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를 즐기는 이들에게 올림픽은 축제다. 많은 도시가 올림픽을 개최하려고 힘쓴다. 올림픽을 개최하면 경제적 효과는 물론이고 전 세계에 도시를 알리는 홍보 효과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자연스레 개최 도시는 긍정적인 도시 이미지를 전 세계인에게 각인시키고자 노력한다.
대한민국도 올림픽을 개최한 바 있다. 1988년 서울특별시에서 개최된 '88올림픽'이다. 서울도 도시 이미지를 개선시키기 위해 많은 돈과 에너지를 쏟았다. 88올림픽을 성공적으로 개최하기 위해 2조 2922억 원을 지출하였으며 그중 37%(약 8597억 원)를 시설 분야에, 33%(약 7656억 원)를 도시환경 분야에 지출했다.
70% 정도의 예산을 도시환경과 시설물에 지출했다. 경기장을 신설하거나 개보수하고 미관을 정비하고 도로, 상하수도, 녹화시설 등을 정비했다. 올림픽공원, 올림픽아파트 단지, 올림픽대로가 살아있는 증거다.
이 시기에 한강종합개발사업도 시행되면서 오늘날의 한강 모습에 가깝게 변화했다. 총 36km 길이의 저수로가 정비되었고 연중 2.5m 수심이 유지되었고, 휴식, 산책, 운동을 하는 장소로서 한강은 개발되었다.
파리에서 배우는 도시 활용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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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파리 올림픽 펜싱 경기가 열렸던 그랑 팔레 내부 ⓒ 김남주
약 36년이 흘렀다. 이제 막 프랑스 파리 올림픽이 마무리되었다. 선수촌 숙소에는 에어컨이 없고 골판지로 만든 침대를 비치해 논란이 일기도 했지만, 파리 올림픽은 '탄소중립', '친환경' 대회를 열기 위해 여러모로 노력했다. 비건 지향의, 프랑스 원산지 식재료를 쓴 식단 구성도 그러한 노력의 일환이다. 개발과 건설 바람이 휩쓸었던 88올림픽과는 사뭇 다른 모습이다.
필자는 도시를 공부하는 사람으로서 올림픽이 열리는 경기장에 주목했다. 친환경 올림픽을 열기 위해 경기장 조성 과정에서 도시를 활용하는 법이 돋보인다. 경기장 중 95%는 기존 시설, 임시 시설을 활용했고 선수촌과 수영장 등만 친환경적 재료인 목재로 신규 건설했다고 한다.
첫째, 하나의 장소를 다목적 장소로 사용한다. 파리 올림픽 펜싱과 태권도 시합이 열린 그랑 팔레(Grand Palais)는 영국 런던의 수정궁에서 영감을 받아 건축되었다고 한다. 본당은 무려 6000톤이 넘는 강철이 사용되었으며 천장은 유리로 되어 있고 천장고가 매우 높다. 강철과 유리는 19세기 무렵 건축에서 적극적으로 사용하기 시작한 재료다.
그랑 팔레는 1900년 파리 만국박람회를 위해 건립된 건축물이다. 이후로 스포츠뿐만 아니라 예술 행사와 전시회 등 연중 다양한 문화 행사가 열리고 있다. 1937년 프랑스 펜싱 선수권대회가 처음 열렸고, 이후로 체조, 높이뛰기, 승마 경기도 열렸다.
수영 경기가 열렸던 라 데팡스 아레나(Paris La Défense Arena)도 다목적 건축물이다. 개장 이후 공연, 컨벤션 및 세미나, 프로 럭비 경기가 열렸다. 이렇게 다용도 목적으로 건축물을 사용하게 되면 새로운 건축물을 짓지 않아도 되니 친환경적이라 할 수 있겠다.
둘째, 오래된 역사 건축물을 배경으로 임시 시설물을 설치하여 적극적으로 활용한다. 앵발리드(Invalides)는 양궁과 육상 사이클 경기가 펼쳐진 장소다. 개인적으로 올림픽 경기장 중 가장 인상 깊은 경기장이다. 양궁 경기 중계화면을 볼 때마다 멋진 건축물을 함께 감상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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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파리 올림픽 양궁 경기가 펼쳐졌던 앵발리드 경기장 ⓒ 김남주
경기장은 앵발리드 건축물 내부에 조성하지 았았고 전면부 공공공간을 활용했다. 구글맵 거리뷰(2024년 5월 기준)를 보면 임시시설이 설치되는 과정을 볼 수 있다. 광장에는 관람석이 임시로 설치됐고 차도 위는 양궁 경기장이 되었다. 차도와 광장을 활용한 임시시설이지만 장소에 깃든 역사와 아름다운 건축물 덕분에 멋진 경기장을 조성할 수 있었다.
