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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 나가 더 성장해야" 8관왕 박지수의 이유있는 고민

[주장] 외국인 선수 제도 부활, 아시아쿼터 도입 등 고민해야

24.04.06 09:31최종업데이트24.04.06 09: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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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지수 'MVP 포함 8관왕' 4일 오후 서울 영등포구 63컨벤션센터에서 열린 2023-2024 여자프로농구 시상식에서 MVP를 수상한 박지수 선수가 트로피 8개를 가져와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 연합뉴스

 
국내에서는 이미 모든 것을 다 이룬 박지수에게도, 박지수의 독주가 계속되고 있는 여자농구에게도, 서로가 이제는 '변화'를 고민해야 할 시점이다.

한국 여자농구의 '국보 센터' 박지수(KB국민은행)는 최근 개인 통산 네 번째 정규리그 최우수선수(MVP)상과 역대 최초로 개인상 8관왕이라는 역사를 작성했다.

지난 4일 영등포구 63컨벤션센터 그랜드볼룸에서 우리은행 우리WON 2023~2024 여자프로농구 시상식에서는 기자단 투표 만장일치로  정규리그 MVP의 영예를 안았다. 2018~2019, 2020~2021, 2021~2022시즌에 이은 개인 통산 네 번째 정규리그 MVP를 수상했고, 베스트5, 우수수비선수상, 윤덕주상, 득점, 리바운드, 블록슛, 2점야투상까지 혼자 휩쓸었다.

박지수는 지난해 공황장애와 손가락 부상으로 고작 9경기 출장에 그치며 시련을 겪었다. 박지수가 흔들리자 KB도 2022-23시즌 5위에 그치며 디펜딩챔피언에서 플레이오프조차 진출하지 못 하는 팀으로 추락했다.

하지만 올시즌 박지수는 보란듯 건강하게 다시 돌아왔고 공백기가 무색하게 예전의 기량을 완전히 회복했다. 소속팀 KB도 박지수의 부활을 앞세워 2023-24시즌 정규리그 27승 3패라는 압도적인 성적으로 1위를 차지하며 화려하게 비상했다. 비록 챔프전에서 아산 우리은행에게 1승 3패로 뼈아픈 업셋을 당하며 통합우승에는 실패했지만, 박지수의 개인 활약은 독보적이었다.

시상대에 오른 박지수는 힘든 시간들이 생각났는지 눈물을 보이기도 했다. "1년 동안 농구를 하면서 모두가 고생을 많이 했다. 힘들고 벅찬 순간이 많았지만 잘 이겨내서 이 자리에 설 수 있었다. 제 스스로 이렇게 떳떳한 시즌이 있었나 싶다. 원동력이 되어주신 사랑하는 팬분들에게 감사하다"며 진심어린 소감을 남겼다.

한편으로 이날 박지수는 '해외리그 진출에 대한 희망'을 언급한 대목이 눈길을 끌었다. 박지수는 "여자농구 국가대표팀에서도 좋은 성적을 올리기 위해서는 더 성장해야 한다. 꼭 WNBA(미국 여자농구)가 아니더라도 해외리그에 나가보고 싶다"고 털어놨다.

국내 무대에서 더 이룰 게 없는 박지수
 

▲ 베스트 센터상 수상한 박지수 4일 오후 서울 영등포구 63컨벤션센터에서 열린 2023-2024 여자프로농구 시상식에서 KB스타즈 박지수가 베스트 센터상을 받은 뒤 소감을 말하고 있다. 2 ⓒ 연합뉴스

 
박지수는 이미 국내 무대에서는 사실상 더 이룰 것이 없다. 2016년에 데뷔한 이래 불과 만 25세의 나이에 MVP만 벌써 4번을 차지했다. 여자농구의 전설인 정선민(7회), 박혜진(5회, 우리은행)에 이어 단독 3위로, 변연하-정은순(3회, 은퇴)을 넘어섰다. 2022년에는 역대 최초로 개인상 7관왕을 차지한 데 이어 올시즌에는 8관왕을 싹쓸이하며 또 기록을 경신했다. 올시즌에는 준우승에 그쳤지만 챔프전 우승도 벌써 2번이나 차지했다.

WKBL에서는 착화신장 198cm의 박지수과 대등한 신체조건을 지닌 선수가 전무하다. 박지수의 마크맨들은 대부분 신장이 15~20cm 이상 차이나는 선수들과 매치업을 이룬다. 더블팀이 아니라면 국내에서는 박지수를 일대일이나 정상적인 수비로 막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물론 박지수가 키로만 농구하는 선수가 아니기에 상대팀으로서는 더욱 막기 힘들다.

