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국혁신당, "검찰독재 조기종식" 조국혁신당 조국 대표와 비례대표 후보들이 4일 오후 서울 용산구 효창공원역 인근에서 '검찰독재 조기종식, 서울시민과 함께'를 하고 있다.
이정민
루소에 대한 사회계약론의 장에서 조국은 "인민의 자기계약을 통한 국가권력의 탄생"이라는 제목을 붙였다. 인민주권론에 대한 기초강의다. 그런데 <조국의 법고전 산책>은 일관해서 책 전체에 "인민"이라는 단어를 쓰고 있다. 냉전의 정치적, 법적, 사회문화적 장치가 제동을 걸고 있는 용어에 대한 족쇄를 풀고자 하는 것이다. 국가주의의 소산인 국민, 부르주아 혁명의 산물인 시민의 한계를 넘어 사람으로서의 존재, 인민을 우리의 정치적 대중용어로 복원하는 것을 과감히 시도하고 있는 것이라 여겨진다. 이는 주권자 인민의 정치적 존엄성을 강조하는 태도를 지니고 있음을 말해준다.
이러한 태도는 민주주의로 번역되는 데모크라시(democracy)의 고대 그리스어인 데모스크라티아(demoskratia), 즉 인민권력, 인민의 지배를 향한 논의의 회로를 깔고자 하는 설계이자, 이에 토대를 두고 권력의 문제에서 사회권에 이르는 논지를 펴고 있음을 짐작하게 한다. 선거로 지배자를 선출하고 그 노예가 되고 마는 대의제가 가지고 있는 기만성을 질타한, 인민중심의 루소를 우리에게 소개하면서 주권의 주체를 부각시키고 있는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권력자가 장악하고 있는 수도 중심의 정치가 아닌 인민이 거주하고 있는 지역 현장이 정치의 중심이 되도록 해야 한다는 논지와도 만난다. 그가 인용한 루소의 견해는 오늘날에도 여전히 유효하다.
"도시 성벽은 오직 시골집들의 잔해만으로 이루어진다는 점을 명심하라. 수도에 궁궐이 세워지는 것을 볼 때마다 나라 전체가 오두막으로 변하는 것을 보는 듯하다."
한동훈이 국회를 세종시로 이전하자고 하니, 이를 수용하면서 곧바로 수도 이전도 하자고 맞받아친 조국의 발언은 그냥 나온 것이 아니다.
몽테스키외의 3권 분립, "권력으로 권력을 저지한다" 그리고 "시민참여재판"
이어지는 몽테스키외의 <법의 정신>은 "권력이 권력을 저지하도록 해야 한다"라는 제목을 통해 그 논지의 핵심을 짚었다. 근대 민주주의의 기본이 된 3권 분립의 정치학에 대한 논의다. 사실 오늘날 우리는 3권 분립이 아니라 3권 동맹의 특권 카르텔이 작동하고 있는 현실을 마주하고 있다는 점에서 3권 분립의 기득권 구조를 혁파할 새로운 논의가 요구되는 상황이나, 권력 남용을 견제하고 감시할 권력의 제도화 문제는 여전히 중요하다.
그래서 조국은 "감사원은 대통령 직속이 아니라 의회 아래 두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타당한 제안이다. 이와 함께 몽테스키외의 "시민참여재판론"을 소개하면서 법정의 폭력을 막는 길에 대한 탐구를 시도한다. 이는 그가 몽테스키외가 말했던 바처럼 "피고가 자기를 억압할 것 같은 사람들의 수중에 떨어진 것이 아닌가 하고 생각하는 일이 없도록" 하고자 함이다. 그와 그의 가족이 처절하게 겪었던 일과 몽테스키외의 주장은 그대로 일치한다. 만일 그와 그 가족이 법정의 판단독점을 극복한 숙의과정을 거치는 시민참여재판에서 자신의 진실을 말하고 이것이 법적 판단의 대상이 되었다면 어떤 결과를 우리는 보게 되었을까.
"저항권"의 정당성 그리고 개혁에 대해 : 조국 정치의 시작
루소의 인민주권론을 주목하는 조국은 존 로크의 <통치론> 강의에서 합의(consensus)에 기초한 시민정부를 대체로 강조해온 기존의 교과서적 설명과는 달리, 저항권을 강조한다. 이 강연의 제목은 "인민은 폭정을 무력으로 제거할 권리가 있다"이다. 사회계약을 위반하는 통치자는 "침략자"라고 규정한 로크의 주장을 소개하면서 "예방적 저항," "예방적 혁명" 논의까지 추가한다.
