화승총을 메고 오는 사람, 무기가 될 만한 병장기라면 무엇이건 들고 오는 사람으로 백산 가는 길과 나루터가 온통 북적인다. 모인 숫자가 8천에 육박한다. 북쪽의 태인, 금구, 원평, 김제, 전주 방면과 남쪽으론 정읍, 고창, 흥덕, 무장, 부안, 영광 등에서 온 농민이다.
대회는 혁명을 결행하자는 의식이다. 이는 죽고 사는 전쟁이 전제다. 창의소가 짊어져야 할 현실의 무게다. 백산 대회를 통해 혁명군 지휘체계를 명확히 한다. 상명하복의 수직 체계가 아닌 수평적 연대다. 모든 사안은 협의를 통해서 결정된다. 각 부대 통솔권은 해당 지역 대표가 갖는다.

▲동학혁명백산창의비 1894년 3월 25일 백산대회를 열고 본격적인 혁명전쟁에 들어 선다. 1만여 군사가 모여 '앉으면 죽산, 서면 백산'이라는 동학혁명 상징적 문구가 여기서 만들어 진다.
이영천
격문을 지어 만천하에 포고한다. 아울러 4대 명의와 농민군이 지켜야 할 12대 명의를 제시한다. 의군으로서 지켜야 할 행동강령이다.
읍내에서 주둔한 3일 후 대군을 몰아 백산으로 진을 옮겼다. 군대 체계를 재구성하면서 모두의 바람대로 전봉준이 대장, 손화중과 김개남이 총관령, 김덕명과 오시영이 총참모가 되었다. 최경선이 영솔장에 송희옥과 정백현 등이 비서가 되었으며 대장기에는 보국안민(輔國安民) 4자를 큰 글자로 쓰고 거듭하여 격문을 지어 사방에 전하였다.
격문: '우리가 의를 들어 여기에 이름은, 그 본의가 결단코 다른 데 있는 게 아니라 창생을 도탄에서 건지고 국가를 반석의 위에다 두자 함이라. 안으로 탐학한 관리의 머리를 베고 밖으로 횡포한 강적의 무리를 쫓아내고자 함이다. 양반과 부호 밑에서 고통받는 민중들과 감사와 수령의 밑에서 굴욕을 받는 아전들은 우리와 같이 원한이 깊은 자라. 조금도 주저하지 말고 이 시각으로 일어서라. 만일 기회를 잃으면 후회하여도 미치지 못하리라.'
-갑오 삼월, 호남 창의 대장소 재 백산
동학군이 고부를 함락한 후 백산에 진을 치고 거듭 격문을 발표한 후, 호남 일대는 물론이고 조선 강산이 고부 백산을 중심으로 흔들렸다. …(중략)… 모여드는 자가 수천에 달해, 백산은 인산인해로 수만 군중이 둘러싸고 있어 정말 백산이란 지명으로 울렸다. 서면 백산이요, 앉으면 죽산이라는 비결이 맞았다고 한다. 죽창을 든 수만 군사만으로 앉으면 죽산이 된다고 하였다. (앞의 책. p202~209 의역 인용)
결기 충만한 격문이다. 모든 이의 가슴을 쿵쾅거리게 한다. 그 울림은 지금까지 살아있다. '앉으면 죽산, 서면 백산'은 동학혁명의 상징이 되었다. 아울러 '안으로 탐학한 관리의 머리를 베고 밖으로 횡포한 강적의 무리를 쫓아내고자 함이다'라는 문장은 '반봉건 반외세'라는 동학혁명의 핵심을 명쾌하게 규정하고 있다.

▲동학혁명 조형물 사람 人 모양으로 형상화한, 긴 행렬이 연상되는 동학혁명 조형물. 황토현 기념관 안에 옛 것을 철거하고 새로 세웠다.
이영천
횃불이 올랐다, 혁명전쟁이다. 무엇을 부수고 무엇을 바꿔낼 것인가? 혁명군 창끝이 향하는 모든 지점이 목표물이다. 낡고 썩어빠진 모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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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삼스레 타인과 소통하는 일이 어렵다는 것을 실감합니다. 그래도 많은 이들이 공감하고 소통하는 그런 일들을 찾아 같이 나누고 싶습니다. 보다 쉽고 재미있는 이야기로 서로 교감하면서, 오늘보다는 내일이 더 풍성해지는 삶을 같이 살아갔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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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창을 든 수만 백성들... 동학혁명의 횃불이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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