챔프전에서 KB가 박지수를 보유하고도 우리은행에 패한 것은, 박지수의 잘못이 아니라 그녀를 받쳐주는 선수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현실적으로 이대로라면 최전성기를 보내고 있는 박지수가 부상이나 기량이 노쇠하지 않는 한 몇 년간은 WKBL에서 MVP와 개인상 다관왕을 계속 독식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

그런데 이것이 과연 박지수 개인의 성장에도, 여자농구의 흥행을 위해서도 장기적으로 도움이 될지는 미지수다. 그만큼 박지수가 달성한 기록과 타이틀의 가치도 반감될 수밖에 없다. 김연경(배구)이나 손흥민(축구), 류현진(야구) 등의 사례처럼, 다른 종목에서 국내 최고의 선수들은 해외무대에 진출하여 자신의 능력을 증명하면서 선수로서의 위상을 더욱 높인 바 있다.

박지수는 이미 지난 2018년 미국 진출을 통하여 해외무대를 먼저 경험해봤다. 박지수는 2라운드 5순위, 전체 17순위로 라스베이거스 에이시스에 입단하여 약 3시즌을 활약했으나 성공적인 활약을 보여주지는 못했다. 진출 초기에는 비교적 꾸준힌 기회를 부여받았으나 갈수록 주전경쟁에서 밀렸고, 2022년 이후로는 더 이상 WNBA에서 뛰지 않고 있다.

한국남자농구 최초의 NBA리거인 하승진(은퇴)이나 드래프트 지명에 실패한 이현중(호주 일라와라 호크스) 사례에서 보듯이, 미국은 남녀 모두 세계 최고의 농구리그를 보유하고 있기에 살아남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니다. 최근에는 한국 농구선수들도 일본, 호주 등 해외리그에서 새로운 도전을 모색하는 경우가 조금씩 늘어나고 있다.

박지수의 현재 신체조건와 기량이라면 미국이 아니라도 다른 리그에서 도전을 시도해보기에 늦은 것은 아니다. 자신보다 키가 크고 운동능력과 기술이 좋은 외국 선수들을 상대하는 경험을 쌓아야, 태극마크를 달고 출전하는 국제대회에서도 경쟁력을 키울 수 있다. 현실적으로 박지수가 아니라면 국내 여자농구에서 해외진출을 시도라도 해볼 만한 선수는 찾기 힘든 실정이다.

외국인 선수 제도, 아시아쿼터 등 고민해봐야

한편으로 WKBL은 다음 시즌 외국인 선수 제도 부활을 심각하게 고민해야 할 필요가 있다. 몇 년간 여자농구에서 박지수의 일방적인 독주체제가 가능했던 것은 외국인 선수가 없었기 때문이라는 요소가 크게 작용햇다.

WKBL은 코로나 펜데믹과 국내 선수 보호를 위하여 2020-21시즌부터 외국인 선수제도를 잠정중단했다. 4년이 지났지만 WKBL은 여전히 국내 선수들로만 운영되고 있다. 국내 4대 프로스포츠 남녀 종목을 통틀어 외국인 선수제가 없는 것은 WKBL이 유일하다. 박지수 본인도 "외국인 선수가 있다면 나도 더 성장할 수 있을 것"이라며 외국인 선수와의 경쟁도 두렵지 않는다는 입장을 밝힌 바 있다. 

외국인 선수는 전력평준화와 볼거리라는 측면에서 확실한 장점이 있지만, 한편으로 남자농구나 남녀배구의 사례처럼 외국인 선수에게 공을 '몰빵'해주고 국내 선수들이 들러리가 되기 쉽다는 단점도 분명하다. 하지만 지난 몇 년간 외국인 선수가 없다고 국내 선수들의 기량이 급격히 향상되거나 새로운 스타들이 등장한 것은 아니며, 오히려 박지수를 보유한 팀과 그렇지 않은 팀들간의 전력불균형이 더욱 심화되는 부작용도 컸다.

기존의 외국인 선수제가 아니라면 남자농구처럼 '아시아쿼터'를 도입하는 것도 하나의 대안이 될 수 있다. 남자농구는 필리핀 출신 이선 알바노가 올시즌 정규리그 MVP까지 오르며 아시아쿼터의 경쟁력을 입증했다. 여자농구에서 일본이나 중국은 한국보다 개인능력이 더 뛰어난 선수들을 보유하고 있으며, 국내 선수들의 국제경쟁력 향상에도 큰 보탬이 될 전망이다.

박지수에게도 WKBL에게도, 더 이상 기존의 현실에만 안주할 것이 아니라 이제는 새로운 목표와 도전이 필요해보이는 시점이다. 비시즌에 접어드는 여자농구에 어떤 변화의 바람이 찾아올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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