앵발리드는 1687년 루이 14세 시대에 참전 용사를 수용하기 위한 군병원이었다. 현재는 프랑스 군사역사박물관과 중계 해설에서도 자주 인용했듯 "나폴레옹이 잠든" 무덤이 있는 곳이기도 하다. 나폴레옹뿐만 아니라 파리의 위인 추모 시설이 마련되어 있다. 우리나라로 치면 현충원이나 전쟁기념관을 배경으로 양궁 경기가 펼쳐진 것이다. 현충원과 전쟁기념관에서 열린 양궁 경기라니. 이렇게 생각하니 새삼 프랑스 시민 문화가 신기하다.
유도와 레슬링 경기가 펼쳐진 아레나 샹 드 마르스(Arena Champ-de-mars)와 비치발리볼이 열린 스타드 투르 에펠(Stade Tour Eiffel)은 이번 올림픽을 위해 새로 설치된 임시 시설이다. 베르사유 궁전 내 웅장한 정원에서도 승마와 근대 5종 경기가 열렸다.
파리 올림픽에서 친환경을 가치로 내세운 건 우연이 아니다. 파리시는 15분 도시계획을 발표했다. 15분 도시는 프랑스 파리 제1 대학 팡테옹-소르본의 카를로스 모레노 교수가 주창한 이론이다. 모레노는 책 <도시에 살 권리>에서 "15분 도시는 '하나의 장소, 여러 용도', 아니 모든 가능한 새로운 사용을 의미한다"라고 썼다. 파리시는 올림픽을 준비하며 하나의 장소를 다목적 장소로 사용하고, 임시 시설물을 적극적으로 활용했다. 파리시가 구축하고자 하는 '15분 도시'와 파리올림픽의 친환경은 연결된다.
고가도로 아래에 생긴 체육시설, 종암박스파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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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 성북구 고가도로 아래 조성된 종암박스파크 ⓒ 이현우
국내에서도 도시 공공공간을 활용해 스포츠 경기장으로 사용하는 사례가 있다. 필자가 살고 있는 동네인 서울 성북구에서는 고가도로 아래 자투리 공간을 활용해 종암박스파크를 조성했다. 철골과 목재를 사용하여 친환경적이면서도 독특한 디자인의 체육관을 조성했다.
국내 도심지에는 일반적으로 국공유지가 많지 않다 보니 체육시설 접근성이 열악한 편이다. 산꼭대기에 체육시설이 있다는 말이 나올 정도다. 종암박스파크는 도심지 내에 있는 공간이다. 고가도로 밑에 죽은 공간을 부활시켰다. 지자체 입장에서는 조성 비용을 절약했고 이용하는 시민 입장에서는 접근성이 높다. 배드민턴, 농구 등 체육관 대관을 하고 있고 복싱대회를 여는 복싱장으로도 활용하고 있다.
기존에 스포츠 경기장이 아닌데도 스포츠 경기가 열리는 사례도 있다. 서울시민리그 복싱대회는 중랑천 이화교 밑에 임시로 설치된 복싱장에서 열렸다. 2018년 사직단 단군성전에서는 택견리그가 열리기도 했고, 최근 2023년에는 마로니에공원에서 택견배틀이 열렸다. 이처럼 도시 내 곳곳의 공간이 스포츠 경기장이 될 수 있다.
파리 올림픽을 두고 여러 논란이 있었다. 올림픽 자체가 그린워싱(친환경 'Green'과 눈속임'White Washing'의 합성어)이라는 비판도 있다. 하지만 전 세계가 주목하는 국제 스포츠대회에서 친환경 올림픽이라는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여러 모양으로 노력했다.
특히 임시시설을 활용하고 하나의 장소를 다용도로 사용하는 친환경적 도시 활용법을 소개했다는 점은 박수받을 만하다. 이와 같은 도시 활용법은 앞으로 올림픽과 같은 스포츠 행사를 비롯한 대규모 국제 행사들이 지향해야 할 방향을 제시해 줄 뿐만 아니라, 도심 공간을 시민을 위해 어떻게 활용해야 할지 보여준다.
※ 참고자료
- 파리 올림픽 공식 홈페이지 https://olympics.com/ko/paris-2024/venues
- 88올림픽 서울을 어떻게 변화시켰는가, 2017, 서울역사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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