그는 이런 논지를 "폭정이 작동해 인민의 생명, 자유, 재산이 침해되기 전에 선제적으로 타도해야 한다고 말한 것"이라고 설명한다. 물론 조국이 무장혁명론을 내세우고자 함은 아니다. 폭정에 대한 인민의 저항권은 정당하다는 근대 정치사상의 현재적 의미를 묻고 있는 것이다. 조국혁신당의 등장은 윤석열 정권의 폭정에 대한 선제적 타도의 정치결사체가 나타난 것이라는 점에서, 그리고 대중들의 뜨거운 지지의 폭발은 바로 그런 저항권의 실체를 보여주었다는 점에서 이 논지는 보다 현실적으로 중요해진다.
대중들에게 잘 알려지지 않은 인물과 사상도 소개하고 있다. <범죄와 형벌>의 저자 체사레 베카리아를 다룬 장의 제목은 "형사사법체계는 총체적으로 개혁되어야 한다"이다. "형벌의 잔혹성과 형사절차의 난맥상"을 폭로한 베카리아는 오늘날 법체계에서 명확성의 원칙, 비례의 원칙의 기초를 놓았고 잔혹한 형벌금지를 촉구했다. 그는 "필요 이상의 잔혹한 형벌은 박애의 덕에 비추어 비난받아야 할 뿐 아니라 정의에도 반하고 사회계약의 본질과도 상반되는 것"이라고 주장했던 것이다.
이 베카리아의 논지는 조국이 그간 겪었던 정치검찰의 조리돌림과 4년 옥살이를 감당해야 했던 그의 부인 정경심 교수의 처지를 그대로 떠올리게 하지 않는가? 조국의 검찰개혁의 구상은 그래서 베카리아의 말대로 "총체적으로 개혁"되도록 설계될 것이 기대된다.
이밖에도 "민중을 위한 사회대개혁과 '입헌민주주의' 구축"이라는 제목 아래 토마스 페인을 소개하면서 사회권의 발전을 주목한 조국은 "우리는 대한민국이 식민지, 전쟁, 그리고 군사독재와 권위주의 체제를 겪은 후 선진국이 되었음에 자부심을 가져도 좋다. 그러나 충분한가? 아니다. 외연적(外延的) 발전을 넘어 내포적(內包的) 발전을 이룩하기 위한 사회개혁이 필요하다"고 그의 <가불 선진국>에 적고 있다. 사상과 구체적인 정책의 결합이 실천력을 가진다는 걸 주시하는 것이다.
미국 연방주의자들의 논쟁을 담은 <페더럴리스트 페이퍼>에서는 소수자 보호의 논지를 주목하는 동시에 입법부가 헌법에 위반하는 법률을 만드는 경우 어떻게 할 것인가의 주제를 논하면서 "위헌심사기구의 제도화", 즉 입헌 민주주의 체제를 구성하는 문제를 다루었다.
존 스튜어트 밀의 <자유론>을 통해서는 개인의 자유에 대한 국가와 사회의 개입 문제를 주목, 인민권력이라 할지라도 저지를 수 있는 전제통치의 한계를 설정하는 문제를 일깨운다. 법과 정의 사이의 대치와 관련해서는 소포클레스의 <안티고네>와 헨리 소로우의 <시민불복종> 등을 다루었고 마지막 장에는 칸트의 <영구 평화론>을 통해 전쟁종식과 영구 평화의 길에 대한 이야기를 담았다.
이렇게 보면, 조국이 정치인이 된 오늘날 그가 기획하고자 하는 모든 정치구상에 어떤 사상적 기초들이 세워져 있는지를 알 수 있게 된다.
법의 생명은 투쟁이다 : 콜하스의 선택과 조국의 선택

▲ 조국혁신당 조국 대표가 3일 오후 서울 동작구 총신대입구역(이수역) 부근에서 기자회견을 하며 유권자들을 만나고 있다. '3년은 너무길다' 등 지지자들의 구호에 맞춰 조국 대표가 화답하고 있다.
