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차와 숙의 과정의 존중이 교육자치의 기본이다

등록 2024.05.31 10:54수정 2024.05.31 10: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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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기의 시대, 대퇴행의 시대라는 말이 유행하고 있다. 무엇이 그런 상황을 만들고 있는가. 국내외 정세는 물론이고 국내의 사회는 갈등과 혼란이 가득하다. 총선이 끝난 정치 지형은 무지, 무능, 무책임한 세력들에게 경종을 울리는 민심의 반영으로 여소야대가 됐다. 그러나 현 정권은 민심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편견과 독선으로 일관하고 있다. 해도 너무한다는 말이 오간다. 갈등과 대립은 극한으로 치닫고 있다. 걱정과 우려하는 목소리는 커져 가지만 정작 변해야 할 정권과 기득권은 변함이 없다. 어찌해야 하는가, 어떻게 해결할 수 있는가.

이런 위기와 퇴행은 중앙에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다. 지역자치, 교육자치의 시대에 우리지역에서도 민주적 절차와 구성원들의 숙의 과정을 무시하고 독재정권 시대 행태의 일들이 일어나고 있다. 교육자치의 퇴행이 진행되고 있다. 안타깝고 답답하다. 

최근 전남도교육청의 조직개편에 따른 해프닝은 교육자치 시대의 웃픈 현실을 보여준다. 지난 5월 22일 2024년 전남교육청 조직개편 추진을 위한 공개설명·토론회가 열렸다. 그런데 설명토론회가 갑자기 배치됐다. 사전 협의와 절차를 무시하고 조직개편의 내용을 제대로 설명하지 않고 추진하려는 도교육청의 졸속 행정을 질타하는 전교조 등 민주노조협의회와 교육시민단체들의 거센 항의로 이루어진 요식적인 자리였다. 

그럼에도 토론회가 개최되자 설명토론회에 500여 명 이상 교사, 일반직, 전문직, 교장, 교감, 공무직이 몰리는 바람에 토론회장 주변과 통로를 가득 메웠고, 토론회에 참여하지 못하고 돌아가는 교직원들도 많이 있었다

그런데 토론회 개최에 관한 공문이 5월 17일 금요일 오후에 발송됐고, 토론회 이틀 전에 일선 학교에 접수됐고 토론회 하루 전에야 교사들에게 공람됐다고 한다. 

전남도교육청의 조직개편은 교육정책과 방향, 그리고 교육현장을 지원하는 핵심적인 내용이다. 그래서 교육 구성원들에게 충분한 설명과 의견을 수렴하는 숙의과정을 통해 신중하게 진행하고 추진해야 할 사안이다. 학교와 학생 중심의 조직 방향을 설정하고 학교현장 지원을 강화하기 위해 조직개편을 추진하는 목적이라면 더더욱 현장교사들과 현장에서 직접 업무를 담당하는 행정직들의 의견을 수렴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그런데 전혀 그런 과정이 없었고, 또 조직개편의 내용도 비밀리에 추진했다. 

그런 문제점을 지적하는 현장 발언은 뜨거웠다."학교현장 지원을 강화한다는 조직개편안을 준비하는데 조직개편 TF에 교사가 배제됐고, 2만2000명 현장교사의 의견수렴이 없었다", "교직단체와 노조에 의견을 청취하지 않았고 준비와 논의 과정에서 공론 과정도 없었다"며 민주주의도 협의도 실종된 조직개편안이라는 비판이 이어졌다.


현장 교사들은 이번 조직개편안이 통과되더라도 학교지원이 강화된다는 것을 믿는 교사는 한 명도 없다, 조직개편의 시작점이 학교와 교육에서 출발하고 있지 않다, 학교에 무엇을 지원하고, 학교에서 어떤 업무를 덜어야 하는지에 대한 고민도 부족하다, 전남교육청과 지역교육지원청이 일반직 위주이고 교사와 전문직은 홀대받고 있다, 특수교육팀을 교육적으로 고민하고 있지 않다. 조직개편 때마다 여기저기로 옮겨지고 이유도 말해주지 않는다, 교육지원청에 2~3명 일반직을 늘리는 것으로 학교지원을 강화하는 것은 현실성이 없다. 근시안적이고 공학적인 조직개편이라는 등의 의견을 냈다.

일반행정직 공무원은 '이번 조직개편안은 교육지원청의 업무 과중을 해소하지 못하고 오히려 업무가 늘어 조직개편 취지에 부합하지 않는다'고 했다. 또한 전남교육청 모든 구성원이 반대하고 있고, 의견수렴도 충분히 되지 않아서 조직개편을 성급하게 추진하지 말고, 시간을 갖고 협의해 추진하라고 요구했다. 


학교비정규직노동조합은 조직개편에 대한 의견을 제출하라는 전남교육청의 공문을 받은 것은 사실이나, 어떤 취지와 어떤 내용인지 구체적인 설명이 없어 의견을 제출할 수 없었다고 주장했다. 그 후 논의과정에서 어떤 협의도 없었다. 이번 조직개편안은 지금 당장하지 않으면 안 될 절박한 내용이나 필연성이 없는 것 같다. 조금 여유를 가지고 차근차근 논의했으면 좋겠다는 의견을 발표했다.

사전에 충분한 의견수렴과 숙의과정에 노력했어야 할 내용들이다. "이렇게 반대의견이 많은데 전남교육청의 입장이 무엇이냐? 재논의할 의사는 있는가?"라는 질문에 전남교육청 행정과장은 검토해 보겠다는 말만 되풀이했다. 결국 토론회의 성과는 무시되고 도교육청은 입법 예고를 위해 도의회에 조직개편안을 제출했다. 

즉각 교육단체와 전교조는 강고한 투쟁에 돌입하며 도교육청을 압박했다. 도민의 여론도 매우 부정적이었다. 도민의 여론과 저항으로 결국 조직개편을 보류하고 재논의하겠다고 전남도교육청은 철회했다. 이 얼마나 소모적이고 분열적인 교육행정인가. 늦게나마 도교육청은 조직개편을 철회하고 재논의한다고 밝힌 것은 교육자치의 기본을 존중하는 것이기에 다행이다. 

앞으로는 절차와 숙의 과정을 존중해 교육정책을 추진할 것을 강력히 주문한다.

김남철 전남교육연구소 운영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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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완도신문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완도신문에도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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