권우성
그런데 지금의 조국을 가장 잘 설명해줄 수 있는 장은 루돌프 폰 예링의 <권리를 위한 투쟁>이라고 여겨진다. 윤석열 정권과 한판 겨루는 자세는 이런 투쟁의 힘에 기초해 있기 때문이다. 예링을 다룬 장의 제목은 "권리침해에 저항하는 것은 의무다"로 되어 있다. 조국은 예링의 "법의 생명은 투쟁이다"라는 논지를 중심으로 "법규와 제도를 바꾸려면 그 우월적 지위, 이익과 투쟁해야만 합니다"라고 자신의 해설을 덧붙인다. 지금 그의 모습이다. 그러면서 예링이 소개한 "콜하스의 다른 선택"에 대해 설명한다.
콜하스는 말 거래상이었는데 독일귀족 융커 트롱카의 영지를 통과하다가 통행증이 없다고 말 두 마리를 압류당한다. 말을 돌려달라고 하지만 그 사이에 말은 상태가 나빠졌고 이에 소송을 하지만 패소하고 만다. 그러자 분노한 콜하스는 하인들과 함께 영주 트롱카의 성을 파괴하고 성에 살고 있던 트롱카의 하인들을 죽인다. 결국 그는 처형당하고 말지만, 그 직전 자신의 소송이 승소했음을 통보받게 된다.
조국은 '콜하스의 선택'에 대해 예링은 이렇게 말했음을 우리에게 알려준다. "가장 비열한 방법으로 멸시당한 자가 자기 권리를 회복하기 위해 모든 수단을 다 취한 후, 그리고 잔악한 내각의 재판이 그에게 법적 구제 방법을 폐쇄하고 사법을 최고의 대변인인 영주에 이르기까지 공공연하게 불법의 편에 가담시킨 후에 (....) 그는 부패한 재판관의 손에서 더럽혀진 칼을 빼앗은 다음 그것을 휘둘러 온 나라를 공포와 경악에 떨게 했고, 부패한 국가제도를 무너뜨렸으며 왕위에 있는 군주로 하여금 전율하게 했다. (....) 그는 죽음에 앞서 자신의 권리를 되찾았다."
우리는 지금 콜하스의 선택과 비견되는 조국의 선택을 보고 있다. 그건 그의 실존적 분노와 공적 분노가 하나가 된 사태다. 조국이 그 자신의 권리를 찾는 것과 이 나라 민중들이 권리를 찾는 것은 각기 놓여 있는 처지의 격차가 그만큼 사라지는 시작이기도 하다. 불법한 권력의 소멸이 정의로운 권력의 탄생을 뜻하기 때문이다. 여기에 사회권까지 가세하면 상황은 더욱 좋아질 수 있다.
하나, 덧붙이자면 <조국의 법고전 산책>에는 소크라테스가 "악법도 법이다"라는 말을 하지 않은 것을 논증하는 장이 있다. 옳다. 스크라테스가 사형선고에 저항하지 않고 국법의 결론을 받아들인 현실에 대해 논평하면서 생긴 세간의 오류다. 이 문장이 악법도 준수하라는 준법의 정당성을 옹호하는 주장으로 쓰이고 있는데 정작 소크라테스는 국법의 문제가 아니라, 사형언도를 내린 자들의 잘못을 주목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여기서 한 걸음 더 나갔으면 한다. 악법에 대한 준법 논쟁은 인민을 법의 적용 대상으로만 국한할 경우다. 소크라테스가 한 말인가 아닌가를 떠나, "악법도 법이다"를 입법자의 관점에서 다가서면, 악법이라고 판정된 법은 고치거나 바꾸거나 다른 법을 만들면 된다. 법의 탄생과 개폐는 민회에서 하기 때문이다.
이제 조국은 법고전의 산책자가 아니라, 입법자가 된다. 콜하스의 선택은 의의는 있었으나 그 개인에게 비극으로 끝났다. 하지만, 조국의 선택은 그 과정과 결과가 다를 것이 분명하다. 입법의 주체, 인민의 의지가 총체적으로 실현되는 역사를 위해 자신을 던지는 조국을 보게 되리라 기대한다. 제2 촛불혁명의 기세가 조국, 그의 몸에서 활활 타오르기를 기원한다.
산책은 끝났고 투쟁의 승리와 사회권의 미래가 기다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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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웅 기자는 경희대 교수를 역임, 현재 조선학, 생태문명, 정치윤리, 세계문명사 연구에 몰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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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국의 시간' 넘고 '법고전 산책' 지나, '정치인' 조국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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